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4.09.25
머리말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라는 무더위가 기승(氣勝)을 부리는 8월이다. 저자가 흠모하는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 즉 더위를 이기는 여덟 가지 방법 중 몇 가지를 적용해보았지만 인간적으로 덥고 습한 기운을 이겨내기란 벅찬 일이었다. 개강 전에 다섯 번째 책을 출간할 욕심으로 나름 촌음을 아껴 한 뜸 한 뜸 수를 놓듯 글쓰기를 계속했지만, 냉방기에서 나오는 찬 바람을 마시면 잔기침이 나오는 체질 탓에 창문을 열어놓은 채 글쓰기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되새겼다. 주문이 통했는지 냉수욕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알게 한 이번 여름도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
드디어 <인문의 힘> 시리즈 총 5권의 출간을 마무리했다. 저자 스스로 오감(五感) 인문학이라고 칭하면서 인간이 지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 가지 감각으로 인간이 남긴 무늬와 흔적을 좇는 작업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동안 세상의 무대에 올려진 저술들은 2022년 5월 《인문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의 출간을 시작으로, 2023년 1월 《인문의 마음으로 세상을 읽다》, 2023년 9월 《인문의 귀로 세상을 듣다》, 2024년 3월 《인문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다》 그리고 이번에 《인문의 향기로 세상을 품다》 등 총 다섯 권이다(2021년 7월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현대인의 인문학》을 더하면 6권에 이른다). 〈인문의 힘〉 시리즈를 출간하겠다는 저자 자신 그리고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시리즈를 종료하면서 독자에 대한 고마움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지라도 고마움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먼저, 저자의 인문적 관심과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 인문학자로서 저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도록 도와준 동료 박연정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박 교수님은 2020년 당시 교양 주임으로서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균형 잡힌 교양과목의 개설을 고민하던 중에 저자를 발굴하여 《현대인의 인문학》이라는 과목 개설에 참여토록 이끌어 주셨다. 박 교수님이 동료의 관심과 재능에 무관심했다면 오늘날의 인문학자 염철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둘째, 저자의 투박하고 거친 원고에 끊임없는 피드백을 제공하고 인문적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준 졸업생 박신아 교우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박 교우님은 빼어난 교열 및 교정 전문가로서 저자의 졸고(拙稿)를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소재를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했다. 박 교우님으로 말하자면 저자와는 사제의 연을 맺고 있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저자의 멘토이자 스승이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셋째, 〈박영스토리〉의 노현 상무님과 전채린 차장님의 노고에 대해서는 말로써 고마움을 표현하기는 여백이 부족할 정도다. 시리즈 5권 초고를 보낼 때, 노 상무님이 저자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교수님, 몇 권까지 쓰실 것인가요?” 이 질문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저자는 알고 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출간된 시리즈 4권까지 팔린 부수가 얼마나 되는 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 이사님은 인문학 저술의 출판이 출판사에 의미 있는 수익창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지만, 출판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들어맞는다는 것만으로 흔쾌히 출간하는 데에 뜻을 함께하셨다. 마음 같아서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일정량의 부수를 구입하는 것이 도의에 맞겠다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정상적인 상도덕은 아닌 듯하여 마음으로만 응원하기로 했다. 전 편집인은 저자의 온갖 요구사항을 묵묵히 그리고 친절하게 수용하면서 저술의 완성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데 수훈갑(首勳甲)이 되었다. 시리즈 3권의 경우에는 열두 번에 걸쳐 교정지를 주고받았을 정도다.
넷째, 고려사이버대학교 인재개발학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지지와 격려는 지속해서 글쓰기를 하는 데 큰 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작가 사인회’ 및 ‘저자와의 대화’ 등과 같은 무대를 마련하여 저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는가 하면, 몇 사람은 전체 시리즈를 구입하고 읽은 소감을 보내오기도 했다. 시리즈를 읽은 제자 독자들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교수님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이라든지 저자가 중시하는 삶의 가치를 알게 되어 좋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내와 가족이다. 저자는 자신과 가족을 스스로 앞에 내세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시리즈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면서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않고서는 인문학자로서 인간성이 메말랐다고 질책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리즈가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마치 시험공부를 하듯 정독(精讀)하고 공감해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저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가족이 있기에 오늘의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카카오(Kakao)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도록 안내하고 다양한 소재를 제공해 준 어진과 민서 부부에게도 고마움을 남긴다.
인문(人文)은 인문(人紋)이다. 문(紋)은 무늬를 가리키며, 인문은 곧 사람의 무늬다.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인물, 역사, 철학, 사상, 문화 등과 관련된 수많은 서사(敍事)를 체질한 결정체도 결국 사람의 무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무늬는 그 사람의 나이테로 치환할 수 있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삶의 나이테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즉 식물뿐 아니라 동물 심지어는 물고기에게도 나이테가 있다. 나무의 나이테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목질(木質)이 다르다. 북쪽에서 자란 나무의 나이테는 추위를 견뎌 촘촘하고 강도가 높다. 남쪽에서 자란 나무는 상대적으로 무르다. 같은 느티나무라도 물가에서는 빨리 성장한 대신 푸석푸석하고, 자갈밭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를 따라 균열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무늬도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할 것이다. 어렵고 힘든 세월을 견뎌낸 사람의 무늬는 단단할 것이다. 대신 편안하게 살아온 사람의 무늬는 부드러울 것이다. 사람의 무늬를 알면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시리즈를 완성해가면서 인간과 자연에 새겨진 수많은 유형의 나이테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삶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인문학자가 좇아가야 할 인간의 근본적인 무늬, 즉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더 충만해진 듯하다. 그리고 인문학이 탐구해야 할 기본 영역에 해당하는 인간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과 역사, 인간과 우주와 자연의 질서, 인간과 철학, 인간과 사상, 인간과 문화 그리고 신의, 우정, 배려, 희로애락 등 인간성의 근본을 좇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문학이라는 그릇이 담아야 할 구성 요소들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확신을 하게 되면서 글쓰기가 쉬워졌다고 생각한다. 구성 요소들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채 글을 쓸 때는 마치 학술 논문의 주제를 잡고 논지를 전개하는 것과 같이 거창한 담론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인문학의 소재를 발견하여 인간의 본질을 터치하고 거기에 함축된 삶의 무늬를 다양한 관점에서 그려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값진 깨달음인가 싶다.
겁 없이 시작한 시리즈 출간을 마치고 난 소감은 시원섭섭하다고 할 것이다. 마음먹었던 과업을 완수했다는 후련한 감정은 이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글쓰기 작업은 계속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부족한 저자의 글에 공감하며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24년 8월
북촌 화정관에서
염철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