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家語≫는 책 이름의 풀이가 ‘공자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던 공자 이야기’일까? 이보다는 ‘孔子家의 이야기들’이라는 뜻이 옳을 것이다. ‘孔子家’는 儒家의 다른 말이다. 즉 유가의 주장을 믿는 공자를 포함한 그 제자들, 儒者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九流十家 중에 인명을 취한 ‘墨家’(墨翟)처럼 공자의 이름을 취하면 孔家일 것이며 풀어서 ‘孔子家’이다. 이 책 44편 3백여 장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공자 집안 이야기만 담은 것이 아니며, 공자와 유자들의 이야기이다.
山東 曲阜에는 孔俯, 孔廟, 孔林 등 소위 三孔이 있다. ‘孔俯’는 이름 그대고 그곳의 행정을 보는 관서이며, 공자가 소왕이었던 만큼 제후와 같으니, ‘府’가 맞을 것이다. ‘孔廟’는 공자 뒤를 이은 衍聖公들의 사당이며, 종묘이다. 그리고 ‘孔林’은 그곳 공씨 집안의 공동 先塋이다. 신기하게도 공림에는 꽤 넓고 숲도 우거졌는데 까마귀가 없다고 한다. 아주 오래 40여 년전 그곳에 들렀을 때 나는 ‘공자 집안은 어떻게 이어져 오늘날까지 무려 2천 수백 년을 이어왔을까?’ 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공자가 위대하기도 하지만 이를 이어온 집안이 더 대단하다 여겼다. 나아가 대만에 공부할 때는 그곳 孔德成이라는 분이 생존한 채로 孔家의 76대 연성공이라는 설명에, 근간과 정통이 대만으로 건너왔다니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孔子家語≫를 펼쳐보았다. 공씨 집안 내력과 세보, 가족과 출신 학자, 집안을 지켜온 전설 등이 있으려니 했는데, 막상 책을 펼쳐보면 “난초가 깊은 숲속에 나서 보아주는 자가 없다고 해서,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은 아니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라 하였고,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 치료에는 이롭듯이,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는 유익하다”(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라는 말도 이 책에 보인다. 물론 최초 원전은 아니지만 늘 듣고 보아왔던 구절이 있음으로 해서, 이 책을 읽기에는 참으로 편했다.
이처럼 공자에 관한 일화나 어록을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 나아가 儒家(儒者)들의 주장이나 꿈을 가자 휩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하라면, 나는 바로 이 ≪공자가어≫를 들 것이다. 내용이 명확하고 문장도 순탄하여 한문에 처음 들어선 자도 차근히 들여다보면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일화(逸話), 일사(逸事)의 이야기 중심이며, 다른 책에서 뽑아낸 정화(精華)들로써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때 삼국 위(魏)나라 왕숙(王肅)이 위조한 것으로 알려져 그 가치가 감손된 듯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위조나 가탁, 의탁의 편찬은 책의 가치를 폄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즉 중국 한위(漢魏) 시대는 학자들이 자신이 의도한 어떤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에 맞는 많은 자료를 각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전적에서 발췌하여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는 것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인들의 이야기만을 모으고자 하면 ≪열녀전≫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맞는 일화, 고사를 수집하여 주제나 편장을 정한 다음 이를 전재하고 공자에 관련된 이야기만 모으고자 하면, 역시 그 책 이름을 정한 다음 그에 맞는 내용을 각 전적에서 전재하는 것이 당연한 저술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읽고 있는 많은 고대 중국 전적 중에는 이러한 방법으로 편찬된 고전이 부지기수이다. 그 때문에 동일한 이야기가 서로 겹쳐 각 고전에 출현하며 이로써 “나는 너의 것을 베끼고, 너는 나의 것을 베끼는”(我抄你, 你抄我) 현상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공자가어≫도 공자에 관한 일화를 모은 것으로 원래 왕숙이 공자 22세손 공맹(孔猛)이라는 사람의 집에 전해오던 것을 얻어 이를 정리하고 주석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설령 고대 이미 있던 ≪공자가어≫라는 책 이름에 의탁하여 왕숙이 그 도서명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이용했다 해도 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리하여 송대에 이미 이 책은 공자와 유가(유자)를 이해하고,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문물 제도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을 받아왔다. 주희(朱熹)는 사서(四書)를 집주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이 책을 중시하여 읽어왔음은 지금도 필사본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알 수 있다.
중국을 이해하고 동양을 이해하며 동양 문화를 이어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이 책은 반드시 널리 읽히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누소하고 오자, 탈자, 오류 등이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여러 사정으로 그간 나의 총서를 출판하던 일도 중단되어, 교정을 보아도 재출간의 기회조차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그동안 이루어 놓아던 원고는 물론, 이제껏 기출간(旣出刊)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나의 저술을 재편집하여 <수정판>으로, 일관된 총서를 내어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만들어보겠다고 하여, 속으로 하늘의 뜻이 아닌가 여겼다. 이제 나이로 보아도 영원한 시간은 얻을 수 없는 터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슨 조화의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孔子)가 염원했던 “加我數年”의 천운을 만나나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리하여 밤낮없이 매달려 다시 정리하고 심지어 고향이 유와려에 오면서도 무엇보다 먼저 노트북부터 챙겨와서 수정하였으나, 그래도 미진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독자 제현과 학자분들께서 아낌없는 질책을 성원도 함께 보내주기를 기다린다.
2024년 甲辰年 芒種에 茁浦 林東錫이
丹陽 大崗 黃庭山 圓通庵 아래 酉蝸廬에서 고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