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姜太公, 姜尙, 呂尙, 姜子牙)과 문왕(姬昌), 무왕(姬發) 세 사람의 兵法에 대한 토론이다.
문왕이나 무왕이 묻고 강태공이 자세히 설명하는 형식으로 6가지 큰 주제에 각기 구체적 사항 등 모두 60가지이다.
문왕과의 대화는 15항, 무왕과의 대화는 45항이다.
물론 당시 문왕과 무왕은 은(殷)나라 말왕 주(紂)와 대치하고 있었으니, 그 토론에서의 想定한 敵(대상)은 紂일 것이다.
무왕은 드디어 은주를 멸하고 주나라를 일으킨 성왕(聖王)으로 널리 숭앙되고 있는데, 바로 사상보(師尙父) 강태공의 도움이었다.
무왕은 이렇게 동이족(東夷族. 殷民族) 商나라를 멸하고 呂尙(姜尙)같은 보필을 만나기를 바랐던[太公望] 선조 고공단보(古公亶甫)를 ‘太王’(太公)으로, 할아버지 계력(季歷)을 ‘王季’로, 아버지 西伯(姬昌)을 ‘文王’으로 추존하고, 아우 周公(姬旦)과 뛰어난 구신(舊臣), 신진(新進) 신하들의 도움으로, 천하의 종주국을 건설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 목록학의 개조인 유씨부자(劉向, 劉歆)에 의해 한(漢)나라 때 이루어진 ≪칠략(七略)≫은 지금 전하지 않지만,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의해 그 개략은 알 수 있다.
당시 천하 서적을 분류하면서 7가지로 나누었는데, 바로 경학(經學)에 해당하는 육예략(六藝略), 제자백가의 제자략(諸子略), 문학의 시부략(詩賦略) 다음에 군사학의 병서략(兵書略)을 넣고 있으며, 뒤를 이어 음양과 형법의 술수략(術數略)과 지금의 기술과 방술에 해당하는 방기략(方技略)으로 나누었다.
이로 보아 당시 병법서는 도서의 수로 보나 그 위상으로 보아 상당히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병서를 다시 권모류(權謀類), 형세류(形勢類), 음양류(陰陽類), 기교류(技巧類) 등 넷으로 나누었으며, 모두 53家 790편, 도(圖) 43권을 싣고 있다.
그리고 장량(張良)과 한신(韓信)이 병법서를 정리하기 시작하였고, 武帝 때 楊僕이 일서(逸書)를 모았으며, 孝帝 때 任宏에게 명하여 병서를 다시 정리하도록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이상 ≪한서≫ 예문지 참조)
그 뒤 송대에 이르러 정식으로 병법서를 ‘經’으로 격상하여 ‘무경(武經)’이라 하였으며, 당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7종의 병서를 정리하여 드디어 <무경칠서(武經七書)>를 교정 출간하게 되었다.
<무경칠서>의 하나인 이 ≪六韜≫는 그렇게 하여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중시를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널리 읽혀 懸吐武經 ≪六韜․三略․孫武子直解≫가 원문 현토의 합본으로 1928년에 이미 출간된 적이 있고, 그밖에 「秘書三種」이라 하여 ≪素書≫(黃石公), ≪心書≫(諸葛亮), ≪陰符經≫(黃帝)도 원문 현토본이 나와 있으며, 국내 각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판본의 목록만 보아도, 우리도 전대는 물론 현대 사람들도 익히 들어보고 읽어온 책이다.
역자는 이 무경칠서(武經七書: ≪孫子≫, ≪吳子≫, ≪司馬法≫, ≪尉繚子≫, ≪六韜≫, ≪三略≫, ≪李衛公問對≫)를 현대적 의미에 맞게 전체를 역주해보고자, 그동안 자료를 모으고 책을 찾아보았으며, 틈나는대로 원문을 입력을 하고 원고를 써내려 갔다.
그리하여 여기에 ≪三十六計≫를 더하여 모두 8종 중에 이 ≪육도≫를 끝으로 역주를 마치기는 했으나, 실제 군사학에 문외한이며 전략, 전술에 대하여도 모르는 천루(淺陋)한 실력으로 다만 한문 문장을 조금 이해한다는 ‘무지의 용맹’만으로 덤비지 않았나 하고 저으기 걱정이 앞서고 있다.
아울러 본인의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기간(旣刊) 내 책 전부를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다시 내고자 제의해왔기에, 나로서는 미진했던 부분을 고쳐 <수정본(修正本)>으로 낼 기회를 얻게 되어, 그 기쁨과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많은 책을 다시 정리하고, 통일성과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으나, 그래도 문장이 순통하지 않고 문의(文義)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강호제현(江湖諸賢)과 이 방면의 전문가에게 우선 양해를 구하면서, 오히려 무경에 대한 토론거리를 던져주었다는 화두로 이 <武經七書> 전체에 대한 질책을 내려줄 것을 바란다.
2025(乙巳)년 5월 小滿에 茁浦 林東錫 負郭齋에서 일부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