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 안자가 그립다.
국제간 분쟁은 물론, 정치와 사회에도 온갖 술수와 거짓, 그리고 억지와 독선이 판을 치고 있다. 정(正義)나 골계(滑稽)도, 안자같은 선유(善誘)나 겸양(謙讓)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서 안자가 그립다. 말이라도 위안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서 말을 가장 아름답게 한 사람을 찾으라면 나는 안자를 들겠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남이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면서 설득시킬 수 있는 재치와 긍정적인 결과 도출 능력은 안자를 따라 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지존의 임금을 모시면서 그 임금으로 하여금 덕과 인의를 근본으로 하도록 하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인의 경지라 할 것이다.
게다가 제 이인자(二人者)의 아름다움을 맘껏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안자춘추≫이다. 세상에는 누구나 제 일인자(一人者)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이인자의 가치가 발휘될 수 있고, 존재 가치가 인정되는 세상이야말로 살맛이 나는 인간 세상임을 이 ≪안자춘추≫의 내용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안자는 “세 임금을 섬기되 세 가지 마음이 아닌 한 마음으로 모신 인물”이라고 흔히 한마디로 규정한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보면 그보다는 제 이인자로되 도리어 세상 제 일인자가 덕과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임무를 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일러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느 좌표에 있건 그 존재와 있음의 당위성이 있다. 그러한 당위성을 인정하고 들어가 보면 천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또한 내가 할 일, 내가 하는 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들이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널려 있다. 그것도 아름다운 광채를 띠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딱딱하려니 하는 선입견의 고전, 그것도 문학작품도 아닌 옛날 한 인간의 고사를 두고 감성적이거나 직관적인 어휘들로 표현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을지 모르나 실제로 안자의 행동이나 일 처리하는 모습과 발상, 그 밑바닥에 깔린 순수한 본질을 만나보면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사마천(司馬遷)조차도 ≪사기(史記)≫ 안자열전(晏子列傳) 찬(贊)에서 “가령 안자가 지금 다시 있다면, 나는 비록 그를 위해 채찍을 잡는 일을 한다 해도 기쁨과 흠모로 모시리라(假令晏子而在, 余雖爲之執鞭, 所忻慕焉)”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음에랴!
세상에 촌철살인의 해학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안자의 기발한 대처 능력이나 번뜩이는 재치는 차라리 고전이라기보다 미래형의 “인간적 난제 해결의 전본(典本)”이라고 할 만하다. 이유는 그 바탕이 선하고 긍정적이며 인간적이고 나아가 주객 누구도 상처받지 아니하며, 어느 상대이건 인정하며, 시공을 넘어 그 누구라도 수긍하며 결과는 둘 모두 승리하도록 결말이 나는, 기지(機智)와 해학 이외의 것은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바로 내가 져 주고, 밑지고, 손해보고, 양보하고, 검소히 하며, 욕심을 줄이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공을 남에게 돌릴 줄 알며, 나의 우월감을 내세워 남을 설득하려 들지 않으며, 정직과 진실이 가장 확실한 무기이며,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것이라는, 이를테면 얼마만큼 비우면 더 행복할까 하는 욕심의 역지향(逆指向)에 있으니 이는 바로 내면의 욕심이며 아름다움의 역산(逆算)이다.
유가의 고전들 중에 형이상학적 관념세계에 대한 무거운 질감의 언어 투성이로 이루어진 것이 경(經)이라면, 이 ≪안자춘추≫의 내용은 한편의 간결한 드라마같이 줄거리가 있고 교훈이 있으며, 쓴웃음 끝에 감동의 무게가 실린 그러한 것들로 당장 내 스스로 경행(景行)할 만한, 몸 가까이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맑고 밝은 해결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그 때문에 안자의 사상에 대한 주제 분류에서 질서유지와 경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儒家)에 넣기도 하고, 검약과 박애를 근본으로 하는 묵가(墨家)의 반열에 넣기도 하여, 결국 유묵겸통(儒墨兼通)의 독특한 윤리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디에 속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인간 본연의 한 단계 높은 지선(至善)과 아름다움을 궁행(躬行)한 모습을 발견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몇 해 전 겨울 중국의 산동 지역만을 주제로 여행할 기회가 있어. 치박시(淄博市) 임치(臨淄)를 답사하게 되었다. 이 임치라는 곳은 바로 고대 안자가 활동한 곳이며 춘추전국을 통틀어 제(齊)나라 수도 그곳이다. 주초(周初) 강태공(姜太公)이 이 땅을 봉지로 받아,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무려 천년 동안의 그 강성했던 제후국의 문화를 간직한 고도古都의 자리로, 다시 지금까지 2천 년을 지켜온 지역이다. 춘추오패의 제환공(齊桓公)과 그를 통해 “구합제후(九合諸侯), 일광천하(一匡天下)”한 재상 관중(管仲), 그리고 사마양저(司馬穰苴), 손무(孫武), 손빈(孫臏), 순우곤(淳于髡), 전단(田單), 맹상군(孟嘗君)이 활동했던 곳이며, 공자와 맹자가 달려와 웅변을 토하고, 소진(蘇秦)을 비롯한 수많은 책사들이 찾아와 꿈을 키우며 명멸했던 곳이다. 전국시대에는 일시에 70만의 장정(壯丁)을 징집할 수 있었다고 했으며, 안자의 말을 빌리더라도 “거리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이 소매를 들면 휘장을 두른 것처럼 캄캄하고, 그들이 일시에 이마의 땀을 손으로 흩뿌리면 비가 오는 것 같다”(張袂成陰, 揮汗成雨. 149)라 한 곳이기도 하다.
