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이 있다. 특별한 공부 실력도, 재주도 없고, 그냥 무탈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공무원 아버지 덕에 고생을 모르고 자랐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 아이 낳고 부모님 모시고, 직장에 다니며 봉급을 받아 생활했다. 쌍둥이 손자도 두었다. 남들과 거의 비슷하게 살아왔고, 어느새 나이 70세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가 되돌아본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공부 잘한 자와 잘 못한 자, 좋은 학교 나온 자와 안 나온 자, 부잣집에서 태어난 자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자, A형과 O형인 자와 B형과 AB형인 자, 남자와 여자, 동양인과 서양인 등 세상의 뭇 인생들은 노년이 되면 별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다. 세끼 밥 굶지 않고, 다들 그런대로 살아간다. 찰나의 희로애락에 얽매여 꾸역꾸역 시간의 마법에 걸려 흘러간다.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욕심내지 말고 족(足)하며, 그냥 평범하고 편하고 재미있게 살 일이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살며 고생해 온 동시대의 시니어에게 고(告)하는 말이다. 나는 그들을 단순한 시니어가 아닌 ‘시니어 스타’라고 명명한다. 노년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 좀 품위 있어 보이는 영어로 썼고,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고생하여, 가정과 사회와 조국을 이렇듯 번듯하게 만들었으니 ‘별’, 스타(Star)이다. 그 수많은 ‘시니어 스타’를 나는 경애(敬愛)한다. 그들에게 행복과 장수(長壽)와 안락과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번 책은 내 생애 세 번째이다. 이 나이 되어 책을 쓴다는 게 쉽지는 않은데, 나는 무명의 아마추어로서 이상하게도 잘 쓰건, 못 쓰건 늘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심심하면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공부도 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현상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 나이 들어 왜 이러는 것이냐?’라고 나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답한다. 그래서 그냥 쓸 수밖에 없다.
나는 1955년생, 양띠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섬진강 변 백사장과 송림에서 뛰놀았다. 아버지가 ‘자식 공부시킨다’며 공직을 그만두시고, 마산으로 이사를 하셨다.
나는 전학 온 마산의 초등학교를 마치고, 마산중·고에 들어갔다. 당시 마산중·고는 지방에서는 꽤 알아주는 학교였고, 특히 마산중은 학부모들이 선망하고, 입학도 어려웠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이 학교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여, 과외선생님 댁에서 기숙(寄宿)하며, 힘들게 ‘골인’하였다. 그때 어머니는 조석으로 음식을 해 나르셨다. 내 기억으로 중학 시험을 앞둔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6학년 때 평생의 공부를 다 한 것 같다. 새벽에 등교하여 달 뜨면 학교 문을 나왔다. 시골 학교 아이가 도시 학교 아이로 변하는 과정이었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중학에 못 들어갔을 것이다. 눈물로 감사드린다. 고등학교는 친구들 따라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무조건 서울로 가자’ 하는 심정으로, 한양대 신문학과(현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해군을 마치고 졸업한 후 중앙 언론사를 노크했으나 물을 먹었다. ‘에라, 서울에 남지 못할 바에 고향에 가자’ 하고 마음먹고, 창원의 《경남신문사》에 수습 공채로 입사, 국회 출입 기자, 편집국장, 부사장을 끝으로 퇴사했다. 이후 지역의 세인약품 대표와 경남로봇산업진흥재단(현 경남로봇랜드재단) 원장을 거쳐, 창원 문성대에서 초빙교수로 ‘봉급생활’을 마감했다.
신문사 재직 중인 55세 때 경남대에서 ‘저널리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놀고먹는 ‘무위도식(無爲徒食)’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나에게 딱 맞다. 2년 전 출간한 도서, 《나의 인생, 나는 나대로 산다》에 ‘백수’의 일상이 소개되어 있으니, 한 권 사보기를 권한다. 최소한 책값은 할 것이다. 이 책은 출간 후 매달 1~3권이 팔린다. 왕초보 저자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나는 나의 졸저(拙著)를 사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6년에는 국회 출입 기자 시절 스토리를 엮은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여의도 이야기》를 출간했다.
이상이 나의 인생 이력이다. 그렇고 그런 수준이다. ‘스펙이라 하는 것, 다 부질없는데, 괜한 신경을 썼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 어찌하랴? 인생 재활용도 되지 않고 물릴 수도 없는데 인정하고 편하게 지낼 수밖에.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지나온 과거가 그랬듯이 예측할 수 없다. 인연 따라 흘러갈 것이다. 우리는 머잖은 시간에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이 시대의 시니어들이여, 이 만고불변의 회귀(回歸)를 잊지 마시고 사는 날까지 부디 마음 편히 지내십시다그려. 시간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다오. 그러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