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 근대소설이 저널리즘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획득한 미학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그간 저널리즘과 문학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는 매체-제도적 관점, (대중)문화론적 관점 등에 입각해 이루어져왔다. 이러한 연구는 ‘문학텍스트주의적 관점’에 대한 회의와 그 극복의 방법으로 시도되어, 근대문학의 제도적 기원이나 근대성의 특징을 규명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지닌 독특한 미적 구조나 자율성을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문학연구가 문학과 사회구조 혹은 제도와의 길항 관계를 통해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궁리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간의 매체-제도적 관점이나 문화론적 관점의 연구는 다시 문학 텍스트의 미학적 차원에 대한 논의로 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이 다시 문학 텍스트의 내부와 외부를 구획짓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미학적 특질에 대한 규명은 그것이 놓여있는 그 매체·제도적 환경과의 역학 관계를 세밀하게 톺아내는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져야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는 매체·제도적 측면과 근대소설의 미학적 특질의 상관성을 규명하기 위해, 근대 작가들의 저널리즘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창작활동의 관련 양상에 주목하려고 한다. 근대소설을 저널리즘과의 상관성 속에서 고찰한다는 것은 저널리즘이 다루는 경험의 세계와 길항함으로써 근대소설이 획득한 미적 특성과 그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 해당된다.
문학과 일간신문의 결합은 증기기관의 발명이 갖는 혁명적 효과와 같이 문학적 생산의 모든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는 언급처럼 신문저널리즘은 문학의 생산과 소비의 행태는 물론 문학 장르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화계몽기 근대 신문저널리즘의 국문운동과 민족주의 담론의 생산은 근대소설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신문저널리즘이라는 공론장의 성립으로 공적 담론의 소설화의 가능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특히 신문저널리즘과 근대소설은 각각 ‘사실’과 ‘허구’로 제도적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내면’이 형성되어 근대소설을 성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근대 신문저널리즘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다양한 담론적 실천이 근대 소설양식이 제도적으로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저널리즘과 근대소설의 영향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매체-제도적 관점, 문화론적 관점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간의 연구는 근대소설의 제도적 기원과 근대성의 특징을 해명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매체론적 연구는 근대소설이 지닌 독특한 미적 특징과 소설 고유의 미적 자율성을 해명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이러한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신문저널리즘과 근대소설의 영향 관계에 대한 연구는 한 작가의 고유한 미적 세계를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그간의 매체-제도적 관점에서 이룩한 연구 성과들을 발전적으로 이어받으면서 신문저널리즘의 상황에 대응하여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간 근대소설의 미적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근대 작가들이 신문사 기자활동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많은 근대 작가들이 ‘기자-작가’로서 창작활동을 했다는 점과 그러한 위치에서 당대의 현실(삶)을 파악하는 경로로서의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읽고 썼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저널리즘과 문학의 상관성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한 관점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작가’로서 근대작가를 바라볼 때, 그들이 창작한 소설과 그 미학적 특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작가’의 존재는, 근대작가들의 존재론적 토대로 작용하는 저널리즘 환경 일반에 대한 논의를 보다 ‘문학’의 차원으로 심화시켜 논의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근대작가들의 ‘기자-작가’로서의 저널리즘 체험은 매체·제도적 환경과 소설 텍스트의 미학적 특질을 규명할 수 있는 매개적 실마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근대소설의 미적 특징을 규명하기 위한 대상으로 ‘기자-작가’의 저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에 집중하고자 한다. 식민지 조선의 민간지는 제국에 의해 허가되고 관리되는 저널리즘이었다는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저널리즘의 상황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체험했으며 그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뚜렷했을 ‘기자-작가’의 소설을 중심으로 근대소설이 획득한 미적 특징을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