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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상세페이지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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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전자책 정가
8,000원
판매가
8,000원
출간 정보
  • 2022.08.30 전자책 출간
  • 2020.04.22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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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9.3만 자
  • 27.6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65235545
ECN
-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작품 정보

외국이 더 알아주는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국내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빈곤 탈출의 세계적 모델’로 인기다. 새마을운동 자료 일체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의의에 대한 자료는 많아도, 그게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증언은 그동안 없었다(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바로 그 아쉬움에 응답하듯, 박정희 대통령 당시 농림부 실무 과장‧국장으로서 박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새마을운동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디테일을 다듬어 나간 고병우 전 건설부장관이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기파랑, 2020)를 펴냈다.
많은 국민이 ‘잘살기 운동’으로 기억하는 새마을운동. 그 잘살기의 목표가 ‘1980년대 국민소득 1천 달러, 수출 100억 달러’였다(박정희 대통령은 살아서 1980년대를 보지 못했으나, 목표는 3년 앞당겨 달성하고 갔다). 1972년 1인당 국민소득(GNI)이 340달러였으니 당시로선 만화같이 비현실적인 목표였지만, 지금은 정반대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숫자다(2019년 1인당 GDP 31,430달러, 수출 5,452억 달러).


세 번의 결정적 순간, 그 중심에 박정희

4월 22일은 ‘새마을의 날’이다. 2020년 4월 22일은 50주년(1970~2020) 새마을의 날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1970년 4월 22일 제1회 새마을의 날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멀리 6‧25 전후복구로부터 5‧16 직후의 경제개발을 거치며 씨를 뿌리고, 1960년대 후반 몇 년 동안에 걸쳐 서서히 형태를 잡아 나갔다. 1970년 4월 22일은 이미 검증된 새마을운동의 방식을 그해 가뭄 극복에 적용할 것을 논의하는 ‘한해(旱害)대책 전국지방장관회의’가 열린 날로, 새마을운동의 생일이라기보다 ‘성년식’이 열린 날이라 해야 한다. 다만, 이때까지도 아직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럼 1960년대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새마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 저자는 세 번의 결정적인 순간을 증언한다.

1) ‘잘살아 보세’ - 농특사업
1967년, ‘농어촌개발공사’ 설립안을 직접 대통령으로부터 재가받고 이듬해 공사 설립을 성사시킨 고병우 과장은 후속 작업으로 ‘농어촌 소득증대사업’을 입안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일개 과장의 보고를 일일이 메모해 가며 듣고 난 대통령은 여섯 가지 꼼꼼한 지시사항과 함께, 사업을 ‘제1차 농특사업’으로 부르고 행정지원을 위한 대통령령을 만들고 지원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한다(1967년 4월).

첫째, 이 사업은 농림부 단독으로 하려 하지 말고 정부의 관계부처가 모두 협력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하라.
둘째, 농어민들의 손에 돈이 쥐여질 수 있는 현금(환금) 작목을 선택하라.
셋째, 수익성이 높은 작목을 선택하라. 작목별 수익성을 과학적으로 분석 계측하라.
넷째, 사업계획 작성을 농림부 단독으로 하지 말고, 시·도지사가 각 지방의 실정에 맞게 작성하도록 계획 단계부터 참여시키라.
다섯째, 농어업정책 중에서도 특수한 정책임을 관계 정부 부처, 시·도지사, 시장·군수와 참여 농어민들이 모두 같이 알 수 있도록 사업명을 표시하라.
여섯째, 참여 농어민이 스스로 자기 돈을 투입하도록 하라. (60~62쪽)

이 농특사업이 아직 이름도 없던 새마을운동의 실질적인 시작이라고 저자는 증언한다.

2) ‘하면 된다(can do spirit)’ - 경진대회
‘대통령 박정희’의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라면 단연 왼손을 죽 벋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사진을 꼽을 것이다. 흔히 어느 건설 현장에서 지시를 내리는 사진이라고들 설명하나, 이 책 저자는 ‘1969년 9월 18일 시민회관(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라고 잘라말한다.
이날은 제1회 전국 각 시도별 농특사업 경진대회가 열린 날. 최우수 사례로는 충청북도의 머슴 출신으로 농특사업에 참여해 하우스농업 1년만에 부자가 된 하사용 씨가 뽑혔다.

