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씩으로 표현한 어린이를 위한 經”이라는 뜻의 ≪三字經≫! ‘經’이란 매우 무거운 느낌을 주는 말이건만 구태여 어린이에게 ‘經’이라는 말까지 넣어 교재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음을 말한 것이리라.
몽학(蒙學) 교재는 우선 ≪千字文≫이 있고, 곧이어 ≪百家姓≫을 더하여, 흔히 ‘三百千’이라 불리다가, 뒤에 다시 ≪千家詩≫를 넣어 ‘三百千千’이라 하여, 중국 民國 초 서양식 교육이 나타나기 전까지 입에 붙은 교재명이었다.
이리하여 지방마다 방간본(坊刊本)이 흥행하였고, 서당마다 필독 학습서로 낭송되었으며, 집집마다 소장하여 비치해두어, 그 절대 지위를 잃지 않고 지금껏 이어온 것이다.
우리도 그에 가까웠으나 ≪백가성≫과 ≪천가시≫, 그리고 이 ≪삼자경≫은 서당 교재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니 오직 “하늘 천, ᄯᅡ 지”하며 ≪천자문≫만 외웠다.
그러나 누군가 이 책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책을 펴내고 싶어 한 <목판본> ≪삼자경≫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계명대 도서관)을 보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기초 상식, 학술, 역사, 민속, 지리, 사상, 고사, 정서 등을 이렇게 압축하여 쉽게 정리한 책이 있을까 한다.
그것도 송대(宋代)에 이루어져서 근현대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증보하고 보충하여 어린아이는 물론 늙어가는 이에게도 지식욕을 채워주며, 교양을 재충전하도록 하니, 곁에 두고 아무 장이나 넘겨도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역사와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정말 유용한 책이다. “吾生也有涯, 而知也无涯”(내 삶은 끝이 있지만 알고 싶은 것은 끝이 없다. ≪莊子≫)의 명제를 해결해주는 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볍게 볼 내용이 아니다. 제목만 나열한 듯할 뿐이라 여겨, 뒤에 기다리고 있는 많은 양의 실제 부속물은 그저 훑기만 하고 지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마치 고구마 잎의 무성함만을 보고 감탄하면서, 그 밑 줄기에 주렁주렁 달려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수확물 고구마를 놓쳐서는 안 됨을 일러주는 구조이다.
이처럼 황금보다 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꿈을 심어주고, 인성을 계발하며, 사회성을 길러주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며, 정당한 노력만이 훌륭한 결과를 얻는다는 긍정적 사고를 유도하는 이상적인 책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전에 대한 적극적 보급과 교육이 사라지고, 심지어 우리가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임에도 동양 삼국 중에 유일하게 한자를 배제하는 표기와 기록에 의해 과거는 단절되어 가고 있다.
아마 이 책도 그저 중국에 흘러 다니는 하찮고 통속적인 몽학 교재쯤으로 여길 것이며, 그런 책 이름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 3자씩, 356句, 1,068字 87題의 적은 양에 짧은 글로, ≪천자문≫보다 불과 68자 많은 것이지만 이 속에 중국 동몽(童蒙)이 익혀야 할 모든 상식이 다 들어 있다.
즉 중국 5천 년 역사와 드넓은 동서남북, 수많은 인물과 관련 고사를 모두 아우르고 있으니, 첫 편집자(王應麟)의 정리와 압축 능력은 대단하다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것도 아주 쉽게 세 글자씩 묶어, 문장이 되고 의미가 통하도록 쉬운 글자로 엮어내었으니 더욱 놀랍다.
물론 중국 사람도 아닌 우리에게도, 그리고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이 책은 한번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아 왔던 이 동양의 역사 맥락과 사유 체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훑어보는 데 더없이 많은 행복감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정수(精髓)만을 모아 석 자씩 묶어, 외우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란 당시 편집자의 의도란, 바로 청년들로 하여금 배움이 얼나나 중요하며, 학습의 요소로써 어떤 제재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지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자는 “별짓 다 해보았지만 공부만 한 것이 없더라”(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라고 실토했다. 그 때문에 이 책도 곳곳마다 “배우고 익혀라. 그것도 너희들처럼 어릴 때”라고 권면하고 있다.
안지추(顏之推)는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 “어릴 때 외운 것은 죽을 때까지 입술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라 하면서, “어려서 배우는 것은 마치 해가 났을 때의 빛과 같으나, 늙어서 배우는 것은 마치 촛불을 잡고 밤에 걷는 것과 같다. 그나마도 까막눈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보다는 낫다”(幼而學者, 如日出之光, 老而學者, 如秉燭夜行, 猶賢乎瞑目而無見者也)라 하였다.
이 책에서는 속담 “遺子黃金滿籯, 不如一經”을 인용하여(086) 저작 편집 의도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삼자경≫은 그만큼 아직 가소성(可塑性)을 가지고 있는 동몽의 나이에 이러한 흥미 있고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교재이며, 나아가 일찍이 이러한 관점에 맞추어 교육 자료로 개발되었다는 것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제 이 책에 대하여 나는 관련 주석을 샅샅이 모아 정리하고 참고 자료까지 곁들이고, 설명 부분에는 압축한 도표를 제공하여 한 번 훑어볼 수 있도록 작업을 해보았다.
완선(完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완성도는 높여 이 책을 접하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해보려 가능하면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덧붙였다.
학술서가 아닌 평범한 초학 교재를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인 것은, 우선 나부터 도리어 기초를 잘 닦는 것이 급선무라 여겼기 때문이며, 내 공부를 위한 것이었다.
한편 이 책은 이미 출간되었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나의 한전총서(漢典叢書) 역주작업(譯注作業)이 중단되어 “하늘의 뜻이려니”하고 염담(恬淡)과 침잠(沈潛)에 들었을 때,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전체를 다시 수정판으로 내기를 청하여, “옳다구나! 공자가 말한 하늘이 장차 이 학문을 없애지는 않을 것(天之未喪斯文)이라 했으니, 그처럼 나에게도 이 사역(使役)을 지속하라는 운명의 짐을 아직 내려놓지는 않았구나!”라고 여기며, 모든 책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작업을 계속한 끝에 이 책의 차례가 되었다.
이제 나의 노년은 그저 “死而後已”의 짐을 무겁게 여기거나 지쳐 쓰러지지 않게만 해주면 된다. 그래서 늘 행복하다. 이 책을 이용하는 이들을 통해 그 저력(底力)과 에너지를 얻고 있음을 밝히며 고마움을 표한다.
甲辰년(2024) 12월 冬至에 黔丹山 雪害松 밑을 지나 내려와,
茁浦 林東錫이 負郭齋에서 다시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