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4.19
<추천사>
작년 무더위가 오기 전 저자가 분단의 상처가 덧나 있는 파주 대동리의 벙커갤러리를 찾아와 이 책의 출판구상을 밝혔을 때, 내가 요청한 것은 오직 하나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것뿐이었다. 역사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저자이기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벙커갤러리에서 저자는 전투공간의 의미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둥지로서의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또한 중기관총 거치대에서 바라보이는 북녘의 산하를 보며 생명과 평화, 그리고 사랑의 화살을 찾아낸 이도 바로 그였다. 이 책에서도 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입법자는 철학자처럼 고민하고 농부처럼 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농부처럼 고민하고 철학자처럼 말한 법문조차 그의 상상력을 빌리면 법문은 시가 되고 법전은 노래가 된다.
저자는 정치관계법에 관해서 누구에게도 윗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경쟁해 온 것은 옆의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선거사이다. 그래서 그는 치열한 고뇌의 세월도 함께 견뎌내야 했다. 언젠가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남긴 ‘역사의 간지(奸智)’라는 말의 의미를 그도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의 중책을 맡고 있을 때, 저자는 법제국장으로 더 나아가 선거정책실장으로 선거를 총괄 지휘하면서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멋진 수호자들과 함께 선거관리위원회의 아름다운 시절(Bella Epoch)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가 중앙선관위에서 물러난 후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에 관한 사회적 논란이 제기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당대 최고의 헌법학자들과 함께 교우하고 토론하면서 미래의 헌법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선거를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고한 축으로 담아내려 노력하던 저자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곧 우리였다.
최근에는 2025년 1월 실시된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저자와 다시 만났다. 나는 선거운영위원장을 맡았고, 그는 주심위원처럼 논의를 주도했다. 선거결과 대한체육회를 둘러싼 분쟁이 종식되고 갈등이 해소되었다. 이것이 바로 공정선거의 힘이다.
이제 저자가 조합장 선거론을 끝으로 위탁선거에 관한 일련의 집필을 마무리한 후 이 책을 통하여 본업으로 돌아온 점을 기쁘게 환영한다. ‘법은 입법자보다 현명하다’는 말이 있다. 법의 역사성으로 이해한다. 평소 시대정신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 법 해석에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려는 그의 지혜를 사랑하고 존중해 왔다.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지혜는 이제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운명의 신은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저자를 사랑한다. 섬기고 봉사하는 능력은 아낌없이 주었으되, 군림의 권한은 인색하였다. 모름지기 민주주의 신념과 공화국에 대한 열정을 품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견뎌야 할 숙명이다. 글로 다하지 못한 그에 대한 사랑은 내 재능을 살려 책표지의 그림에 담았다. 이제 분단의 철망 아래 수줍게 피어난 작은 들꽃의 향기를 붓에 적셔 작가에게 전하는 말을 남긴다.
“언제나 깨어 있으라! 잠들면 춤출 수 없나니···”
2025. 4.
파주 벙커갤러리에서
김대년
<책을 내면서>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불편하고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에서 민주공화국을 쟁취하고 또 지켜내기 위한 격렬한 투쟁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피와 숭고한 희생이 뒤섞인 냄새일 것이다.
민주공화국과 함께 떠오르는 거북한 느낌을 지우는 마법, 그것이 바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선거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 향기로만 불편한 냄새를 지울 수 있다.
선거는 법과 정치가 융합된 영역이다. 이 두 개의 영역을 총체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비로소 선거의 본질이 오롯이 드러난다. 법의 영역에서는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가 조화를 이루어 모든 선거참여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정치의 영역에서는 다수결의 원리를 기초로 소수자 보호와 선거결과에 대한 아름다운 승복으로 공동체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이 책은 정치에 뜻을 둔 사람과 선거제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해설서이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은 일견 규율하는 영역이 전혀 달라 보이지만, 정치활동이라는 동일한 본질의 각기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은 그 방대한 분량으로 인하여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렵다. 총 300여 개 조문에 준용법률과 적용법률이 너무 많아서 현행 법률의 종합전시장으로 평가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개별 법률의 복잡한 조문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주제별?분야별로 입법 취지와 개념 중심으로 접근하였다. 아울러 설명하는 문법은 시민과 저잣거리의 언어로 평이하게 서술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복잡한 법조문을 정치지망생의 조심스러운 의문과 일반 유권자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따라 탐색하면서 관련 제도에 대한 해설도 함께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용어가 시민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고 난해한 부분이 남아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는 선거의 무결성이라는 이상에 치우쳐 선거법 위반자를 단호하게 논죄하였지만, 퇴임 후 진솔하고 내밀한 우리의 선거현실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내놓는다.
아무쪼록 이 책이 선거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벗이 되기를 희망하며 독자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충고를 기다린다. 퇴직 후 『MG새마을금고 선거론』과 『신용협동조합 선거론』을 거쳐 『조합장 선거론』으로 위탁선거에 관한 일련의 집필을 마무리하고 늦게야 본업으로 돌아와 이 책을 내놓는 점에는 만시지탄의 아쉬움도 있다.
이 책을 무기로 삼아 정치신인들이 자기검열에 따른 위축과 무지의 불법을 극복하고 낡은 정치에 당당하게 맞서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통하여 그러한 용기를 얻었다. 향후 개정판에서는 지혜와 통찰도 함께 담으려 한다.
2025. 4.
경강선 열차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