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1.02
머리말
이 책은 「공공갈등과 정책이론」이라는 제목으로 6부 12장에 걸쳐 ‘정책학의 구조와 논리’라는 개념적 안목(conceptual lens)을 통해 공공갈등의 난제(puzzles of public conflict)를 들여다보고 있다. 정책학(policy science)이란 다양한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분석하여 결정한 정책내용을 집행하고, 그 결과를 따져보고 평가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하면, 정책학이란 결국 정부 정책에 대하여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명백한 의사결정과 실행 과정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이 책에서는 더 좋은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 더 나은 정책집행을 하는 방법, 그리고 올바른 정책평가를 통해 시행착오를 확인하고 학습하여 정책을 개선하는 방법과 논리를 탐색해 볼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나은 정책 과정과 정책 결과를 원할 때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2000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줄곧 공공갈등 문제와 정책이론을 연구해 오면서 “공공갈등의 난제를 정책이론의 틀로 풀어낼 수 없을까?”하는 질문에 빠지게 되었다. 공공갈등 발생의 원죄는 대부분 정부 정책추진 과정에서 수혜집단과 피해집단을 탄생시키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피해집단은 정부 정책으로 인해 평온한 삶에 부담이 주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저항하게 된다. 편익과 비용이 공정하게 배분되어 합의 형성에 이르는 난제를 지혜롭게 풀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집필 동기이고 목적이다. 저자는 공공갈등과 관련한 이론과 기법의 발전도 필요하지만, 정책설계와 집행을 잘 다듬어 보면 공공갈등을 완화하거나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 책의 대략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부는 2개의 장에 걸쳐서 정책의 개념과 유형, 그리고 정책학의 구조와 논리를 다루면서 공공갈등과 정책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있다. 제2부 역시 2개의 장에 걸쳐 정책체제(policy system)를 둘러싼 환경의 분석을 토대로 수많은 사회문제 중에서 어떻게 특정 문제만이 정책의제로 설정이 되는지 다루고 있다. 편익의 창출을 위한 전력 생산을 의제로 설정하게 되면, 어딘가에 발전시설이 위치해야 하고 대상 지역은 반발하게 되면서 갈등도 시작되는 것이다. 부산지역 고리원전을 둘러싼 갈등과 선택, 위험시설을 둘러싼 무의사결정의 문제 역시 정책과 갈등의 필연적 관계를 보여준다. 제3부는 채택된 정책문제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분석의 이론과 기법을 소개하고, 원만한 합의형성의 토대가 되는 갈등영향분석, 공론조사, 환경영향평가 사례를 다루었다. 그리고 어떻게 정책결정을 잘할 것인지의 고민을 다양한 정책결정모형을 통해 탐색해 보았다. 공공갈등의 특수한 측면으로 볼 수 있는 딜레마를 분석한 딜레마이론의 정책결정 모형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고, 협상과 갈등조정, 관료정치를 통한 합의형성과 정책결정 사례를 다루었다. 제4부는 결정된 정책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정책기획과 정책기획안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정책집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때 협력적 정책기획의 지혜를 댐 건설 갈등 사례에 적용하고 토론해 보았다. 제5부는 긴 여정을 마친 정책 과정이 가져온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다룬 정책평가의 구조와 논리를 다루었다. 우리나라 정책평가 사례를 다루면서 부산지역 교통정책혁신 과정에서 나타난 환경영향평가 경험을 소개했다. 한편 정권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4대강 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갈등을 마감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관된 원칙에 따라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책집행과정에서 그리고 정책평가를 통해 어떠한 요인 때문에 정책이 변화하는지 그리고 바람직하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책변동의 논의를 정책옹호연합모형과 다중흐름모형을 통해 설명했다. 제6부는 어떤 이론을 통해 어떻게 정책과정 전반을 합리적으로 조율할 것인가의 고민을 다룬 새로운 정책이론과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차이와 협력의 관점에서 정책이론과 정책현장이 만나면서 상호 발전하는 모습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풀어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묘사하였다. 여기서 소개되는 정책이론들은 대학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씨름할 때 적용해 볼 수 있는 다소 수준 높은 내용이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학습하고 강의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처음 정책학을 접한 것은 고려대학교 시절 김영평 교수님의 ‘불확실성과 정책의 정당성’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이때 정책이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는 박동서 교수님을 비롯한 은사님 한분 한분을 통해 정책이론을 어떻게 현실에 접목해야 하는지 정말 쉽게 공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지도교수님이신 홍준형 교수님을 만나면서 법정책학(法政策學)의 관점에서 정책을 제도화하는 훈련을 받았고, 한강수계와 낙동강수계에서 강을 끼고 나타나는 다양한 공공갈등 문제를 정책과정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과 합의형성과 정책발전을 위해 연구자에게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미처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은사님과 동료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이 책과 관련하여 이론구성 방법을 가르쳐주신 강신택 교수님, 폭넓은 정책이론과 시간이론을 제공해주신 정정길 교수님, 가외성과 정책의 정당성 문제를 고민하게 해주신 김영평 교수님, 딜레마이론을 학습하고 적용할 기회를 주신 이종범 교수님, 규제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신 최병선 교수님, 그리고 제도이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게 도와준 하연섭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차이의 관점에서 공공갈등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신 정용덕 교수님, 탁월한 법정책학적 식견으로 현장의 다양한 갈등 문제의 해법을 제공하신 경험과 지혜를 공유해 주신 홍준형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2016년 출간된 「공공갈등과 행정이론」과 2018년 출간된 「정책학의 구조와 논리」가 2024년 8월 절판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피앤씨미디어 박노일 대표와 임직원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공공갈등과 정책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간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출판해 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 박부하 과장님 그리고 박세연 사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꼼꼼하게 교정작업을 도와준 제자 이승환 군과 최수민 양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교수로서 그리고 정책학자로서 마지막 트랙에 들어선 가운데 작은 책으로 매듭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심히 부족한 책이지만 우리 공동체의 갈등을 정의롭게 해결하고 협력의 지혜를 발휘하는 데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24년 12월
김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