칼 바르트의 마지막 조교 에버하르트 부쉬가 써 내려간,
위대한 신학자의 역동적인 삶과 투쟁, 불꽃 튀는 사유를 만나다!
-강영안, 김명용, 채수일, 박종천, 유해무, 김회권, 한스 큉, 유진 피터슨 추천
“이 책은 바르트라는 광대한 산맥을 오르게 하는 훌륭한 지도다!”
20세기 신학의 교부 칼 바르트의 마지막 조교였던 에버하르트 부쉬가 스승의 편지와 회고록을 기초로 재구성한 방대한 분량의 전기다. 이 책은 칼 바르트라는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중요하고 특징적인 ‘인적 사항과 데이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수집해 놓았으며, 각 장의 분류와 순서도 내용적 관점이 아니라 그의 삶 가운데 일어난 사건의 연대기적 순서를 따랐다. 칼 바르트의 편지와 저작들에서 직접 인용된 수많은 문장, 그리고 그의 삶의 정황들이 생생하게 담긴 100여 장의 스냅 사진들은 특정 시기의 신학적 견해나 행동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한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이 책은 목사, 신학자이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칼 바르트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바르트의 심오하고 풍부한 신학 사상은 어떠한 삶의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그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지성을 사로잡는 그의 신학은 도대체 어떠한 삶에 뿌리를 내린 것일까?
이 책은 20세기 신학의 최고봉 칼 바르트의 박진감 넘치는 삶의 주요 궤적을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안팎의 풍경을 드러내고, 그 삶이 그의 신학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차분히 정리해 낸다. 바르트의 신학은 그가 터 잡고 살던 곳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이 책은 그의 생애를 안내하는 ‘지도’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다.
칼 바르트의 마지막 조교 에버하르트 부쉬가 꼼꼼하게 그려 낸 그 삶의 ‘답사’를 통해, 우리는 이 위대한 신학자의 신학 사상이 놀라울 정도로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르트의 삶을 온통 사로잡았던 치열한 물음, 그의 삶을 움직여 간 사상적 고투가 바로 오늘 우리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학적 통찰과 열정이 뜨겁게 분출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응고되는 과정, 어느새 새롭게 포착된 전망이 예전과는 구별되는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과정이 선연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어떤 형태로든 바르트를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바르트 사상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게 된다. 바르트 아카이브와 공유한 다량의 사진은 그 흥미진진한 인생의 사계절과 그 인생에 관여했던 다채로운 우정의 파노라마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다.
특징
- 칼 바르트를 가까이서 알고 지내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저자가 쓴 신뢰할 만한 전기.
- 칼 바르트가 직접 쓴 편지, 저서들로부터 수많은 문장이 인용되어 자서전적 성격을 띤다.
- 칼 바르트의 생애와 활발한 활동을 생생히 보여주는 100여 장의 스냅 사진, 연보 수록.
-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14권.
독자 대상
- 현대 신학 사상 및 신학의 역사와 배경을 공부하는 신학생과 목회자.
- 20세기 현대 신학의 대표 주자인 칼 바르트의 신학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파악하기 원하는 독자.
- 신학자나 목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칼 바르트의 인품과 생애 여정을 알기 원하는 독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연보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요한 프리드리히 바르트와 안나 카타리나 바르트 사이에서 태어나다.
1989년 아버지가 베른 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게 되면서 온 가족이 베른으로 이사하다. (바르트는 청소년기 전체를 베른에서 보냈는데, 이후 그곳을 대단히 행복했던 시절로 추억한다.)
1904-1908년 베른, 베를린, 튀빙겐,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베른에서는 이마누엘 칸트에 몰두하고, 베를린에서는 아돌프 폰 하르낙의 수업을 열중해서 듣다. 마르부르크에서는 빌헬름 헤르만의 추종자가 되었으며, 마르틴 라데 교수 밑에서 『그리스도교 세계』의 편집 조교로 일하다.
1909-1911년 제네바에서 수련목회자로 일하다.
1911년 26살의 나이로 스위스 아르가우 주의 자펜빌에 목사로 부임하다. (바르트는 이후 10년 동안 자펜빌 교회의 담임 목사로 일한다.)
1912년 2월 25일, 아버지가 55살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다.
1913년 3월 27일, 베른의 뉘데크 교회에서 넬리 호프만과 결혼하다. 1년 후 큰딸 프란치스카가 태어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하르낙, 헤르만 등 93명의 독일 지성인들이 전쟁에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큰 회의와 충격에 빠지다. 스승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새로운 신학의 길을 모색하다.
1919년 베슐린 출판사에서 『로마서 주석』(Der R?merbrief) 출간. 탐바흐 대회에서 강연하다.
1921년 괴팅겐 대학교로부터 개혁 신학 담당 교수로 청빙을 받아 독일로 이사하다. ‘종교개혁 노선’으로 방향을 바꾸다.
1922년 『로마서 주석』 개정판 출간. 뮌스터 대학교로부터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다.
1923년 고가르텐, 투르나이젠과 함께 신학 잡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Zwischen den Zeiten) 창간.
1925-1929년 뮌스터 대학교의 개신교 신학부 교수로 교의학과 신약성서신학을 강의하다.
1927년 교의학 『서설』(Prolegomena) 탈고.
1930년 본 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다. 글래스고 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 수여.
1932년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I/1 출간.
1933년 「오늘의 신학적 실존」(Theologische Existenz heute)을 쓰다. 이 글이 큰 반향을 얻어, 카이저 출판사에서 비정기적으로 출간되는 문집 시리즈를 동일한 이름으로 발행하기 시작하다.
1934년 5월, 바르트가 작성한 바르멘 선언문이 독일 개신교 교회의 제1차 고백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다.
1934년 9월, 「아니다!」(Nein)를 쓰다.
1934년 11월, 교수직을 박탈당하다. 독일 내에서 일체의 강연 금지 명령을 받다.
1935년 바젤 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스위스 바젤의 성 알반링 186번지로 이사하다.
1936-1937년 헝가리와 영국을 여행하다. 애버딘 대학교에서 기포드 강의를 하다.
1938년 개신교 출판사에서 『교회교의학』 I/2 출간. 바젤 신학부의 학장으로 취임하다. 베른에서는 오랫동안 병상에 있던 어머니가 사망하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무장 지원병으로 자원하여 104일 동안 군복무를 하다.
1945-1946년 본 대학교에서 여름학기 강의를 하다. 독일에 머물면서 동과 서의 대립을 직접 체험하다.
1948년 암스테르담 세계 교회 협의회 총회에 참가하여 주제 강연을 하다. 『교회교의학』 III/2 출간.
1956년 아들 마르쿠스와 영국 여행을 하다. 변증법적 신학의 변모를 잘 보여주는 아라우 강연을 발표하다.
1959년 『교회교의학』 IV/3 출간.
1960년 8월, 발레 주에서 빌리 그레이엄을 만나다.
1962년 3월, 바젤 대학교에서 고별 강의를 마치고 은퇴 생활에 들다. 미국을 여행하며 여러 대학에서 강연하다.
1964-1965년 몇 차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다.
1966년 마지막 로마 여행을 하다.
1967년 『교회교의학』 집필 중단. (미완의) 『교회교의학』 IV/4 출간.
1968년 12월 10일, 82세의 나이로 바젤에서 세상을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