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에게 진정한 시인이란 먼저 자기 자신을 깨닫고 정진하는 ‘투시자’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세계를 꿰뚫어 보고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과 영혼이 서로 통하며 모든 감성을 표현할 수 있고, 나아가서 사고가 서로 연결되는 언어, 말하자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언어” 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시적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시 세계의 창조에 도달 하기 위해 시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시인의 목표는 바로 ‘미지’에 도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현실이라는 외관상의 본질의 부분적 투영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 규칙에 얽매여 있는 현실이라는 히구의 본질을 제거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랭보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파괴’였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전혀 다르고 동떨어진 세계를 순수하게 그리기보다는, 그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되는 현실 세계를 분해하고 해체해 자신이 의도하는 새로운 시 세계 의 구성 요소를 찾아내고, 바로 이렇게 얻어진 시적 요소들을 가지고 시인 특유의 새로운 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법은 완전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로의 출발과 그 재구성, 재배치를 통해 시인이 벗어나려는 현실 외관 너머의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재 창조하려는 의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랭보의 시 세계에서 우리는 시적 공간의 발견과 그 변화를 통해 시인이 부단한 움직임을 통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을 언젠가는 떠나 미지의 또 다른 공간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성향은 그의 문학적 삶이든 실제적 삶이든 일관되게 거의 동일한 양 상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랭보에게 있어 크게 ‘자연’과 ‘도시’ 그리고 ‘다른 곳’이라는 시적 공간들이 어떤 경우에는 같이 어우러져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일련의 선상에서 변화합으로써, 시적 공간은 폐쇄적이고 제한적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해 열려 있는 다양성과 함께 그 개방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적 공간이 자연이든, 도시이든 또는 미지의 그 어떤 곳이 든 공통적으로 그 공간의 개방성이 항상 그 기저에 흐르고 있다 할 수 있다. 시적 공간의 개방성, 즉, 한시적이고 제약이 있는 공간에서 랭보는 그의 기이할 정도의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 공간을 해 체하고 확장시키며, 그 안에 이질적이든 동질적이든 가능한 모든 시 적 요소들을 응축시키고 같이 어우러져 공존시킴으로써 각각의 시어 들이 서로 내재하고 있는 역동성의 힘으로 처음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른 재창조된 공간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공간의 조화가 강렬하면서도 순간이지만. 이것은, 후에 문학 세계를 완전히 버리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아프리카라는 또 다른 현 실적이자 미지의 공간으로 떠남으로써 또한 그의 실존적 삶의 공간 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결국, 시적 공간의 변화와 그 개방성은, 랭보가 보여주는 단순한 시적 관점과 방향의 시간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의 문학적 실존적 삶의 저류에 일관되게 흐르는 떠남과 미지에의 추구에 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랭보만큼 삶과 문학이 동일한 양태 속에서 진행된 시인도 드물기 때문에, 그의 문학의 초기부터 나타난 끊임없는 출발 또는 떠남을 통한 시적 공간의 변화와 그로 인한 개방성은 이미 예견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공간의 특성은, 특히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의 선택과 그 전개는 후에 우리가 현대시에서 자주 대하는 현대적인 시적 공간의 한 토대를 마 련해주는 랭보의 시적 현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랭보에게 시인이란 바로 ‘투시자’, 즉 진정한 현실성과 접촉할 수 있는 기능들을 머릿속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야 한다. ‘작가’이며 ‘창조자’인 시인은 자기 ‘영혼’을 인식하는 것에 만 만족하면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없다. 즉 투시자가 된다는 것은 시인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인식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것을 확인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기괴한 영혼’을 만드는 데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때 기괴한 영혼을 만든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확한 인식에 서 출발해 모든 대상을 눈에 보이는 현상과는 다르게 관찰할 수 있고, 또 그 현실의 모습 너머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투시자로서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합으로써, 시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의지적 활동의 산물이고, 정확한 의미, 즉 무의식이 우리에게 우연히 전달해 주는 이미지들의 ‘체계적인 발전’ 속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감각의 오래되고 광대하며 추론된 착란’에 의해서 실행된다. 바로 이 ‘해체’ 라는 시적 방법이 랭보 시 세계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랭보의 시 세계에서 이런 파괴의 양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난 다. 현실적인 ‘견고성’을 지니는 사물의 파괴와 해체를 통한 기동성을 추구하고 사회의 모든 규칙을 파괴하며 일상적인 언어의 제약성을 파괴하려고 시도한다. 파괴와 해체를 통해 현실적 외관을 제거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실체’를 ‘재건축’, ‘재창조’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결국 이 ‘투시자 이론’은 후회와 반성으로 시집 <지옥에서의 한 철>에 잘 나타나 있고, 다시 새로운 시적 출발과 세계를 보여 주는 시집 <일뤼미나시옹> 을 거치면서 초월과 영감을 지니는 예언자나 신의 모습으로서의 ‘오르페우스적 시인’으로부터, 먼저 시인 자신의 철저한 인식 아래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의 해체와 재창조를 통해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시인’ 으로의 변화상 통해 랭보는 현대적 시인상을 개척하게 된다.
이후 이러한 시인의 부단한 모습은 이제 문학과 완전히 단절된 현 실의 세계에서 보여 주게 된다. 특히 <일뤼미나시옹> 의 많은 시들 은 랭보가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다른 것을 찾아 떠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번에는 영원히 문학의 세계를 떠나 현실적, 실존적 삶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문학에서 시인 으로서의 자신을 해체하고 현실에서 일상인 으로서의 랭보를 재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랭보가 후에 문학 세계와 완전히 결별했지만, 그의 전체 삶은 결국 문학과 삶의 단절이라기보다는 문학에서 현실 삶으로의 진행이며, 시인 자신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파괴, 해체 그리고 재창조의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랭보의 삶과 문학이 여실히 보여주는 부단한 역동성과 파괴후의 단절이 아닌 창조적 원동력으로서의 상상력의 발로이자 여정인 것이다.
2018년 3월
곽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