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내었던 ≪천자문≫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하여 출간한다니, 불유구(不踰矩)를 살고 있는 이 나이에 감회가 새롭다.
나를까만 어린 시절로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회고와 감회에 딱 맞는, 이러한 것이 바로 ‘지로환동’(止老還童)이리라.
어릴 때 무언지도 모르면서 그저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누르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하고 화전민 산골 소년으로서 외우던 ≪천자문≫!
벌써 60여 년이 훌쩍 넘은 옛날 아득한 산촌 고향에서 소년기를 보낼 때이다.
그리고 급변하는 세태에 신식 학교에 들어갔고, 그 뒤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지금도 낭랑하게 외우던 그 소리까지 귀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단양 오일장 장바닥 구석에 좌판을 깔고 지식의 욕구를 채워주던 전달자 늙은 책장수.
신기하게 천연색 물감으로 그린 겉표지의 ≪장화홍련전≫이며 ≪옥단춘전≫, ≪홍길동전≫, ≪성웅이순신전≫이며, ≪사주팔자≫니 철 지난 ≪토정비결≫과 그 곁에 누렇고 얇디얇은 표지의 ≪계몽편≫, ≪동몽선습≫, 그리고 그와 함께 값없는 물건처럼, 그 흔하던 ≪격몽요결≫과 ≪천자문≫!
그리고 다시 다음 장날에는 새로운 인쇄기술을 자랑한다면서, 갓 쓴 한석봉 초상을 겉에 그려 꾸민 책 ≪천자문≫!
그 속은 실제 구멍 뚫린 마분지(馬糞紙)였지만, 새롭고 신기하다고 여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얄팍한 학문을 한다고 발을 들여놓고는, 그저 동몽서(童蒙書), 한자 입문서, 식자서에 불과하다고 느낀 이 ≪천자문≫을 언젠가는 자세히 다시 들여다보리라 여기면서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런데 불현듯 어릴 때 외웠던 구절이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떠올랐다.
“비로소 시(始), 말가실 제(制), 글월 문(文), 글자 자(字)”라고 외웠었는데, 지금도 “말가실 제”라는 훈(訓)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러다가 근래 ≪천자문자료집≫(박이정)이 나와 무심코 들여다보았더니, 역시 많은 지방판 중에 경북 봉화 지역 판본은 그대로 “가실 졔”로 되어 있는 것이아닌가!
“(문자를) 짓는다, 만든다”는 뜻이겠으나, 그렇다면 지금도 “말가시다”라는 말이 있는지, 아니면 ‘말음질하다(바느질하다)’의 뜻인가 하고 궁금하면서도, 내 자신이 ‘별것 아닌 일에 호기심을 못 벗어 화를 내는 어린 소년 같아’ 아주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어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나아가 ≪천자문≫은 무슨 깊은 뜻이 있다고는 했었던 것 같으나 자세히는 알 수 없었고, 그저 ‘낱자의 글자 알기 공부’가 위주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이제는 이런 뜻을 담기 위해 이렇게 넉 자, 여덟 자로 꾸몄으며, 게다가 운까지 맞추어져 있음에 대하여 새삼 감탄도 하고 있다.
아니 이 글을 하룻밤 만에 짓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어 ≪백수천자문≫이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설 속에 이루어진 책인가 보다’라고 여겼던 것도 자료를 찾아 풀어낼 수 있었으며, ‘기전파목(起翦頗牧)이 무슨 말이기에 외우고만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졌던 것도 중국 역사를 알고 보니, ‘이런 말을 하기 위해 이 넉 자를 썼구나’라고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별 진(辰), 잘 숙(宿)이라고 외웠지만 ‘辰’은 ‘신’으로도 읽고 12지에서 용에 해당하니 ‘미르’라고도 풀이하며, ‘宿’은 ‘자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별자리 ‘수’로 읽어야 하는구나”라고 터득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우연히 경기도 가평(加平) 시내 앞에 내 건너 마주 보이는 보납산(寶納山)에 초봄 등산을 갔다가, 한석봉 관련 전설이 서린 동굴도 찾아보아 현실감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교육은 외우는 것은 잔뜩 기피하고 있으며, 오히려 아주 잘못된 교육 방법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가끔 “아닌데?”하면서 고개를 저을 때가 있다.
외우는 것이 학습 방법의 순서에서 밀렸을 뿐이다.
