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인공지능(AI)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자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기술 발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군사 분야에서 AI의 활용은 미래 전장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군사 분야 AI에 대한 논의는 과대 포장된 기대나 막연한 공포, 또는 모호한 개념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2023년 여름,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AI at War』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해군R&D 기술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군사 분야 AI 활용에 대한 실질적인 지침서를 찾고 있었다. 우리 군의 AI 도입이 시급하다고 느꼈으나, 대부분의 관련 문헌들은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은 기존의 문헌들과 달랐다. 미 해군대학(NWC)과 해군정보전투센터(NIWC Pacific)의 전문가들이 2년여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이 책은 AI 기술의 실체와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해군 작전에서의 구체적 적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샘 탕그레디(Sam J. Tangredi) 박사와 조지 갈도리시(George Galdorisi)가 공동 편저를 맡아 19개 장의 체계적인 분석을 이끌어냈다. 전직 국방부 차관 로버트 워크(Robert O. Work), 전 태평양함대사령관 스콧 스위프트(Scott H. Swift) 제독 등 군 고위 정책결정자부터 패트릭 설리반(Patrick K. Sullivan) 등 AI 과학자, 폴 샤레(Paul Scharre) 등 국방분석가까지 다양한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AI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실용적 접근이다. 전반부는 AI 기술의 개념과 군사 적용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AI, 기계학습(ML), 빅데이터 등 핵심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단순 AI부터 일반 AI까지 각각의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자율무기체계(AWS)와 AI의 관계를 명확히 정립하고, 미국의 제3차 상쇄전략에서 AI의 역할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경쟁국의 군사 AI 프로그램도 상세히 평가하고 있다.
중반부는 해군 작전 분야별 AI 적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보?감시?정찰(ISR)에서의 AI 활용부터 통신체계 혁신, 지휘통제(C2), 통합화력 운용까지 실전적인 적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후반부는 사이버전에서의 AI 활용과 기만 대응, 자율성과 인간 의사결정의 균형, 해군 전략?전술에 미치는 영향 등 전략적?정책적 고려사항을 다뤘다.
해군 미래혁신연구단에서 근무하며, 산학연과 기술교류회 및 세미나 등을 통해 만난 많은 전문가들과 이 책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한다. 특히 최근의 전장 사례들은 AI의 군사적 활용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AI를 활용한 드론 작전이 전장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다. 특히 해상전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혁신적인 무인체계 운용은 강대국 러시아 해군에 큰 타격을 주며 비대칭 전력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우크라이나는 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드론에 AI 기반 표적식별 시스템을 탑재해 러시아군의 장갑차량과 방공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2022년 4월에는 넵튠 대함미사일과 함께 TB2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 모스크바함을 침몰시켰다.
2023년에는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무인수상정으로 더욱 대담한 작전을 감행했다. 6대의 무인수상정으로 구성된 군집 무인수상정을 투입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의 러시아 상륙함을 공격한 것이다. AI 기반 자율항해 기능과 군집 제어 기술을 탑재한 이 무인수상정들은 러시아 해군의 방어망을 뚫고 목표물에 도달해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도 AI의 혁신적 활용이 돋보인다. 이스라엘군은 AI 기반 영상분석 시스템 ‘Golden Eye’를 통해 위성사진, 드론 영상, 지상 감시카메라 등 다양한 출처의 영상정보를 통합 분석하여 하마스의 지하터널망을 신속하게 식별했다. ‘Fire Factory’ 시스템은 SNS 게시물, 통신 감청, 현장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24시간 내에 수천 개의 새로운 표적을 식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전장 사례들은 우리 군에게 세 가지 핵심적인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합동전장에서 AI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현대전의 승패는 각 군의 독자적 작전보다는 통합된 합동작전에 의해 좌우된다. 육?해?공군의 개별 전력을 AI로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군의 이지스함이 탐지한 적 미사일 정보를 AI가 즉시 분석하여 공군의 요격전투기나 육군의 방공부대와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면, 입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하다.
둘째, AI 기반 비대칭 전력 확보가 시급하다. 우리 군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에 비해 병력과 장비 면에서 양적 열세에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보듯이, AI 기술을 활용한 무인체계와 정밀타격능력은 이러한 전력 격차를 상쇄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고가의 함정 한 척 대신 다수의 AI 기반 무인수상정을 운용하거나, AI 군집 드론으로 적의 방공망을 교란하는 등 비대칭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셋째, AI를 활용한 방어와 억제 능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과 같은 AI 기반 방공체계 구축은 우리 군의 최우선 과제다. AI는 수초 내에 미사일의 궤적을 분석하고 최적의 요격 방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동시다발적 공격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한 AI 기반 조기경보체계를 통해 적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여 예방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전략적 함의는 상호 연계되어 있다. AI 기반 합동전장 능력은 비대칭 전력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이는 다시 방어와 억제능력 강화로 이어진다. 우리 군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AI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군사 분야의 AI 도입은 혁신적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핵심적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 기술적 신뢰성과 안정성 확보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민간 영역의 AI 오류는 서비스 품질 저하나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만, 군사 AI의 오판이나 오작동은 아군 피해나 무고한 민간인 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전장의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강건성(Robustness) 확보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적의 전자교란이나 사이버 공격 상황에서도 AI 기반 무기체계가 정상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윤리적?법적 규범 정립이 절실하다. AI 무기체계, 특히 치명적 자율무기체계(LAWS)의 경우 인간의 통제 범위와 수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인간의 의미 있는 통제”(Meaningful Human Control)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AI의 오판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휘관인가, AI 개발자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국제적 합의와 국내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셋째, 조직과 인력의 혁신이 필요하다. AI 전문인력 확보와 유지가 큰 도전과제다. 민간 기업들이 제시하는 파격적인 처우와 경쟁하면서 우수한 AI 인재를 군에 유치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순환보직 체계에서 AI 전문성을 어떻게 유지?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AI 전문장교가 2년마다 보직을 옮긴다면 깊이 있는 전문성 축적이 어렵다.
넷째, 안보?전략적 균형 유지가 관건이다. AI 군사력 증강이 오히려 역내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전략적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AI 체계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의존이 자주국방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딜레마도 존재한다.
이러한 도전과제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우며, 군과 민간, 그리고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할 문제들이다. 우리 군은 이러한 과제들을 정면으로 인식하고,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 책의 번역은 이러한 도전과제들을 인식하면서도, 우리 군의 AI 도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방산업체 엔지니어들에게는 구체적 개발 지침을, 대학 교수진과 학생들에게는 체계적 이론을, 연구소 연구원들에게는 기술 개발 방향을, 현역 군인들에게는 운용 개념을, 정책 실무자들에게는 전략 수립 지침을 제공하고자 한다.
군사 AI는 미래 전쟁의 게임체인저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기술 분야이다. 맹목적 기술 도입이 아닌, 우리 군의 실정과 한반도의 전략 환경에 맞는 단계적이고 선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 책이 방산업체, 군 관계자, 연구기관, 정책결정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이 되고, 나아가 대한민국 국방 AI 발전의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5년 1월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