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춘추≫는 춘추시기 끝 무렵 장강(長江) 남방의 오(吳)나라와 월(越)나라 역사를 서술한 것이며, 동시에 두 나라가 중원(中原)을 상대로 패자가 되고자 몸부림치던 내용을 생동감 있게 기록한 것이다.
오나라는 멀리 주(周)나라 초기 고공단보(古公亶甫)의 첫째 아들 태백(泰伯, 太伯)을 시조로 하며, 지금의 강소성(江蘇省)을 중심으로 오(지금의 蘇州)에 도읍을 두고 오왕(吳王) 요(僚), 합려(闔閭, 闔廬), 부차(夫差)로 이어지는 걸출한 지도자와 그 아래 오자서(伍子胥), 백비(伯嚭)라는 신하로 구성되어 있었고, 월나라는 아득한 옛날 우(禹)임금의 후손 소강(少康)의 서자 무여(無余, 無餘)를 시조로 하여,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옛 지명 會稽)이 도읍이며, 구천(勾踐)을 중심으로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 보필하였다.
이들은 마치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듯이 왕, 보필하는 신하, 그들의 성격, 능력, 문제해결 방식, 고난 극복의 의지, 최후 결말 등이 판에 박은 듯 쌍을 이루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춘추시대 후기까지 거의 존재 자체도 드러내지 않다가, 마침내 나타나 춘추 후반기에 이르러 보란 듯이 천하 무대를 장식한 특이한 주연 배우들이다.
여기에 장강(長江) 중류에는 초(楚)나라라는 대국이 이미 크게 번성하여 장왕(莊王) 때는 오패(五霸)의 걸출한 패자가 되는 등 역사 속에 간단(間斷)없이 이어져 왔으나, 그 하류의 이 두 나라는 그간 잠룡(潛龍)처럼 숨어 있다가 이때에 ‘비룡재천(飛龍在天)’, ‘일명경인(一鳴驚人)’, ‘일비충천(一飛衝天)’의 기세로 천하를 호령하였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특히 이웃한 나라이며 발전 시기나 속도도 엇물려 우리가 아는 ‘오월동주(吳越同舟)’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니 ‘서시습보(西施習步)’니,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니 하는 수많은 고사와 성어까지 낳았으니, 역사 속에 그 존재의 대단함은 그 뒤 역사 속에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찬란함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장강 하류를 역사의 중심지로 만들어, 그 뒤에는 삼국(三國, 東吳), 동진(東晉), 남조(南朝: 宋, 齊, 梁, 陳)를 거쳐 남송(南宋, 杭州), 명(明, 南京), 민국(民國, 南京)의 도읍이 그 지역이 되도록 끌어올린 공헌도 이때에 시작되었다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방의 문화, 문학, 연극, 음악, 산업, 예술의 중심지가 되어 당(唐)의 ≪오자서변문(伍子胥變文)≫, 송원대 화본소설(話本小說) ≪오월춘추련상평화(吳越春秋連像評話)≫, 명대 전기(傳奇) 양진어(梁辰魚)의 ≪완사기(浣絲記)≫, 명청의 역사소설 풍몽룡(馮夢龍)과 채원방(蔡元放)의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근대의 ≪오월춘추설창고사(吳越春秋說唱鼓詞)≫, 현대 창작 화극(話劇) 조우(曹禺)의 ≪담검편(膽劍篇)≫과 소군(蕭軍)의 ≪오월춘추사화(吳越春秋史話)≫ 등은 모두 이 ≪오월춘추≫의 고사를 저본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전투와 남방 궁궐의 구체적 사실과 물명, 동식물, 무기, 병법, 문학, 시 등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알아보기에 더없는 자료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그리고 오나라 오자서와 백비, 월나라 범려와 문종의 인물 묘사는 그 어떤 창작 소설보다 뛰어나며, 아울러 두 집단의 사건 전개 과정은 복선을 깔아놓은 인위적 이야기보다 더욱 치밀함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실제 그러한 역사였음도 분명하지만, 그 복잡한 사건을 재구성하여 서술한 능력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는 승리자 월왕 구천의 냉혹함과 오왕 부차의 판단 착오, 범려의 선견지명, 나아가 오자서의 지나친 강직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역사 속의 인물이지만 가공의 성격파 인간 유형들의 집합체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는 ≪월절서(越絶書)≫와 아주 유사한 비사류(祕史類), 야사류(野史類)에 가까운 연의식(燕義式) 문체로 이루어진 특이한 저작물이다.
이에 연대(年代)나 역사 사실에 맞지 않은 부분이 상당량이지만, 그러나 두 책을 함께 대조하여 훑어보면 아주 흥미롭게 고대 남방 역사와 문화, 사상과 정서를 듬뿍 맛볼 수 있다.
≪월절서≫ 역시 이 책과 나란히 역주하였으니, 갖추어 일별(一瞥)하기를 추천한다.
이 두 책은 이미 출간되었었는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이제껏 내었던 나의 총서와 아울러 계속 이어지는 작업도 모두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다시 새롭게 출간하겠노라 하여, 나로서는 사이후이(死而後已)의 필생 작업 기회를 얻은 것이라 여겨, 노년의 행복감을 맛보며 작업한 것임을 부기한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까지 찾아볼 수 있다.
과연 승리는 마지막 도달점인가? 성공은 성취감보다 앞서는 것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승자가 옳은 것인가? 덕과 은혜란 결국 허황된 교훈적 단어에 멈추고 마는 것인가? 원수 사이는 함께 살 수 없는 것인가?
단순히 역사서로 끝나지 않고 온갖 상념을 자아내게 하는 이 두 책의 본래 의미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2024. 立冬에
莎浦 林東錫이 酉蝸廬에서
다시 고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