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통령 이승만은 4·19가 일어나자 학생들의 정의감을 크게 칭찬한 뒤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후 한 달여 사저 이화장에서 지낸 그는 1960년 5월 29일, 하와이로 떠난다. 이승만으로서는 부인 프란체스카와 함께 ‘잠깐 다니러 간 여행’이었으나, 언론에서는 이를 ‘망명’이라 못 박았다.
이승만은 한시도 귀향의 꿈을 버리지 않고 타의에 의한 하와이 생활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리도 돌아오고 싶어 하던 조국 땅에 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내렸다. 그리고 수많은 국민들의 애도 속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잠들었다.
이 책은 그가 이화장을 떠나 하와이로 간 뒤, 자신이 일군 대한민국을 그리워하며 보낸 5년 2개월 동안의 ‘눈물의 기록’이다. 정말이지 우리의 건국 대통령은 너무나 허망하고 쓸쓸하게 머나먼 태평양의 섬에서 눈을 감았다.
* 내용 엿보기
1960년 5월 24일, 하와이 동지회장 최백렬(崔栢烈, 미국명 윌버 최) 씨로부터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휴양을 하실 수 있도록 체류비와 여비 일체를 부담해 드릴 테니 하와이를 다녀가시도록 하라는 내용의 초청 전보를 받았다. 그리하여 2주일 내지 한 달 정도 하와이를 다녀올 수 있는 짐을 챙겼다. 5월 29일, 상오 7시에 이화장을 출발했는데 떠나기에 앞서 대통령은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늦어도 한 달 후에 돌아올 테니 집을 봐 줘”하고 부탁했다.
차를 타고 이화장 문을 나서니 이미 신문사 차가 와 있었다. 김포지역에 들어서자마자 호외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 박사 망명’호외였다. 김포공항엔 허정 내각수반과 이수영 외무차관 등이 나와 있었다.
당시 기내에선 세관원들이 들어와 소지품 검사를 했다. 그때 짐이라곤 이 박사 옷과 부인 옷이 들어 있는 트렁크 2개, 샌드위치와 마실 것, 평소에 쓰던 타이프라이터 한 대 등 모두 가방 네 개였다. 조종사들이 식사를 하느라 한 시간 가량 시간이 있었다. 기자들이 몰려와 회견요청을 했으나 이 박사는 “내가 아무 말 않고 조용히 떠나야 한다”고 했으며 부인은 “아이 러브코리아”하며 우셨다.
이승만이 귀국을 위해 노력했던 눈물겨운 모습은 망명생활 중 곳곳에 배어 있다. 5달러하는 이발비를 아껴 여비를 모으기도 했다. 그 바람에 한동안 머리가 보기 싫을 정도로 길어서 프란체스카 여사가 손수 이발을 해드려야 했다.
이승만을 찾아와 위로하고 가는 미국의 요인들도 많았다. 태평양 주둔 미군 총사령관인 화이트(Issac D. White) 대장이 그랬고, 주한 유엔군사령관을 지내고 당시에는 합참의장으로 있던 램니처(Lyman Lemnitzer) 장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와 맥아더 장군, 그리고 밴 플리트 장군도 이승만을 만나러 일부러 하와이에 들렀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가 6⋅25전쟁 중 이승만을 만난 뒤 평생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 이승만의 타계와 국립묘지 안장
“7월19일 0시35분, 임종하셨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으로 건국을 성취해냈고, 전쟁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해내며 전 생애를 아낌없이 불살랐던 위대한 한국인 이승만, 그는 이역만리 떨어진 땅 하와이 섬에서 고국을 그리다 너무나도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승만의 오랜 지기(知己) 보스윅(W. Borthwick)이 교회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관 앞에 섰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이 되어 이승만의 얼굴에 덮인 베일을 걷어내더니 울부짖었다.
“내가 자네를 안다네! 내가 자네를 알아! (I know you! I know you!)
자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네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가 잘 안다네!
친구여!
그것 때문에 자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자네가 그토록 비난받고 살아온 것을
내가 잘 안다네!
내 소중한 친구여...”
공항을 향해 출발한 시간이 9시 30분. 히캄(Hickam Air Force Base, Hawaii) 공군기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 30분. 히캄 공군기지에서는 미 의장대가 나와서 사열하는 가운데 6명의 육해공군 의장대가 조포(弔砲)를 발사하며 영결식을 진행했다. 그를 존경하던 미 장군들의 추도사와 함께 한 의장대원의 진혼 나팔소리가 열대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유해가 의장대원들에 의해 C-118 군 특별기에 실리자 뒤늦게 따라왔던 밴 플리트 장군도 존경하던 영웅과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동행을 희망하여 모두 16명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1965년 7월 21일 밤 11시 정각. 이승만의 유해를 실은 특별기가 서서히 활주로를 미끄러져가더니 이윽고 밤하늘 속으로 날아올랐다. 그가 하와이 섬에 마지막으로 착륙한 지 5년 2개월 만이었다.
서울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태평로를 지나 남대문, 한강교를 거쳐 국립묘지에 도착한 이승만의 유해, 태극기에 싸인 관이 서서히 의장대에 의해 영원한 안식처에 내려졌다. 1965년 7월 27일 오후 5시 45분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章)도 더불어 막을 내렸다.
작가 소개
1959년 부산 출생. 서강대학 물리학과 졸업. 서강대학교 공공정책 대학원 정치학 석사. 월간조선 기자. 한국갤럽 전문위원 역임. 현재 선거 컨설턴트, 근현대사 역사 강연 및 대필작가로 일하고 있음. 저서로 장편 동화 『맑은 공기로 숨쉬고 싶어요』, 『계초 방응모』, 『100% 한국인』,『이기는 선거와 현장조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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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마지막 하와이에서의 5년의 기록은 많지않다. 많지않은 기록 속에서 5년을 세월은 너무나 쉽게 "망명"으로 불려진다. 후세의 오해와 무지의 수치스러운 산물이며 혹은 게으로고 편협된 학계의 침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이승만대통령 부부의 노년은 정치적 망명이 아니며 더이상 그렇게 불려져서는 안된다는 삶의 기록이다.
"두분이 잠든 묘역 입구에도 이렇다 할 안내 문구조차 없었다. 묘역 입구 왼편에는 “눈물을 뿌리며 이 곳에 세우노라” 적힌 하와이 안인동지회의 추모비가 참서럽게 서 있다고 생각됐다. 이 박사 부부는 아직도 망명중인 느낌이었다."하와이에서의 삶이 워싱턴 독립운동의 연장이라는 프란체스카 영부인의 고백과 저자가 국립현충원 이화장에 대한 묘사가 책을 읽는 동안 가슴에 마음을 파고들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통일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울수 있기에 이 책은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2023년에 읽어도 자랑스러운 국부와 국모의 기록을 잃어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san***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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