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치발소(齒髮踈)의 나이를 넘어 칠십 불유구(不踰矩)의 삶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나이의 내 친구들 모임에 가면 거의가 건강, 병원, 앓고 있는 병, 원만한 노년, 살아온 회고, 세상 변화의 급변함에 따라갈 수 없는 발걸음의 안타까움, 버림과 내려놓음 등이 주제이다. 그러한 대화는 결국 마음 달램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그 “마음 달램의 글”로써 이 ≪채근담≫만한 것이 있을까? 또한 오늘 같은 세태에 “고통을 덜어주는 글”로서 이 ≪채근담≫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살아보니 결국 세상은 엄청난 고통의 고해(苦海)도 아니요, 그렇다고 모든 즐거움을 다 누릴 수 있는 낙원(樂園)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든지 있는 낙원이요, 정말 괴롭고 힘들게 물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고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젠 “쳐다보아 부러울 것도 없고, 내려다보아 나는 그래도 살만하네”가 가장 행복이다. 그러니 유위(有爲)도 없고 무위(無爲)도 없으며, 호오(好惡)나 미추(美醜), 귀천(貴賤), 빈부(貧富)의 경계도 없고 심지어 생사(生死)의 구분도 없는 것이라 한다. 내 마음에 넘나드는 모든 것은 환(幻)이며 진(眞)이 아니요, 세상의 진은 환이며 환은 곧 진이기도 하단다.
그렇다고 이론이 괴벽스러운 것도 아니다. 구절마다 모두가 논리에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고 역설적으로 궤변을 편 것도 아니다. 예화마다 사실에 조금도 벗어남이 없다.
청정하게 살아라. 담백하게 살아라.
세상 누군들, 이 속세의 명예와 부귀라는 집착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저 산 속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은 자가 있겠으며, 인간 관계의 구속이라는 질곡(桎梏)을 시원히 털어 버리고 저 숲속으로 숨어가 도인이 되고 싶어해 보지 않은 자가 있으랴?
그런데 용기를 내어 이를 실행한 사람도 있지만 이 못난 속인은 그렇지도 못하다. 그러나 어찌 도인이 되고자 꼭 산으로 가야 하며, 선인이 되고자 숲으로 가야하랴? 내 마음이 작은 우주요, 내 몸이 작은 자연이니 화분의 난초 한 가지가 신선이며 벽에 걸린 그림 한 장이 도인이로다.
이제껏 소유(所有)의 개념을 행복인 줄로 연연하다가 이제 향유(享有)의 개념을 행복을 규정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소유는 구속이요 향유가 자유임을 반평생 넘어 조금 깨달았으니 그래도 범인으로 이 육신을 짊어지고 살아온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어머니는 도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떤 일에 연연하여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언제나 “니 복이 가젠 걸”라고 하였다. 복이 그것으로 한계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지금 와서야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안 되는 일이 있다. 정말 꼭 그렇게 될 것 같고 되어야만 하는데 야속하게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복이 갓”인 것이다.
