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사회, 그리고 개인에게도 새로운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할 때인 것 같다. ≪신서(新序)≫는 ‘새로운 질서’라는 뜻이리라. ‘序’라는 말의 ‘함의(涵義)’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序’는 봉건시대 上下 從屬개념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橫的으로도 얼마든지 잣대로 삼을 수 있다. 동등한 사회의 모임일수록 질서나 순서가 필요하며, 월권이나 차별은 인류 보편적 상식에 너무 해악을 끼치며, 온갖 갈등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차이는 있고, 그것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이를 두고 차별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하지 않는 것이 곧 ‘序’일 것이다.
이 책은 지금부터 약 2천년 전, 중국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 B.C.77~6)이 편집하고 저술하여 B.C.24년에 완성한 역사고사집(歷史故事集)이다.
모두 10권으로, 1~5권은 잡사(雜事. 여러 가지 이야기), 6권은 자사(刺奢. 사치를 풍자함), 7권은 절사(節士. 절의로 살아간 선비들의 이야기), 8권은 의용(義勇. 정의와 용기), 9~10권은 선모(善謀. 훌륭한 모책, 상·하)로 권마다 편명이 붙어 있다.
그리고 내용은 고전(古典)의 정수(精髓)대로, 상고(上古)시대부터 한대(漢代)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람들의 일화와 고사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말과 훌륭한 행동(가언선행(嘉言善行)) 1백88가지를 소설보다 아름다운 구성과 문체로 엮어 놓고 있다.
이는 같은 유향의 유명한 ≪설원(說苑)≫보다 7년에 앞서 편찬한 것으로, 천자에게 풍간(諷諫)으로써 상소문(上疏文)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순(舜)임금의 지극한 효성, 손숙오(孫叔敖)의 음덕양보(陰德陽報), 초장왕(楚莊王)의 용인술(用人術)과 정치 방법, 기해(祁奚)의 인물 추천법, 제환공(齊桓公)과 관중(管仲)의 통치술과 패업(霸業), 편작(扁鵲)의 신비한 의술, 맹상군(孟嘗君)과 해대어(海大語)의 고사, 양(梁)나라 대부 송취(宋就)의 고사, 괵군(虢君)의 망국(亡國)과 그 결과, 송강왕(宋康王)의 폭정, 화씨지벽(和氏之璧), 걸주(桀紂)의 사치와 포악, 제경공(齊景公)과 안자(晏子), 신포서(申包胥) 이야기, 변장자(卞莊子)의 호용(好勇), 상산사호(商山四皓)와 한고조(漢高祖)의 이야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고사’가 주옥처럼 가득히 실려 있다.
고대에는 선악(善惡)의 개념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선(善)으로의 복귀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법(法)이라는 강제 개념으로, 규제를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보다는 교훈적인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을 통해 이를 법의 단계에 이르기 이전에 되돌아올 수 있도록 미리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사회구조가 오늘날보다는 단순하고, 가치추구도 그 가족, 사회, 국가라는 틀을 마련해 놓은 상태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법보다는 윤리라는 초보단계로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라고 해서 인간이 도덕과 윤리가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겠으며, 가정과 사회, 국가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외형과 수치에 급급하여 정신문화를 무시한 채 물질문명에만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직접 목격할 때가 있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정신문화의 기초 없이는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조차도 가끔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고 만다는 이치를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체험까지도 하고 있다. 이에 나는 감히 정신문화를 기초로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고전(古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고전 속에서 우리는 옛사람의 윤리와 도덕은 물론, 나아가 그 정서까지 도움을 얻어, 이 시대의 바른 삶의 척도로 삼을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걸리고 답답한 일이라 해도 꾸준히 그러한 길을 제시하여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진가는 어디에 있는가? 이는 한 마디로 어느 시대, 어떠한 상황, 어떤 경우에도 바른 잣대가 될 수 있고, 삶의 표준이 되며, 해결의 열쇠가 되고, 정신적인 위안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데에 그 기본 가치와 진면목에 있을 것이다.
2천 년 전 유향이 편집하여 전해 오는 이 ≪신서≫라는 책도 결국 그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의 간격은 있을지언정, 인간이 고민하고 사회가 아파하는 데 대한 지식인의 참을 수 없는 고뇌를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에서 글로 엮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신서≫는 무거운 부담감을 가지고 읽을 필요는 없다. 경학처럼 딱딱한 글이 아니라, 소설처럼 부드러운 감성의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재미있는 교훈,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예화(例話)로서의 고사로 읽어도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삶에 윤택을 더하며, 수양과 도덕의 교과서로 이용하면 충분하다. 나아가 정신문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차원 있는 자료로 볼 수 있으면 더욱 좋다.
학문적으로 체계(體系)와 역주(譯註), 고석(考釋)을 위해 원문은 일련번호와 권 번호를 부여하고, 현대적 표점(標點)을 가하였으며, 각주(脚註)와 참고자료를 실어 한문 공부와 원문대조(原文對照)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학문적인 성과도 기해 보려고 애를 썼다.
끝으로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런데 여려 사정으로 본인의 동양고전 총서가 출간이 중단되어,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그동안 이루었던 원고는 물론, 이제껏 출간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나의 저술을 재편집하여 <수정판>으로, 일관의 총서를 내겠다고 하여, 선뜻 응하기는 하였으나, 자료가 너무 방대하고 양이 지나치게 많아 초교를 작성하는 것 못지 않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필생의 작업이려니 하고 밤낮 씨름을 하여 던져 놓고 나니, 그래도 미진할 것이라는 우려에 늘 불안하다. 어찌되었건 교정과 편집에 심혈을 기울인 편집부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적는다. 아울러 독자 제현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도를 기원하며, 간단(間斷)없는 채찍질도 기다린다.
2024년 5월, 줄포(茁浦) 임동석(林東錫)이 유와려(酉蝸廬)에서 다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