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구로노동자문학회’를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노동자 글쓰기의 문학사를 거칠게나마 조망해보려는 조그마한 시도이다.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지속된 구로노동자문학회는 ‘문학의 주체로서의 노동자’라는 상이 구현된 매우 특이한 문학사적 사례에 해당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근대문학은 일련의 지식인-엘리트 집단을 주체로 설정하였으며, 이러한 문학적 주체 설정은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식민지 시대의 카프나 1980년대 민족문학운동 등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 자체를 바꾸려는 고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 근대문학의 ‘주체’는 여전히 ‘양심적’(혹은 ‘실천적’) 지식인-엘리트 집단이었다는 점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기존의 문학사 인식은 그 주체를 소수의 문화적 엘리트 집단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속에서 일련의 노동자 글쓰기의 흐름들은 예외적인 ‘사건’ 정도로 간주되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문학사적 인식에 균열을 내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꼭 ‘구로노동자문학회’와 같이 명징하게 ‘문학의 주체로서의 노동자’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텍스트에 흔적으로 새겨진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문학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 단행본을 기획할 때보다 논의의 폭이 훨씬 넓어진 까닭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구로노동자문학회’를 중심에 두면서도, 이를 예외적 사건으로 보기보다는 문학사적인 연속성 속에서 조망하고자 하는 셈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구성을 취하게 되었다. 먼저 1장에서는 노동자 글쓰기를 둘러싼 문학사적 맥락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길게는 식민지 시대 소설에 나타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펴보고, 80년대 노동자 글쓰기의 이론적 조건을 마련한 민중문학운동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했으며,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자들의 고유한 독서 체험과 읽기 문화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노동자 글쓰기를 특정한 조건 속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닌, 나름의 고유한 문학사적 맥락 속에서 생성되고 전개된 결과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2장에서는 ‘구로노동자문학회’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연구자들에 의해 노동자 글쓰기의 대표적인 성과로 빈번히 언급되지만, 기실 구로노동자문학회의 설립부터 주요 활동, 주요 구성원의 특성과 내부 논의들, 그리고 해소에 이르는 과정 등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정리된 바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나의 주관적 해석보다는 가능하면 객관적 실증에 충실하고자 했다. 특히 인터뷰에 응해 주신 주요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3장에서는 ‘구로노동자문학회’를 비롯한 당대 전국의 다양한 노동자 문학회의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종종 노동자 글쓰기를 기존의 아카데믹한 문학 이론을 기준으로 분석하는 사례를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주류적인 문학 장에서 생산-유통되는 엘리티즘적 규범을, 문학 장의 ‘외부’에서 생산-유통된 텍스트에 그대로 대입하는 작업이 타당한 것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이 장에서는 노동자 문학회의 텍스트들이 지니는 나름의 ‘미학적 고유성’을 추출하고자 하였다. 이는 최근 일련의 서발턴 이론들이 조금은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는 테제를 반복하며, 정작 서발턴이 보여주는 다양한 ‘다르게 말하기’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과도 맞닿아 있다. 4장에서는 노동자 문학회 텍스트를 통해 나름대로 ‘한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복원해보려 했다. 이 연구를 진행하던 중 랑시에르의 저작(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접하게 되었고, 여러 측면에서 새롭고도 많은 ‘질문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 형식에서도 조금은 기존의 학술적 글쓰기와는 다른 형식의 글이 되었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잠’의 시간을 포기하고, 기꺼이 읽고 쓰는 시간(혹은 삐라 배포나 수배의 시간)을 택한 이들에 대한 일종의 독후감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5장에서는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던 이들의 현재를 읽고자 했다. 당대 노동자 문학 운동을 통해 대안적인 문학의 상을 고민했던 이들은,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도 ‘노동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문학적 모색은 단일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가능성’으로 분출하는 양상을 보인다. 여전히 노동과 문학과 삶이 결합된 구체적인 ‘상’으로서의 ‘노동문학’이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의 현재를 묻는 작업을 통해 구로노동자문학회 ‘이후’의 ‘노동문학’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