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로마서를 제대로 읽는다!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로마서를 새롭게 읽는 순간마다 교회와 신학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1522년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 이른바 『9월 성경』을 내놓았을 때가 그랬고 약 400년 후, 스위스의 젊은 목회자 칼 바르트가 『로마서』를 출간했을 때도 그랬다. 로마서를 다시 읽는 일은 때로 한 사람의 신앙을 넘어 한 시대의 신학과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이 되었다. 강산 목사의 『로마서, 풀어쓴 성경』은 기존 번역을 조금 쉽게 고쳐 쓴 책이 아니다. 익숙한 한글 성경과 오랜 신학적 해석의 틀에 길들여진 우리의 시선을 다시 원문으로 돌리고, 로마서를 바울이 처음 로마 교회에 보냈던 ‘살아 있는 한 통의 편지’로 다시 읽고 들으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헬라어 원문의 단어 하나, 전치사와 접속사 하나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5년 동안 원문과 치열하게 씨름하며 천착(穿鑿)했다. 국내외의 탁월한 번역본과 권위 있는 주석들을 폭넓게 비교·검토했으며, 번역된 문장을 백 번 가까이 읽고 다듬고 고쳐 썼다. 그 결과 이 책은 두 개의 날개를 갖게 되었다. 하나는 헬라어 원문의 의미와 문법을 최대한 세밀하게 보여주는 ‘정밀 직역’이고, 다른 하나는 그 깊은 의미를 오늘의 한국어로 생생하게 풀어낸 ‘풀어쓴 의역과 해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장점을 열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응고된 교리집’에서 ‘살아 숨 쉬는 편지’로의 복원
로마서는 몇 개의 유명한 구절을 오려 붙여 만든 딱딱한 조직신학 교리서가 아니다.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던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 바울이 마음을 다해 써 내려간 살아 있는 편지이다. 이 번역은 로마서 1장부터 16장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논리와 호흡을 따라가며, 그 안에 담긴 바울의 따뜻하면서도 격정적인 마음을 되살린다.
② ‘그리스도(Christos)’에 담긴 왕적 선언의 회복
‘그리스도’를 예수님의 이름 뒤에 붙는 익숙한 종교적 호칭으로만 읽지 않는다. 가이사(Caesar)가 ‘주(Kyrios)’로 불리던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참된 왕, 온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선포하는 왕적 선언이었다. 이 책은 그 잃어버린 울림을 다시 살려낸다.
③ 지적 동의를 넘어선 ‘신실한 믿음의 충성(Pistis)’의 회복
‘피스티스(πίστις)’를 단순한 지적 동의나 내면의 확신으로만 축소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믿음, 신실함, 충성의 관계적 의미를 함께 살려냄으로써, 믿음이 단지 머리로 인정하는 교리가 아니라 왕 되신 주님께 삶 전체로 반응하는 신실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에서 믿음과 삶, 믿음과 순종은 결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④ 주변으로 밀려났던 로마서 9–11장의 중심성 회복
로마서 9–11장은 오랫동안 난해하다는 이유로 부록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유대인과 이방인,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루는 이 세 장을 로마서의 중심 흐름 안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를 통해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구원의 섭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⑤ 12–16장의 삶과 공동체를 복음의 필연적 결론으로 연결
로마서 12장 이후의 말씀은 앞부분의 신학이 끝난 뒤 덧붙인 ‘윤리적 부록’이 아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성도들이 어떻게 한 식탁에 앉아 서로를 받아들이고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필연적인 결론이다. 이 책은 교리와 삶을 다시 하나로 연결한다.
⑥ 헬라어 원문의 결을 살린 ‘정밀 직역’
MBT 직역본은 원문의 어순과 문법적 구조, 전치사와 접속사, 반복과 병렬의 리듬을 가능한 한 그대로 드러낸다. 하나의 헬라어 단어에 여러 의미가 가능할 경우, 그 가능성을 쉽게 지워버리지 않고 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준다. 따라서 설교자와 성경 교사뿐 아니라 본문을 깊이 연구하려는 성도에게도 매우 유익한 기초 자료가 된다.
⑦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아나는 ‘풀어쓴 성경’
정밀한 직역이 이 책의 뼈대라면, ‘풀어쓴 성경’은 그 위에 입혀진 살과 피와 같다. 헬라어 원문의 의미와 문맥을 충분히 연구한 뒤, 이를 오늘의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풀어냄으로써 어렵게만 느껴졌던 바울의 논증이 마치 독자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 깊지만 어렵지 않고, 쉽지만 가볍지 않다. 이것이 이 번역이 지향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⑧ 1세기 로마 교회의 역사와 현실을 입체적으로 복원
바울은 진공 상태에서 로마서를 쓰지 않았다. 고린도에서 로마를 바라보고 있었고, 예루살렘을 거쳐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적 계획을 품고 있었다. 또한 당시 교회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할례와 음식 문제, 서로 다른 신앙적 전통과 문화가 충돌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문화적·지리적 배경을 본문과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로마서가 실제 사람들의 실제 문제를 두고 쓰인 편지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⑨ 난해한 본문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풀어내는 주석적 안내
로마서에는 한 가지 번역만으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구절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은 그런 문제를 억지로 감추지 않는다. 원문의 문법과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밝히고, 왜 이런 번역을 선택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로마서 2장 14절의 ‘본성’, 믿음과 행위의 관계,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문제 등 오랫동안 어렵게 읽혀 온 본문들이 전체 문맥 속에서 새롭게 이해되도록 돕는다. 확실한 것은 분명하게 말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정직하게 열어 둔다.
⑩ 한국 교회를 다시 본문 앞으로 이끄는 ‘거룩한 징검다리’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운 번역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다. 교리와 삶이 분리되고, 서로 다른 신앙적 입장이 쉽게 독선과 분열로 이어지는 오늘의 교회를 다시 로마서 본문 자체 앞으로 데려가는 데 있다. 익숙한 교리적 언어에서 살아 있는 말씀의 언어로, 오래된 해석의 틀에서 바울의 실제 목소리로 건너가도록 돕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무엇보다 『로마서, 풀어쓴 성경』은 서문만 읽어도 큰 도전을 받게 되는 책이다. 서문의 제목은 「안티테제(antithesis, 反定立)의 곡용(曲用)」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족이 겪었던 깊은 상처 때문에 어머니가 잠언 전체의 풍성한 흐름보다 특정 구절을 반복해서 붙들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종교개혁 이후 우리가 로마서를 읽어 온 방식과 연결한다. 저자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가치와 공헌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사건이었는지를 인정한다. 다만 이제는 그 시대의 논쟁과 프레임을 넘어, 로마서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다시 들어 보자고 요청한다. 몇몇 유명한 구절만이 아니라 로마서 전체를 읽고, 교리만이 아니라 바울의 마음을 읽고,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갈라진 공동체를 하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까지 읽어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풀어쓴 성경』은 독자에게 로마서를 새롭게 읽도록 초대한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로마서를,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바울의 목소리로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읽어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