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새벽의 혁명’ 2년―
제3공화국의 청사진을 그리다
평설 국가와 혁명과 나 (박정희 전집 7)
‘5천 년 가난’ 탈출의 서막(序幕)
<국가와 혁명과 나>(초판 1963)는 혁명 2년을 넘기고 반성 어린 눈으로 저간의 성과를 돌아보는 동시에, 곧 다가올 민정 이양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리는 한편 개인 박정희의 소회를 피력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국가’와 ‘혁명’과, 그리고 마지막 짧게 ‘나’가 책 내용의 골자를 이룬다.
먼저 혁명은 왜 필요하였는가를 이야기한다. 책을 낸 때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2차연도이기도 했다. ‘수치의 달인’ 박정희답게 산업과 측면의 제반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혁명의 성과를 정리해 본다. 반성도 섞여 있다. 가뭄으로 인한 개발목표 미달은 그렇다 치더라도, 화폐개혁이나 농어촌 고리채 정리가 무리수였다고 스스로 진단하는 대목에서는 모골이 송연하다.
전작(前作)인 <우리 민족의 나갈 길>(초판 1962)(박정희 전집 2[영인], 6[평설], 기파랑, 2017)에서 국가와 민족이 나가야 할 길은 어느 정도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그때는 많은 것이 ‘희망사항’이었고, 말인즉슨 맞고 올바르지만 아직 추상적이었다. 막상 집권하고 나서는 곧 “도둑맞은 폐가(廢家)를 인수하였구나!” 하고 자탄도 하던 그다. <국가와 혁명과 나>는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혁명 2년의 성과를 등에 업고, 비로소 그 전망을 한층 명료하게 다듬은, 말하자면 ‘제3공화국의 청사진’이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이때 이미 썼다. 그러나 어떻게? 일하는 것뿐이다. 박정희의 노동 예찬은 잘 알려져 있다. 열차의 “이등객차(그때 2등객차라면 고급이다)에 / 불란서 시집’을 읽는 / 소녀”를 들먹이며 “나는, 고운 / 네 / 손이 / 밉더라”(영인 270~271쪽, 평설 224쪽)는 급반전의 절창(絶唱)이 나오는 바로 그 대목이다.
기름으로 밝는 등은 오래 가지 못한다. ‘피’와, ‘땀’과, ‘눈물’로 밝히는 등만이 우리 민족의 시계(視界)를 올바르게 밝혀 줄 수 있는 것이다. (영인 272쪽, 평설 225쪽)
누구를 길잡이 세워 갈 것인가
다가올 민정 이양으로 수립될 제3공화국은 혁명의 연장이냐 부정이냐의 양자택일이기도 하다. 그 제3공화국의 밑그림을 위해, 20세기 세계의 혁명 사례들을 되짚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의 성패 기준은 확고하다. 성공한 혁명들인 일본 메이지유신, 쑨원[손문]의 중국혁명, 케말 파샤의 터키혁명, 나세르의 이집트혁명의 공통점은 나라를 일으켰다는 것이고, 나머지 대다수의 혁명들(중근동과 중남미의 혁명 사태)을 나라를 꺼꾸러뜨린 실패한 혁명이다. 그런데 박정희 손수 거사한 5.16혁명이 앞의 성공한 혁명들보다도 나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이 땅의 혁명이 “피 흘리지 아니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수행한 “이상(理想) 혁명”이라는 확신이다(영인 274쪽, 평설 227쪽). 그 스스로 이를 “밤의 거사(擧事)”가 아니라 “새벽의 혁명”이라 자부한다.
새벽! 그것은 바로 이 혁명의 목적을 상징하는 시각이다. 민족의 여명! 국가의 새 아침! 김포의 혁명 가도를 달리며 본인은, 밝아 오는 오늘의 아침을, 그리고 그 태양을 마음속으로 가득히 그리고 있었다. (영인 81쪽, 평설 63쪽)
초판이 발행된 것이 1963년 9월 1일, 민정 이양에 따른 제5대 대통령선거가 10월 15일로 예정돼 있었으니, 절박도 했을 터다. ‘혁명공약’의 시대를 뒤로 하고 군정을 마무리하며 ‘6대 강령’을 제시한다. 6가지라 했으나 사실은 2개씩 3묶음으로 읽어도 자연스럽다.
완수 혁명 - 전진하자
건설 경제 - 노동하자
단결 민족 - 실천하자. (영인 285쪽, 평설 237쪽)
자, 이 길을 누구와 함께, 누구를 길잡이로 앞장 세워 갈 것인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소회를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2쪽 분량이 채 안 되는, ‘나의 갈 길’이라는 제목의 이 마지막 단락에서 박정희는 ‘가난’이 자신의 스승이었음을 내세우며, “같은, ‘가난’이라는 스승 밑에서 배운 수백만의 동문”에게 호소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 돋움체로 된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는 정말 박정희가 직접 국민 앞에 내놓는 마지막 문장일 수도 있었다.
후일담 - 한 달 보름 뒤, 민간인 신분으로 나선 선거에서 박정희의 ‘470만 동문’은 그를 제5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2위 윤보선과는 46.6퍼센트 대 45.1퍼센트, 근소한 표차였다. 그 4년 뒤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격차는 박정희 51.4퍼센트, 윤보선 40.9퍼센트로 더 벌어진다.
<국가와 민족과 나> 초판 영인본(<영인 국가와 민족과 나>, 박정희 전집 3, 기파랑 刊)도 동시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