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칠서(武經七書)> 전체를 역주하면서 ≪울료자≫도 이 기회에 들여다보게 되었다.
병법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실제 ≪손자병법≫이 천하에 유행할 때 흥미를 느껴 원본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유행하고 있는 ≪손자병법≫은 원본 주석이나 학술적 풀이가 아닌 처세술(處世術)로서의 단장취의(斷章取義)한 소설이거나, 사회를 전쟁터로 본 생존술, 용인술, 사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원본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한국에 출간되어 있던 懸吐本 ≪六韜直解≫, ≪三略直解≫, ≪孫武子直解≫, 「秘書三種」(黃石公≪素書≫, 諸葛亮≪心書≫, 黃帝≪陰符經≫. 이상 世昌書館 출간) 따위를 들여다보았지만 당시의 실력으로는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고, 내용도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논리중심이어서 그만 서가 구석 깊이 꽂아 둔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 ≪孫子兵法≫, ≪吳子兵法≫, ≪三略≫, ≪六韜≫, ≪司馬法≫, ≪李衛公問對≫ 등과 함께 이 책도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어 일단 덤비기는 했으나 역시 문장이 순통하지 못하였고 고문 역주 능력이 한계를 보여 우선 문자적인 해석이라도 해 놓고 뒤의 전문가의 질정(叱正)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였다.
그럼에도 역시 유가(儒家)나 법가(法家), 도가(道家), 사가(史家)의 문장과는 다른 맛을 주었고, 나름대로 삶의 철학이 편린(片鱗)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며, 인류가 전쟁이라는 것을 통해 어떻게 나라를 관리하고 자신을 다스렸는가의 문제, 나아가 용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얻는 것이 있었다.
군사(軍事)의 문제는 인류가 집단을 이룬 이래 국가 최우선의 급박한 업무였으며 “養之千日, 用之一時”(천일 길러 한 순간 써먹는) 생명 소모, 절대 절명의 흉사(凶事)임에 틀림없다.
그 때문에 유가(儒家)에서는 정치의 중요한 사안 중에 군사(師)의 문제를 거론하였고(≪尙書≫ 洪範), 노자(老子)는 “佳兵者, 不祥之器”라 갈파하여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각박한 세태를 전쟁터로 비유하여 처세술이니 용인술이니 하는, 그 생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올랐을 때나 쓰는 전쟁, 전투 용어가 마구 거리낌 없이 횡행하는 시대에 과연 염정(恬靜)과 자적(自適)으로 살 수는 없을까 하는 또 다른 회의(懷疑)를 갖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결국 전쟁의 연속이며 국가의 흥망이 전쟁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통하여 결정난다.
게다가 적어도 한 개인이 태어나 죽는 일생에 앞뒤 세대에 한 번이라도 전쟁이라는 실제상황을 겪거나 듣지 않고 생을 마친 경우는 없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지금처럼 개명(開明)한 세상에 인간만이 우주의 가장 값진 존재라고 부르짖으면서, 사람 생명 존중이 최대 가치로 여기면서도, 지구촌 곳곳에 전쟁이 없는 해는 없다.
그래서 “國家雖大, 好戰必亡; 天下雖安, 忘戰必危”라 하였으니, 어찌 대비함이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싸우지 아니하고 승리하는 것이 최상이요, 싸워 이기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일 뿐”이라는 논리는 실제 “싸움이 없도록 함이 최상”이라고 이상론을 펴기에는 현실이 예나 이제나 있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형식상 ‘의전(義戰)’이라는 명분으로나마 역사가들은 전쟁의 악행(惡行)을 미화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좌우간 병법서도 한번 읽어볼 만하다.
그 속에 내 삶을 투영하여 정신력을 키우고, 흔한 처세술로 나의 정의를 확인하며, 남으로부터의 모욕과 능멸을 안위(安慰)하며, 억울한 사기나 손해를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한편 이 책은 이미 출간되었다. 그런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기간(旣刊) 내 책 전부를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다시 내고자 제의해왔다.
나로서는 미진했던 부분을 고쳐 <수정본(修正本)>으로 낼 기회를 얻게 되어, 그 기쁨과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많은 책을 다시 정리하고, 통일성과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으나, 그래도 문장이 순통하지 않고 문의(文義)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전문가와 강호(江湖諸賢)의 편달과 지적을 내려줄 것을 아울러 앙망한다.
乙巳(2025)年 5月에
茁浦 林東錫 丹陽 黃庭山 아래 酉蝸廬에서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