내가 이 ≪채근담≫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인생을 반쪽만 보고 살았을 것이라 여긴다. 무슨 큰 발견이나 감동을 받았기에 감히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가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저 성실히,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면 그것이 천하제일의 가치인 줄로 알아 온 나에게 적어도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는 방법이 있음을 바로 이 책을 통하여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고, 열심히 뛰고, 움직이고 업적을 내놓으며, 결과물을 창출하여 이름을 날리고, 세상에 칭찬받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적극적이라 여겼다. 나아가 각고의 노력으로 성취를 이루며 남이 하지 못하는 일도 덤벼들어 개척하며, 소유를 위해 일한 만큼 소득을 요구하며, 선악에 대하여 변별을 담당하며, 어떤 일도 포기하지 않으며, 가진 만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세상 태어나 잘 살고 성공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게으르며, 나서지 못하며, 안주하고 진취적이지 못하며, 내 몫을 챙길 줄도 모르고 창조도 업적도 없이 그저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 자체에 불만도 내세우지 못하고 우유부단하여, 중간만 지킨 것으로 다행을 삼는 것을 ‘소극적’이라 여겼다. 자세히 보면 적극적이라 함은 소위 음양(陰陽)의 ‘陽의 방향’으로 향한 것만이 그것인 줄을 착각했음이 이제껏 삶이었다. 음양의 ‘음의 방향’으로 내닫는 것도 적극적인 것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소유를 거부하며 성취가 없음을 즐기며, 나서기를 싫어하며 명예도 부귀도 자신 있게 버릴 수 있는 과감한 행복감, 그리고 만물의 존재 자체를 아름답게 보며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찾느라 추하고 더러운 것은 거들떠볼 겨를조차 없도록 내 환경을 만드는 것도 얼마나 적극적인가? 이로 인해 세상이 모두 내 것이니 만물에 그 무엇이 나를 소유와 무소유의 사이에 처하게 하여 괴롭힐 것이며, 살아가는 동안 세월이 모두 내 것이니 세상 그 무슨 만남이 우(遇), 불우(不遇)라고 나를 슬프게 하겠는가? 사는 동안 가진 것 없음이 도리어 자유롭다고 여겨 속세를 벗어 최소한의 삶을 사는 산인(山人)도 보았고, 아예 그런 생각 자체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조차 욕심과 명예를 추구하는 나쁜 일로 여겨 묵언(黙言)으로 사는 도인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은둔한 놈이 문패는 왜 다노?”라며 나에게 귀띔해주는 고향 친구도 있다.
중국 명대(明代) 잠언과 명구를 모은 책으로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바로 범립본(范立本)의 ≪명심보감≫과 이 홍자성(洪自誠. 洪應明)의 ≪채근담≫이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유사점과 차이점이 확연하게 대비를 이루는 묘한 책이다.
둘 모두 유명한 학자나 이름 높은 성인이 쓴 것도 아니어서 편자나 작자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또한 촌철살인의 단구, 명언을 모은 면에서는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일상생활에 인용되고, 더러는 한문교재로 읽히는 면에서도 같다. 문체도 고문과 백화어가 함께 쓰여 생소한 문구가 보이는 것도 같으며, 판본의 전래 과정이 희미하고 통속적인 내용으로 치부되어 중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환영을 받아 끊임없이 출판되고 읽히는 면에서도 같다.
그러나 둘 사이는 뚜렷한 차이점도 있다. ≪명심보감≫이 교양서(敎養書)라면 ≪채근담≫은 수양서(修養書)이다. ≪명심보감≫이 유가적(儒家的) 내용을 위주로 하여 ‘세상에 공을 세우며 인간 도리를 다하라’고 ‘陽의 적극성’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면, ≪채근담≫은 도가적(道家的) 종지를 내세워 ‘세상을 소유하지 말고 향유하며 인간 본연의 환(幻)과 진(眞)을 구분해 행복을 누려보라’는 ‘陰의 적극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명심보감≫이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면 ≪채근담≫은 ‘홀로 사는 법’을 일러주고 있다. 그 때문에 ≪명심보감≫은 옛 성인과 선현들 경전(經典)의 문장과 세상 이치를 담은 속담과 격언을 중심으로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이미 있는 남의 말’을 모았고, ≪채근담≫은 자신이 터득한 우주론(宇宙論)과 수양론(修養論), 본체론(本體論), 자연론(自然論)을 대구(對句)와 대련(對聯)으로 토해내어 ‘자신만의 말’을 남겼던 것이다.