벌써 아득히 지난 과거사를 그대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곳엔 제국비사궁(齊國秘事宮)이라 하여 제국(齊國) 임치성(臨淄城)의 일부를 복원하여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그 속에서 밀랍 모형으로 안자와 경공의 숱한 고사를 재현하여 놓은 것을 보며, 상상 속의 2천 5백 년전의 세계로의 시간 여행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제국고성의 동북쪽에 있는 순마갱(殉馬坑, 1982년 발견)의 모습이었다. 남북 26미터, 동서 23미터에 말을 묻은 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대로였다. 지금은 106필만 발굴하였지만 이를 근거로 추산하면 약 6백 필 이상이 묻힌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안자가 모셨던 경공(기원전 547~490년)이 58년 간 재위에 있으면서, 얼마나 말을 좋아했던지 “궁실 꾸미기를 좋아하였고, 개와 말을 모아 길렀으며(好治宮室, 聚狗馬), 말이 4천 마리나 되었다”(有馬千駟. ≪論語≫ 季氏篇)를 근거로 바로 이 경공 때 벌어진 기사(奇事)가 아닌가 고증하고 있다.
그 외에 환공대(桓公臺)와 “공자가 제나라에 가서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석 달 고기 맛을 잊었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論語≫ 述而篇)는 “공자문소처(孔子聞韶處)”며 관중묘(管仲墓)와 바로 이 ≪안자춘추≫의 주인공인 안자의 무덤인 안영묘(晏嬰墓)는 풀과 나무가 무성한 그대로였다. 또한 ≪안자춘추≫ 내편 간하(049)의 내용 그대로인 삼사총(三士塚), 그리고 그 뒤로 아물거리는 그리 높지 않은 우산(牛山), 직산(稷山), 우공산(愚公山)이며 고서에 그렇게도 인용되어 대단히 큰 강물인 줄로 여겼던 치수(淄水) 등, 옛 기록에서 상상 속의 어느 다른 세계의 지명인 양 알았던 곳들이 사실대로 눈앞에 펼쳐져 나타났다. 참으로 묘한 감회 속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각설(却說)하고 나는 이 ≪안자춘추≫를 역주하면서 내 자신 속에 꽉 찬 욕심의 쓰레기를 덜어내기 위한 약으로 써 보아야겠다고 감흥을 느끼곤 했다. 채움이라는 것이 거북한 것이요, 위선을 낳는 독약이라면 비움은 청정한 것이요, 원하지 않아도 선해지는 묘약이 아닌가 한다. 또 나아가 인간관계에서의 문제해결에 기지와 해학을 밑바탕에 깔고 임해 보면 천하에 그 어떤 난제도 풀어낼 수 있고, 상대를 패자(敗者)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승리할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법칙이다. 이에 소박하게도 이 시대에 있어서 몸은 이인자로되 덕은 일인자인 안자 같은 푸근한 인물들이 있어 나와 동시대를 사는 이웃이고, 그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 중의 하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참으로 훌륭한 해법들을 이 책에서 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이 책은 이미 두세 차례 출간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 사정으로 중단되었다. 기간본은 일부 누락, 오류가 있어 늘 마음에 짐이 되었었는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내용이 너무 아까워 다시 <수정본>으로 새롭게 내었으면 하기에, 이처럼 재출판할 기회가 되어, 일부나마 이를 바로잡고 나니 한결 가슴이 후련하다. 물론 이 역시 완벽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략함은 언제나 과제로 남는다. 독자 제현의 해량을 믿을 뿐이다.
甲辰(2024)년 10월 林東錫 負郭齋에서 다시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