구구단을 외움으로써 산수를 쉽게 이해해 나가듯이 그렇게 외워야 하는 과목이나 학습 내용은 제때에 외워두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세대는 ‘태종태세문단세’하고 조선왕들을 외웠고, 이십사절기(二十師節氣)며,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도 “갑을병정무기……”, “자축인묘진사오미……”를 넘어 이들의 조합인 육십갑자(六十甲子)도 다 외웠다.
그것도 모자라 이십팔수(二十八宿)며, 많은 시조(時調)며 가사작품, 어머니가 외우시던 영남 내방가사(內房歌辭)도 입에 붙었고, 나아가 한시(漢詩)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알려진 문장도 외웠다.
참으로 무지하고 무모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는 학습 거리도 많지 않았고, 어릴 때는 잘도 외워졌다.
안지추(顏之推)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의 말대로 “어릴 때 외운 것은 평생 입술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라 했는데, 그 기쁨을 지금 늙음에 이르러서도 느끼고 있음에랴!
지금 나는 ≪천자문≫을 외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나아가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다만 잘 외워지는 어린 나이에 무엇을 외워두는가 하는 것은 평생을 두고 엄청난 재산이 된다.
한창 저절로 잘 외워지는 나이에 엉뚱한 것을 외워둔다든지, 아니면 외우지도 아니하고 넘긴다는 것은 일면 안타까움도 있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천자문≫은 옛날 어린아이에게 한자 낱자를 익히도록 한 책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이도 있다.
만약 낱자 익히기라면 제목이 그저 ≪천자≫나 ≪동몽습자(童蒙習字)≫쯤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문(文)’자를 붙인 것은 ‘1천 자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미를 담은 문장이다. 대체로 8자, 16자 등으로 끊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그 8자 끝자는 억지로 운을 맞추어, 읽기에 아주 낭랑하도록 하였으니, 어쩌면 글자 배치에 무리가 있을 수 있으며, 비문(非文)에다가 개념의 나열이나 상황 설명의 병렬에 그칠 수도 있지만, 글자도 중복되지 않으면서 운까지 맞추었다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겨우 1천 개의 글자로, 그 속에 순진무구하여 가소성(可塑性)을 그대로 지닌 어린아이 때 익혀두어야 할 예의, 범절, 도덕, 문화, 역사, 풍속, 충의, 정절, 가족, 사회, 국가와 온갖 이야기를 다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으로 살아야 할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하면서, 아울러 낱자도 천자쯤을 익혀두면 그 어떤 책도 이를 바탕으로 확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특히 고대에는 필기구가 붓이었던 만큼 천자 정도의 글씨를 쓰면서, 글자의 기본 필순과 획수, 문자의 구조와 조형미 등을 암암리에 익힐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千字文≫은 시중에 책과 만화, 일화와 이야기로, 학습지와 동영상으로 등 수없이 많은 학습 자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글 전용 시대지만 그래도 한자를 익혀두어야 한다는 뿌리 깊은 무의식이 자녀들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책은 그러한 기본 내용을 일일이 부연설명하였다.
펼쳐 보는 순간 오히려 학술적이고 연구자를 위한 전문서에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여러 학습 자료로 펴내는 이들을 위해 오류를 범하거나 미진함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 이를 통해 활연히 풀어낼 수 있도록 풍부한 정보와 파일(file)을 제공하기 위한 것에도 그 목적이 있다.
동몽서(童蒙書)라고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어른도 이를 통해 어떤 내용인지 한번 접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은 표지만 보아도 훈도(薰陶)가 되며, 그 집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느냐에 따라 품격이 드러난다.
가문의 전승은 소장한 책에 의해 형성되며, 아이는 책에서 배운 것에 의해 성장하며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저 집에 던져두어도 된다.
그런 면에서 이제 우리 어른도 동몽서에 대하여 다시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
우선 나부터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정리해 보았을 뿐임을 밝힌다.
이 각박하고 온갖 경쟁 속에 여세부쟁(與世不爭)의 편안함은 어린이 책에서 찾을 때가 더 쉽다.
이 책은 이미 출간되었던 것을,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나의 전 역주 총서를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다시 펴내겠다는 제의에 함께 넣은 것이다.
옛날 내었던 이 책에 내 스스로 흡족히 여기지 못하고 있던 터에, 마침 수정하고 보완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감히 하늘의 뜻이 아닌가 여기며, 사이후이(死而後已)의 한 귀퉁이에 이 책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2024 갑진(甲辰)년 12월 21일(음력 11월 20일) 冬至날 밤에
丹陽 黃庭山 원통암(圓通庵) 아래 유와려(酉蝸廬)에서
줄포(茁浦) 임동석(林東錫)이 일부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