홀로 살기는 참으로 적극적이며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은 여럿이 살기보다 더 큰 눈과 더 높은 생각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결국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도리어 사치요 꾀요 위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근담≫에 동원된 어휘들, 이를테면 “염담(恬澹), 환업(幻業), 적연(寂然), 원융(圓融), 고취(苦趣), 일취(逸趣), 담박(澹泊), 반박(反樸), 귀진(歸眞), 소광(疏狂), 한일(閑逸), 수졸(守拙), 청산(靑山), 녹수(綠水), 천석(泉石), 여장(藜杖), 어초(漁樵), 소금(素琴), 무현(無弦), 횡월(橫月), 송운(松韻), 진성(眞性), 부낭(浮囊), 섭세(涉世), 월창(月窗), 설송(雪松), 작조(雀躁), 귀조(歸鳥), 접정(蝶蜻), 봉운(蜂韻), 류앵(流鶯), 부운유로(浮雲有路), 권운서하(卷雲舒霞), 물아양망(物我兩忘), 현외지음(絃外之音), 야학고운(野鶴孤雲), 청천백석(淸泉白石)” 등 헤아릴 수 없는 표현들은, 모두가 촌로, 고행자, 수도자, 득도자임을 스스로 자처하지 않고서는 도리어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면서도, 또한 이 시대 세속의 경쟁 속에 환상처럼 꿈꾸던 전원과 산수, 은둔과 피세, 달관과 관조의 상황에나 쓰는 아주 소담한 언어들이다.
나는 아주 옛날 어린 시절 ≪마음의 샘터≫(1964)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읽었으며 나중에 그것이 ≪채근담≫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많은 기왕의 우리 번역본(만해, 조지훈, 김구용, 박일봉, 노태준 등)으로 만족해 왔다. 그런데 중국의 원본을 구해 보고는 내 천학한 둔재이지만 나도 이에 손을 대어보아야겠다고 내심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이유는 ≪채근담≫이 두 종류가 전하며 편저자도 하나는 홍자성(洪自誠)으로, 하나는 홍응명(洪應明)으로 달랐고, 첫 장도 하나는 내가 외우려고 애썼던 “棲守道德者는 寂寞一時하나……”로 시작되었는데, 중국 판본은 “欲做精金美玉的人品, 定從烈火中煅來”의 단아한 글씨체로 시작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본은 대체로 ‘洪自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명각본(明刻本)>이었으며 다른 판본은 제대로 원문도 볼 수 없었다. 이에 두 종류를 모두 모아 하나의 완정본(完整本)으로 정리하고 싶은 욕망에 밤잠을 설치며 자료를 모으고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지며, 대만과 중국에 있는 제자들에게 있는 대로 구입하거나 복사하여 보낼 것을 채근하였다. 그러나 막상 덤벼보니 문장 주석이야 큰 무리가 없었으나 판본의 전래와 홍씨(洪氏) 두 이름의 관계도 희미하여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 없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채근담≫ 내용대로 있는 ‘그대로 나 홀로 즐기며 감동 받으면 됐지. 무슨 명예와 욕구, 세속적인 업적을 낳겠다고 욕망의 화로처럼 구는가’하고 다시 주춤하였다.
그러나 “일은 옛것을 존속시킴보다 큰 것이 없고, 학문은 의심나는 것을 그대로 비워둠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事莫大於存古, 學莫先於闕疑)라는 存古闕疑의 대원칙을 믿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접어 둔 채, 있는 그대로 ‘여럿이’ 맛볼 수 있는 자료라도 제공하는 것이 내 배운 임무이려니 하고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장도 대구, 대련에 맞추어 시각적으로 원문이 드러나도록 꾸며보았다.
이 책이, 복잡하고 힘든 세상, 상처받고 짓눌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잠시 동안이라도 상상으로나마 시골 한적한 골짜기 모옥(茅屋) 봉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당 가 느릅나무 아래에서, ‘卷雲舒霞’를 바라보며 송천(松泉)의 샘물로 끓인 ‘恬澹’과 ‘物我兩忘’이라는 이름의 차 맛이 되었으면 한다.
한편 본인 이름의 ≪채근담≫은 여러 차례 출간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이번에 삼호재(三乎齋)에서 본인 총서를 다시 <수정본>으로 출간하면서 다시 수정하고 정리하여 마무리한 것이다. 삼호재 박노일(朴魯一) 대표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한다.
甲辰年(2024) 冬至 茁浦 林東錫이 醉碧軒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