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격적으로 ≪고문진보≫를 배우게 된 것은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1914∼1993) 선생님으로부터 한학을 익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72년 초등학교 선생님 발령을 받고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 다시 그토록 하고 싶던 한문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처음으로 선생님을 따라 장위동, 사간동, 연희동으로 찾아다니며 ≪논어≫, ≪맹자≫ 등 사서(四書)를 끝내고, 요일별로 ≪고문진보≫, ≪사기≫, ≪두시≫ 등을 배울 때 참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했었음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 이 책은 나에게 대단한 힘을 주었다. 문장해독에 약간의 자신감을 주었고, 한문 문장을 겁내지 않고 파고들어 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 준 것이었다. ≪경전(經典)≫은 빈틈없는 논리와 철학을 주제로 한 것이라면, 사서(史書)는 인간 활동의 바른 길과 스토리 중심의 연결 고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문(古文)은 이를 합해 다양한 작자의 문장에서 전고와 문법이 명확해야,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선택된 시와 문장, 특히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산문들은 권무현하(卷霧懸河)와 같은 시원함을 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이 ≪고문진보≫를 한문공부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다. 물론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大衆的 通俗 選集 詩文敎材’로서 오류도 많아, 청대 이후 완전히 잊혀지다시피 한 책이지만, 우리 조선 시대에는 “아침에는 경서를, 저녁에는 역사를 공부하고, 왼쪽에는 시를 끼고, 오른쪽에는 문장을 들고”(朝經暮史, 左詩右文) 학습하던 당시의 학습 풍토에서 초보적인 시문(詩文)을 공부하는 학습자라면, 바로 이 책으로 필수적인 과정(課程)으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학자라면 개인 문집에 이 책을 언급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였고, 특히 김시습(金時習)은 ‘≪고문진보≫를 얻고 나서’(<得古文眞寶> ≪梅月堂集≫9)라는 시에서 이렇게 기쁨을 노래하였다.
“세상에서 구슬을 보물인 양 속이며 다투지만,
이는 다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지.
이 ≪고문진보≫를 만약 뱃속에 간직할 수만 있다면,
가슴 속에 혼연히 쨍그랑 옥소리 울리리라.”
(世間珠璧謾相爭, 用盡終無一个贏.
此寶若能藏空洞, 滿腔渾是玉瑽琤.)
그런데 당시 나는 시중에 나와 있던 번역본 ≪고문진보≫를 참고하고자 보다가 “이 좋은 문장들을 왜 일부만 번역했을까?”하고 불만을 가졌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가 일본 전래 ‘괴본계열(魁本系列)’을 그들 나름대로 완역한 것을 그대로 중역한 것들이었다.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전해오며 한문 학습의 절대적 권위를 지녔던 ≪詳說古文眞寶大全≫에 비해 <괴본>은 後集의 경우, 작품 수로 보아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고문진보≫ 원본인 줄 알았던 것이다. 즉 일본에 전해오는 ≪고문진보≫는 우리나라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충분한 해설 없이 그대로 중역해서 시중에 내놓은 것이니, 당시 학술 풍토로는 어쩔 수 없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에 언젠가는 전체를 번역해보리라 하고, 유학 시절 대만에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우리의 ≪상설고문진보대전≫은 찾을 수도 없었고, 서지학적 자료나 관심도를 확인할 길도 거의 없었다.
그런 채로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서당에서 이 책을 강의하면서 아무래도 정리를 해야겠다는 부담이 압박으로 작용하여 결국 작업에 나서서 자료를 모았다. 마침 김학주 교수의 번역본과 성백효 선생의 역주본이 나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나아가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주(脚註)를 더욱 세밀히 하고, 음운적(音韻的)인 면까지 분석하고자 작품의 원(原) 출처(出處)를 일일이 찾아 대조하고, 전재(轉載)된 자료도 가능한 한 모두 섭렵하여 오류를 바로잡으면서 작업을 서둘렀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을 본인의 <임동석교수의 동양고전 백선>에 함께 넣어 출간하여 빛을 보게 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 총서 시리즈 출간이 중단되고, 다시 삼호재(三乎齋)에서 <수정본>으로 출간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에 다시 들여다보았더니, 그래도 워낙 많은 양을 혼자 입력하고 교정을 보고, 분석을 하고 수정을 하다 보니 오자, 탈자, 와류(譌謬)를 면할 길이 없다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으로 공부하는 자나 곁에 두고 읽는 분들께서는 전배(前輩)들의 번역본, 주석본을 참조하여 바로잡아 교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
2024년 甲辰年 立冬 茁浦 林東錫이 負郭齋에서 다시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