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속에서 나를 찾자
삶은 나를 찾는 과정이고 이는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은 너다운 것이다. 나다운 것이다. 결과가 아무리 권력이 있고 부러움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열매가 아니라면 그 열매는 곧 악취를 낸다. 많은 사람들에게 흉이 될 뿐이다. 이런 삶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읽히고 싶다.
이 책의 제목에서 ‘스스로 불사르고’는 나를 스스로 죽이는 것이다. 오상아(吾喪我)다. 이는 변이(變異)다. 원자가 바다로 이르기까지의 변신의 몸부림이다. 이것은 가을 단풍은 연두색의 싹으로 탄생을 시작으로 검푸른 잎이 자신을 스스로 변이하여 붉은 단풍으로 그것은 또 한 번의 바꿈이 마른 잎으로 모습을 드러난다. 끊임없이 오늘을 내일로 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다.
시인은 창호에 엷은 햇살이 들기 전 할머니는 화로에는 새벽 밤하늘에 남아 있는 성근 별을 찾듯 아직도 남아 있는 숯불을 부젓가락으로 찾는다. 이 불씨는 불을 일으킬 수 있다. 시인은 인당수가 보이는 백령도 바닷가에서 잊었던 씨앗을 찾았다. “과거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다시 쓰는 이야기다”라는 말처럼 스스로를 기억하게 해주었다. 시인의 할머니가 평생 끌어안았던 불씨로 집안을 따뜻하게 하였듯이 스스로도 이 씨앗으로 앞을 더욱 옹골차게 열매를 맺고 싶다고 노래한다.
≪번잡한 몸 스스로 불사르고≫는 4부와 작가의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1부는 ‘교육’을 주제로 표현하였다. 천직에서 출발하여 천직으로 마감하는 여정을 필자의 호흡으로 정갈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이다. 보람이 있는 곳이다. 낮지도 높지도 않다. 사람이 사람답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별이 일어나고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붕어 2마리가 싸웠다. 한 마리를 죽였다. 그리고 물은 썩었다. 썩은 공간이 되고 말았다. 믿음이 사라진 공간이다. 이를 안타까워했고 절망도 했고 그러나 한편에서는 희망도 있다고 표현해 봤다.
2부는 ‘인생’을 주제로 표현했다. 한 개의 씨앗이 바람에 날린다, 씨앗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와집에, 화분에, 돌 구멍에, 벽돌 틈에, 길거리에 던져진다. 이런 삶의 군상들은 가까이도 있고 멀리도 있다. 이를 보는 우리는 주인공이자 관찰자이기도 하다. 이런 삶의 다양한 모습을 마음으로 표현했고 발로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지가 않다. 거미줄처럼 촘촘하지가 못하다. 삶이 성글었기 때문이다. 만년필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고 잉크 없이 마른 촉으로 썼기 때문이다. 마음에 찾아온 글을 문자로 옮기는 데 어휘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길은 항상 있어 사람은 다니고, 발자국을 남긴다. 발자국의 주인이 어제 없어졌다 해도 길은 여일(如一)하다. 그러므로 내 만년필에 잉크를 가득 담자. 마음의 뜻과 손에 있는 펜에서 나오는 글자가 여일(如一)하도록 손목이 시리도록 써야 한다.
3부는 ‘하느님’을 주제로 표현하였다. 불완전한 인간의 눈에 보이는 존재는 그 또한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기에 늘 그곳에 있다고 하지만, 늘 그곳에 없다.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굳건한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신은 무한하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찾는 것이 그것이다. 아주 쉽게 표현하면 우리는 천국의 열쇠를 찾고 있다. 어디 있을까? 그림자가 있는 곳 가까이 빛은 있다. 그림자의 색은 까맣다. 그것을 없애는 것은 빛이다. 빛은 그림자 곁에 있다. 사람은 신에 의탁하여 어둠을 없애려고 한다. 그 가까운 곳에 신은 있을 것이다. 절망의 끝에, 실의에 빠진 자의 마지막 눈물이 떨어지는 곳에, 어둠이 사라진 그곳에 있다. 서너 사람이 모인 곳에 늘 같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땅 끝에 놓여 있는 하늘다리를 걷는 영혼은 맑은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치 폭설이 내리는 감나무 가지에 서 있는 까치 소리를 듣고 감[柿]을 참아 따지 않고 감나무 가지에 감을 남겨두는 자 곁에 존재한다.
4부는 ‘엮음’을 주제로 표현한 것이다.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내 결핍을 채워주는 것은 즐거운 모습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많은 사건을 맞이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모습을 다양한 사유를 하게 한다. 겨울 산에서 만나는 고드름은 영근 보석 같다. 눈이 내리고 햇살을 받아 눈은 녹는다. 그리고 해가 지면 산속은 춥다. 그런 순환을 반복하면 물은 흙을 서서히 비집고 나오면 곧 추위를 맞이한다. 물은 햇살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추위를 맞이한다. 추위 속에서 영근 보석을 만드는 것이다. 삶도 이와 같다는 섭리는 알게 된다. 농다리에서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짧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돌다리는 천 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물은 밤낮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마치 이 다리를 지나간 사람처럼. 유한한 삶과 유한을 넘어 영원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돌다리. 인간과 돌다리의 두 개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산에 내린 눈은 물로 전이(轉移)하여 보석을 만들어 보여주고, 돌다리는 한 곳을 지키며 한계를 극복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작은 머리로 시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