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발해의 국호가 고구려와 관계가 있음을 논증한 연구서이다. ‘발해’는 현재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사이에 있는 내해를 지칭하기도 하며(보하이만, 혹은 보하이해), 한대 이래의 군 이름이었다. 한국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발해’라는 지명이 왜 고구려의 뒤를 이었던 나라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발해만(보하이만) 전체를 지배하려는 의도에서 붙여졌다는 등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필자는 대학교 입학 후에 쓴 대륙에 서다 의 초고를 준비하면서 당나라에서 활동했던 고구려 사람들이 ‘발해고씨’로 표기된 점에 주목하였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사기부터 신당서까지 소위 ‘25사’를 통독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인과 고씨, 고씨와 발해군이 각각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발해’라는 국호가 막연히 고구려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 후 문벌과 성씨에 대해 공부하면서 막연한 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필자는 한국사와 전혀 상관없는 ‘발해’라는 지명이 국호로 사용된 원인을 밝히면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가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본적지봉호, 연고지봉호, 군망(우리나라의 본관), 성씨 등을 실마리로 하여 고구려, 고씨, 발해고씨 등의 단편적인 퍼즐을 꿰어 맞춰 ‘발해’ 국호의 유래를 추론하였다. 부수적으로 학자들이 중시하지 않았던 당나라 시대의 원사료인 당회요 , 책부원귀 , 오대회요 등의 사서에서 발해를 고구려와 동일하게 기술한 사료들을 찾아내었다. 이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거나 고구려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발해를 둘러싼 역사왜곡 문제에 마침표를 찍을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1부에서는 당나라 사람들이 고구려(당시에는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고, 특히 발해와 관련된 서술에 ‘고구려’라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거나 축소하여 기록했던 현상을 지적하였다. 당나라 사람들은 공식문서와 묘지명(죽은 사람들의 일생을 기록하여 무덤 안에 넣은 돌) 등에 고구려라는 국명 대신 삼한, 조선, 요, 요동 등 다양한 별칭으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당나라 사람들은 ‘고려(고구려)’라는 국호를 피하고 고구려의 영토와 겹치는 발해의 영역에서 고구려의 흔적을 축소시키려고 했다. 표지와 본문의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의 영토 중 상당수가 발해와 겹침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사람들을 양자가 관계가 없거나 적은 것처럼 서술하였다. 의도적인 양자의 부정이 오히려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관계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본적지 봉호, 특정 성씨와 특정 지명의 결합(우리나라의 용어로는 경주이씨, 광산김씨처럼 본관과 성씨의 결합), 이러한 결합과 문벌의 관계, 중국의 책봉 봉호에 요동, 낙랑, 대방 등 군현의 명칭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러한 지명이 쓰는 관례 등을 검토하였다. 2장의 내용은 겉으로는 발해의 국호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발해의 국호가 고구려와 관련이 있음을 입증하는데 사용하는 단서이기 때문에 중요하였다.
3부에서는 시야를 고구려와 고구려 사람들로 한정하고 발해 국호와 고구려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성과 이름을 동시에 표기했던 중국 사람들은 이름만 표기했던 중앙아시아, 유목민, 백제, 부여 등 주변국 사람들에게 국가의 이름을 따거나 한 글자로 약칭하여 성처럼 표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사서에서 고구려 사람들의 성씨로 가장 많이 보이는 ‘고’씨가 고구려라는 국호의 약칭이었음을 밝혔다. 또 당나라로 끌려간 ‘고’성을 칭한 고구려 유민들은 고씨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발해군을 본관(중국 용어로는 본적 혹은 조적)으로 취한 사례를 이용하여 스스로 발해고씨라고 칭하였다. 이처럼 당시 고구려 유민에게 익숙한 ‘발해’는 당나라가 이들과 고구려의 관계를 부인하면서도 고구려 유민들의 계승성을 간접적으로 승인하는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책은 ‘발해’라는 국호가 고구려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음을 밝히거나 추론하여 소위 ‘동북공정’을 둘러싼 발해와 관련된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을 받는 발해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발해를 고구려(‘고려’)로 표기했던 사례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후속작을 준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