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본讀本은 편찬자가 ‘정수精髓’라고 여기거나 ‘모범模範’이 될 만하다고 판단하는 글을 뽑거나 지어서 묶어 놓은 책이다. 따라서 편찬자의 의식과 입장에 따라, 겨냥하는 독자에 따라 그 주제와 범위를 달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편찬될 당시의 일정한 담론과 지향이 독본의 체재와 내용으로 반영된다. 독본讀本은 태생적으로 계몽적 성격을 띤다. 근대 담론이 형성되던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그 성격이 더욱 농후하다. 독본은 ??國民小學讀本??(1895) 이래 제도적 의미와 표준적 의미를 갖는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근대 지知를 보급한다는 목적 아래 단일하지 않은 성격의 텍스트가 혼종되어 있었다. 또한, 독본에 실린 글들은 읽기의 전범일 뿐만 아니라 쓰기의 전범이기도 했다. 즉, 독본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는 책들은 우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사상을 흡수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지만, 그와 동시에 선별되거나 창작된 글들은 그 자체로 문장 형식의 전범이 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쓰기 방식을 습득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근대 독본은 교육과 연계되는 제도화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읽기와 쓰기의 규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범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이와 같은 제도화 및 문범화란 독본의 편제 그 자체를 통해 독자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적극적인 의미 부여나 해설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영역임을 할당?배분?강조하는 양상이 1920년대 이후부터 뚜렷해진다. 실제로 1920년대 독본의 양상은 근대적 글쓰기 장場에서 하나의 문범文範 혹은 정전正典을 제시함으로써 넓은 의미의 근대 지知를 전달하는 표준적 매체로 기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갱신을 통해 철자법, 교육령, 성장하는 대중독자와 적극적으로 교직하면서 문학적 회로回路를 개척해 나갔다. 한편 독본은 그 자체로 당대 독자들의 욕망을 재구성한 대중적 양식이다. 특히 구성되고 확산되는 방식에 있어 더욱 대중적이다. 이는 독본이라는 텍스트가 갖는 생산성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인바, 텍스트가 궁극적으로 창출하는 문화?상징권력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독본이란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학문이나 분야를 축조하는 문화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축조의 과정은 텍스트의 구성 과정과 더불어 독본의 반영성을 드러내 준다. 정전正典, canon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렇듯 독본讀本, 나아가 작법作法 및 강화講話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여러 문화 지형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근대에 침전된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위계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있다. 문학 생산의 조건, 문학의 사회적 위상, 나아가 문화의 동학動學을 텍스트 안팎의 형식으로 우리 앞에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독본이라는 창窓이 갖는 근대문화사적 의미다. 독본이라는 창窓을 통해 일제강점기 근대를 살피면 텍스트 자체의 방대함 이면에 숨은 근대의 다종다기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떤 점에선 방대하기 이를 데 없으며, 또 어떤 점에서는 지엽적일 뿐인 여러 지점들은 문화론적 지평 안에 호명되는 순간 하나하나의 의미로 재구성된다. 이번에 추가하는 3권의 총서는 2년 전 출간한 것과 색다른 점이 있다. 1차분이 ‘좋은 문장’을 기준으로 선별된 문학의 전사前史를 보여 준다면, 2차분에서는 다양한 기준으로 분기된 독본의 진화 양상을 문화사文化史의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3차분은 해방 이후 독본 가운데 새로 발굴한 것과 아직 학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우선 엮었다. 그 사이 ‘근대 독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연구도 늘었다. 문학작품이나 신문 잡지 너머 떠돌아다니던 텍스트들이 근대 출판의 측면에서, 근대적 서간의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나아가 해방 이후의 독본 자료를 본격적으로 정리하기에 이르렀으며, 문학교육이나 근대의 교과서를 다루는 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모쪼록 새롭게 추가된 총서가 이러한 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갑작스런 해방과 새롭게 펼쳐진 해방기 교육·문화의 장에서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교육은 제 모습을 갖추기 어려운 형편이었고, 정치적 격변과 혼란 속에서 정규 교과서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한글책이 국어 교과서를 대신하고, 국가 차원에서 검인정 체제가 마련되어가면서 해방 이전의 독본 및 강화류가 다시 재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때, 신영철의 ??신문장강화??는 해방 이전과 이후, 근대 독본 텍스트의 연속과 불연속을 보여주는 자료이면서, 동시에 해방기 독본 및 강화류가 어떻게, 왜 ‘귀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문장 이론과 문범이 어떻게 재배치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먼저 신영철의 ??신문장강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당대 자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장 이론이나 문범이 되는 제재를 편자의 관점에 따라 재배치하는 것은 독본 및 강화류 텍스트의 전형적 구성이다. 해방 이전 가장 대표적이었던 ??시문독본??(1916), ??문예독본??(1931), ??문장강화??(1940)가 그러했던 것처럼 ??신문장강화??(1950) 역시 편자가 취사선택한 제재를 단원의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제재는 해방 이전의 것에 비해 해방 이후의 비중이 현저히 높다. 이런 특징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주목하게 하는데, 하나는 제재 가운데 논설류가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작품보다 실용문에 가까운 글이 많다는 사실이다. ??신문장강화??는 ??국도신문??, ??태양신문??, ??서울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하거나 재편된 해방기 언론 자료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이 문범으로 활용한 해방기 제재들은 당시 신문과 잡지에 수록된 사설, 칼럼, 수필, 기사 등이 대부분이다. 해방 이전에 발표된 글이나 문학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장 이론에 활용된 예문이나 좋은 글로 제시된 문범의 대다수는 해방 이후 발표된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는 ??신문장강화??의 목적과 지향이 ‘문예적 글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 글쓰기’에 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이 책의 특징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어문민족주의 관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조선어학회의 활동 및 한글전용론을 강조하는 제재들이 많은데, 문학 작품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편은 아니고 논설이나 기사의 논조 또한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표 나게 강조하는 대목은 주로 국어학 및 민족문화에 대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