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감에 점차 격언이나 속담 등 삶의 지혜를 담은 짧은 글귀에 눈이 간다. 그래서 작업에 지쳐 잠시 쉬고자 할 때면 곁에 놓아둔 속담집이나 격언집을 펴 들고 편한 마음으로 눈가는 대로 훑어보곤 한다. 그리고는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그래, 바로 내 얘기야.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지난날 삶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구나!”라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춘추시대 거백옥(蘧伯玉)은 나이 쉰이 되어 비로소 “마흔아홉까지 잘못 살았구나!”(≪淮南子≫原道訓) 하고 탄식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러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나이라는 것이 과연 그토록 세상 보는 눈을 달리하도록 깨닫게 해주는 것일까?
아련히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늘 입에 달고 나를 가르치셨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든지 “사람마다 벼슬하면 농부 될 자 뉘 있으며, 의원(醫員)마다 병 고치면 북망산이 왜 생겼나?”라고 안 되는 일이 있음을 일러주던 시조 반 구절, 나아가 “고진감래란다. 힘든 일을 먼저 하여라”, “남에게 허리를 굽히는 각도만큼 나중에 남에게 대접을 받는단다”, “말로 떡을 하면 세상 사람 다 먹고 남는단다” 라고 덕담부터 입에 달고 살라는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일을 하나? 연장이 일을 하지!”라 하여, ≪論語≫의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를 속담으로 먼저 깨우쳐 준 일침은 지금도 삶의 지혜가 되었다.
그리하여 무엇이든지 옳은 것은 옳고, 할 수 있는 것은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금은 시비(是非)도, 호오(好惡)도, 현불초(賢不肖)도 능불능(能不能)도 그 경계선이 그리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으며, 예전에는 먼 장래의 일이거나 남의 일이라 소극적으로 하찮게 여기던 인과응보(因果應報)니 화복상의(禍福相依)니 만복자작(萬福自作)이니 하는 말이 지금은 당연한 것이라 믿어지고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한 일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한 일에는 그에 맞는 재앙이 따르는 것이니, 귀하게 되었다면 남을 위해 복을 지어야 하고 부유해진 만큼 덕을 쌓아야 마땅하다는 생각도 온전한 긍정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아가 이미 ≪명심보감≫과 ≪석시현문≫, ≪유학경림≫의 작업을 통해 그 내용이 구구절절 심폐(心肺)에 젖어들고, ≪채근담≫의 내용을 통해 염담(恬澹)이 무엇인지 그 평정심(平靜心)어렴풋이 다가오고 있을 때에, 다시 이 ≪격언련벽≫을 읽게 되었다. 참으로 조용히 초발심(初發心)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솟구치기도 한다.
글자마다 맞는 말이요, 문장마다 옳은 생각이며, 문구는 신종모고(晨鐘暮鼓)처럼 경책(警策)이 되어 나를 채찍질하고, 결론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나의 지려(砥礪)가 되어 오히려 내 삶에 때가 늦지 않았나 조바심을 일으키게 한다.
이에 나는 이 책을 읽고 곁에 두며 좋은 구절은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 내 자신을 수양하고 자녀에게 일러주며 책을 통해, 문장을 통해 널리 알렸으면 하는 생각에 번역과 역주를 서두르게 되었다.
물론 일부 문장은 그 높은 경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하였지만 읽는 자가 각기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 맞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글이란 필자의 표현을 떠나면 독자로서는 개인적인 수많은 상황과 자신이 겪은 경험, 자신이 대비하고 있는 일에 따라 자신의 처지로 이해하여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자가 지나가는 말처럼 흘러간 것이 독자로서는 자신의 일이라 여겨 가슴에 새기며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 책은 이미 역자가 번역하여 출간되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나의 ‘임동석 교수의 동양 사상 백선’이 중단되어 계속하더 여타의 중국 고전 역주 작업을 쉬고 있을 때, 마침 제자이며 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인 박노일(朴魯一) 삼호재(三乎齋) 대표가 “선생님의 작업 성과가 아깝고, 게다가 고전은 지금은 학술 자료와 연구용으로만 활용되는 면이 없지 않으니 이를 전자화하고 보관용 책으로도 출간하였으면 한다”고 제의해 왔다.
나는 “하늘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공자가 그토록 염원한 “加我數年”이 나에게도 온 것을 적이 기꺼워하면서 기간 출간한 90여 종의 모든 책을 샅샅이 다시 수정, 보완하고, 새로운 격식으로 통일하여 완성도를 높여 <수정판>으로 작업하기고 하고, 출판사 이름도 ≪논어≫(첫구절에서 취명하여 삼호재(三乎齋)로 해주었다. 그런데 수정 작업은 초기 원고를 작성하는 것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그 동안 내게 많은 자료가 쌓였고, 이를 뻔히 알면서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편벽증(偏僻症)이 자꾸 욕심을 더욱 불러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정년을 한 터여서 따로 마련한 연구실은 작업환경이 그만이었다. 새벽 일찍부터 밤늦도록 2대의 컴퓨터를 켜 놓고 매달린 끝에 이제 많은 양을 소화해 내었다.
이에 미흡하나마 본 ≪격언련벽≫을 풀이하여 각자의 최소한 양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다시 간단히 머리말로 대신한다.
甲辰(2024) 중추절 후 줄포(茁浦) 임동석(林東錫)이 유와려(酉蝸廬)에서 수정하고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