경진대회 마지막 순서는 대통령의 치사였다. 실무자가 청와대 공보비서관실의 협조를 받아 준비한 대통령 치사문을 연단 위에 올려놓았으나, 단상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은 원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을 번쩍 높이 들어 하사용 씨 쪽을 가리키며 “저렇게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하니 저렇게 성공하지 않습니까. 하면 된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해봅시다!” 하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할 수 있다’의 새마을 정신, ‘can do spirit’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85-86쪽)

3) 인센티브 원리: 남아도는 시멘트
경제개발의 일환으로 시멘트공장을 많이 짓다 보니 시멘트가 남아돌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무부를 시켜 1천만 포대의 시멘트를 정부가 구입해 전국 3만 4천 개 부락에 조건 없이 300포대씩에 철근 1.5톤씩까지 끼워 균분해 주도록 하면서, ‘새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이름 붙였다. 아직도 ‘새마을운동’은 아니다. 1970년 가을의 일이다.
1년 뒤, 사업 성과 평가에 나선 교수단은 고민에 빠졌다. 3만 4천 개 마을 중 1만 8천 개 마을은 받은 시멘트와 철근을 야무지게 사용했는데, 1만 6천 개 마을은 사적으로 낭비하거나 묵혀서 못쓰게 만들고 만 것. 고심 끝에 사실대로 보고하니 뜻밖의 반응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 “그래도 절반 이상은 효과적으로 잘 썼구먼.” 스스로 돕는 사람 더 도와주는 새마을운동의 ‘인센티브 원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의문 한 가지. ‘새마을’ 세 글자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하여 쓰게 됐을까?
1969년 일본 농촌 시찰에 나섰던 저자(당시 농업개발국장)가 한 마을에서 ‘아타라시이무라 쓰쿠리운도(新しい村作り運動, 새마을 만들기 운동)’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그해 6월, 농특사업 정례 보고 자리에서 이 말을 들은 대통령이 흘려듣지 않고 “그래? 일본 마을들도 새마을 만들기 운동을 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 ‘잘살기’라는 목표, ‘하면 된다’는 자조(自助) 정신,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인센티브 원리’가 ‘새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어 힘차게 도약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새마을운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빈곤 탈출의 세계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것을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고도의 정신적 구호로 실체화시킨 것이 박정희였다.
새마을운동 배태 당시 정부 지원체계, 농특사업의 사업‧작목 예시, 박정희 대통령 친필 ‘새마을 교과서’(1972. 4. 26, 광주 ‘새마을 소득증대 경진대회’ 치사 자료) 등, 당시 실무 공무원이었기에 주목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권말부록으로 실었다.


새마을운동의 ‘언성 히어로(Unsung Hero)’

생전의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가리켜 “저 양반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경북 구미 새마을 지도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만(119쪽),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의 저자 고병우 전 장관이야말로 박 대통령 못지않게 오로지 새마을운동을 위해 공무원이 된, 새마을운동의 ‘언성 히어로’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대학 강사를 하던 중 19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직속 ‘국민경제연구회’ 전문위원으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농림부 과장과 국장, 청와대 경제비서실, 재무부 차관보 등을 거치며 18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했다.
일흔 넘은 농촌 출신들은 혹시 기억할는지? 아직 ‘새마을 노래’도 ‘나의 조국’도 없던 1969년부터 3년 동안, 아침 여섯 시에 ‘애국가’가 나오면 곧바로 “안녕하십니까, 고병우입니다”로 시작하던 KBS라디오 ‘오늘의 농정’의 그 고병우 국장이다. 박 대통령 서거 후 공직을 떠났다가 김영삼 정부 때 건설부장관,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장, 2000년대 들어 한국경영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작가 소개

고병우(高炳佑)
1933년생.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직속 국민경제연구회 전문위원으로 공직을 시작, 경제과학심의회의 재경서기관, 농림부 농업통계과장·농업경제과장·농업개발과장·농업개발국장, 대통령 경제비서관, 재무부 재정차관보 등을 거치며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최일선에서 박정희 대 통령을 보좌했다. 이후 쌍용중공업 사장, 쌍용투자증권 사장,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건설부장관, 1994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장, 동아건설 회장, 한국경영인협회 회 장 등을 거쳤다. 청조근정훈장,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훈했다. 저서로 자서전 『혼이 있는 공무원』(200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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