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집안 부모의 생활 모습과 세상관(世上觀)을 그대로 따라 배운다.
옛사람들은 교육은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서 태교(胎敎)를 중시하였고, 태어나면 우선 부모의 사랑 속에 자연스럽게 정서를 키워가며, 예닐곱이 되면 비로서 밖의 선생님에게 맡겨진다.
오늘날도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는 오직 아이가 자라면서 그 험한 경쟁에서 우등(優等)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집에서 부모의 교육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설신어(世說新語)≫(德行篇)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진(晉)나라 당시 이름난 사안(謝安)은 태부(太傅)라는 높은 직책이었다. 그의 아내 유부인(劉夫人)이 자녀 교육을 두고 안달하면서, “어찌 당신은 아이 교육에 아예 신경도 쓰지 않소?”라고 하자, 사안은 “나는 항상 스스로 자식을 가르치고 있는데!”라고 하였다.(謝公夫人敎兒, 問太傅: 「那得初不見君敎兒?」 答曰: 「我常自敎兒!」)
바로 자신의 일상 모습이 자녀의 교육이라는 것이다. 소위 ‘이유목염(耳濡目染)’이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첫 번째 과목은 무엇일까?
옛날에서는 집안에서의 ‘효’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중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혹 고택이나 고대 민간 건축물, 그 유명한 사합원(四合院) 등에 들러보면, 건물 안 처마 밑 횡연목(橫椽木)에는 줄을 이어 이 ≪二十四孝圖≫를 그림으로 그린 빛바랜 고사화(故事畫)를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관광지 시장 구석 값싼 골동 서화(書畫) 진열대에는 낡고 찢어진, 나아가 먹물을 흘려 번진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처박혀 있는 민간 방본(坊本), 혹은 석판본(石版本)의 이 책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과거 중국의 진솔한 삶과 지금과 다른 교육환경에서 머리 묶고 팽이를 치다가, 또는 연을 날리다가 할머니가 부르시면 얼른 쫓아가 이 책을 읽고 외웠을, 옛날 체발(剃髮)한 어린 중국 풍속 속의 자연스러운 동자(童子)들이 이 골목 뒤에서 달려가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효도는 모든 행동의 근본”(孝者, 百行之本也)이라 하였으며, “천하에 형벌을 받을 일이 3천 가지이지만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라 하였다.
부모가 없으면 내 몸이 있을 수 없고, 낳았다 하더라도 구로(劬勞)의 고생으로 길러주지 않았다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지금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증자(曾子)의 ≪효경(孝經)≫ 첫머리 구절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며, 立身行道하여 揚名於後世하여 以顯父母가 孝之終也라”하는 구절은 누구나 입에 외우고 있다.
그 때문에 ≪논어(論語)≫(泰伯篇)에는 이러한 기록이 실려 있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병이 들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발을 펴보아라. 나의 손을 펴보아라. ≪시(詩)≫에 ‘두려워하고 경계하기를 마치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살얼음 걷듯이 하라’라 하였다. 나는 이제야 이후로는 책임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았노라! 제자들아!”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여기서 ‘발과 손을 살펴보도록 한 것’은 조금도 훼상(毁傷)함이 없이 일생을 살아왔으니, 저승에 부모님을 만나더라도 마음 아프게 해드리지 않았음에 대한 안도감을 표현한 것이요, ‘책임을 면했다’는 것은 일생을 얼마나 다치지 않겠노라 조심해 살았으면, 이제 그런 부담에서 벗어났다고 도리어 죽음을 안심하는 것인가?
그런가 하면 ≪시(詩)≫에는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애닯도다 어버이시여, 나를 낳아 고생하시네. 깊은 은혜 보답코자 하나 하늘과 같아 끝이 없도다”(父兮生我, 母兮鞠我, 哀哀父母, 生我劬勞. 欲報深恩, 昊天罔極)라고 읊고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아니하고, 자식이 어버이를 섬기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 하였고, “무거운 짐에 갈 길이 먼 자는 땅을 가리지 않고 쉬는 법이며, 늙으신 어버이를 모시고 집은 가난한 자는 직업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법”(任重道遠者, 不擇地而息; 家貧親老者, 不擇官而仕)라 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익히 읽어온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자녀가 효성스러우면 어버이가 안락하다”(家和萬事成, 子孝雙親樂)라 하였다.
이에 정사(正史)마다 <효의편(孝義傳)>이니 <효우전(孝友傳)>을 두어, 그 시대의 효자를 기려 기록에 올렸으며, 제왕마다 효자가 난 마을이면 정려문(旌閭門)을 세워, 이풍역속(移風易俗)을 정치에서 교화의 주안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효’는 이처럼 엄청난 책임이며 동시에 삶 그 자체요, 역사의 주된 기록 대상이었던 것이다.
지금 ‘효’는 과연 사어(死語)이며 사전(辭典)에나 올라 있는 서면어(書面語)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원천적 천륜과 윤상(倫常)은 변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지금 우리 가슴에는 ‘효’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울컥 메이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숙연해지는 원형질(原形質)의 원소(元素)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 원형질을 다시 찾아 이 시대에 맞게, 앞으로의 사회변화에 적응하는 유형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효’는 이제 개인적으로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그러한 덕목만은 아닌 듯싶다.
여기에 실린 24가지 효도 고사는 중국, 아니 우리 동양의 오랜 역사를 두고 가슴에 원형질의 유전자를 심어준, 참으로 소박한 DNA요, 참으로 고마운 자질 요소들이다.
이 늙어가는 나에게도 어린 시절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 있다.
어머니는 새신부였을 때, 호박잎을 따러 들어갔다가 독사에 물려 살아나기는 했지만 평생을 두고 무릎 아래 진물이 났으며, 그때마다 우슬(牛膝)잎이 효과가 있다고 믿으며, 울타리 밑 그 잎을 따서 찧어 붙이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래서 우슬이라는 풀만 보면 울컥 코끝부터 시큰거린다.
지금 같으면 얼마든지 아주 쉽게 고쳐드릴 수 있었던 것을 그냥 두어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가 떠올라 늘 가슴이 저미며 애통스럽다.
이제 이 책을 정리하여 늙어가는 우리도 한 번 읽어볼 수 있도록 문세(問世)한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 어른들을 위하여…….
이 책은 이미 출간되었었다. 그런데 제자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나의 기간 작업물을 모두 모아 <漢典譯注叢書>로 재출간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라 여겨, 다시 일일이 교정과 함께 많은 양의 증보를 거쳐 함께 다시 나열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2024(甲辰)년 12월 동지(冬至)에
줄포(茁浦) 임동석(林東錫)이 부곽재(負郭齋)에서 다시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