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면 누구나 “하늘 반은 여자가 이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라는 말을 알고 있다. 아무리 고대 남존여비의 사상이 세상을 지배했다 해도 결국 여성의 역할과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는 무시할 수 없었다. 여자는 어머니이며 누이이며 할머니이며, 고모, 이모이고 딸이며 아내이다. 그 어디에 함께 하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위인은 세상이 있을 수 없으며, 아내의 정신적 도움 없이 성공한 지도자는 없었다.
지금 나로서도 이만큼 세상을 바로 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어머니로부터의 훈도와 영향이 아닌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누구나 그렇듯이 어머니를 생각하면 훌륭한 전을 하나 써서 세상에 알릴 수 있었으면 하고 소박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산다.
더구나 역사의 흐름 속에 여인이 작용하지 않은 변화는 있을 수 없었으며 여인의 존재 없이 이루어진 공이나 업적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남녀란 역할과 위치가 다를 뿐 능력이나 생각, 가치나 존재가 다르거나 경중의 차이란 있을 수 없다.
여기에 실린 124전(傳)의 여인들은 학술적인 연구에 중요한 자료의 가치를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현대적 입장에서 보면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여성관과 가치, 그리고 여성의 존재에 대한 모든 서술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고대 여성에 대한 기록으로 최초의 독립적 한 단위로 성립되는 과정에 과연 어떤 관점이 작용하였는가에 대한 문제와, 그 뒤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문제는 지금도 중요한 잣대를 판단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인의 역할과 임무를 예찬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니지만, 7가지 유형에 따른 여인들의 전기로서는 역대 <여인전>의 전범(典範)을 이루고 있다.
어머니로서의 의표(儀表)를 세운 여인들, 똑똑하고 명석(明晳)한 여인들, 어질고 지혜로운 여인들, 정숙하고 순종하는 여인들, 절개와 의리를 지킨 여인들, 말솜씨에 뛰어나며 어떤 일도 소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여인들 등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6권으로 묶고, 다시 재앙을 불러오고 세상을 망친 여인들도 함께 실음으로 해서, 당시 봉건사회 때의 여인에 대한 얽매인 관념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전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 이미 하나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과연 정사(正史)에도 정식으로 여인들에 대한 전기를 하나의 표제로 삼아 기록하게 되었으니, 이를테면 정사 속의 <열녀전>은 ≪후한서(後漢書)≫, ≪진서(晉書)≫, ≪위서(魏書)≫, ≪북사(北史)≫,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 ≪명사(明史)≫(등에 두루 올라 있다.
물론 동등한 생명과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를 지닌 여인들을 어떤 유형으로 나눈다는 자체가 모순일 수 있겠지만, 먼 한나라 때 유향(劉向: B.C.77∼B.C.6)이라는 학자가 당시 궁중과 사회 현상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 기풍을 바로잡고자 풍간(諷諫)의 목적으로 쓴 것임에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역시 크다고 하겠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2001년 5월 12일에는 “동아시아 여성의 유형”이라는 대회 명칭아래 ‘≪열녀전(列女傳)≫에 대한 여성학적 탐구’라는 부제로 학술회의까지 열렸던 적이 있었다.(중어중문학회, 한국여성연구원, 여성신학연구소 공동주최-이화여대)
그리고 ≪열녀전≫(책 역시 이미 두 세 종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제 8권 ≪속열녀전(續列女傳)≫은 번역이나 주석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유향 자신이 편찬한 것이 아니라 뒷사람이 보충하여 속전(續傳)으로 실은 것이기에 본전 위주로 출간하였기 때문이리라 본다. 그러나 역자는 이번 역주에는 이들까지 모두 역주하여 연구자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중국 판본에도 항상 이들을 함께 묶어 소개하며 다루고 있어 모두 빠짐없이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여겼다. 그리고 ‘참고 자료’ 난을 설정하여 관련된 기록들을 한 곳에 모아 둠으로서 같은 기록의 상이점을 변별하거나 역주의 정확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아울러 <사부총간(四部叢刊)>본에는 그림(삽화)도 있어, 이 역시 해당 위치에 실어 원전의 면모를 살리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역사 속의 여인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으며, 아울러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료로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천둔(淺鈍)하나마 역주를 마쳐 이에 문세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미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나의 전집 모두를 다시 <수정본>으로 출간키로 하여, 체제를 맞추고 오류를 바로잡고, 보충과 교정을 거쳐 다시 내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질정과 편달을 바란다.
甲辰(2024)년 元宵節에 茁浦 林東錫 負郭齋에서 다시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