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칠처(武經七書)>의 일곱 번째 책이다.
우선 책의 첫머리에 고구려와 신라의 이야기가 등장하여 흥미를 끈다.
옛날 학창 시절 당태종(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하였을 때, 안시성(安市城) 전투에서 고구려 장수 양만춘(楊萬春)이 활을 당겨 당태종의 눈을 맞추자, 태종이 이를 손으로 뽑아 씹으면서 패배의 쓴맛을 보고 물러났다는 야사(野史)를 듣고, 어린 나이에 묘한 긍지를 느꼈던 적이 있다.
참으로 험악한 긍지인지는 모르나 좌우간 그때 중국 당나라라는 대제국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뒤를 이어 연개소문(淵蓋蘇文)의 패배와 그 아들의 당나라 망명 등이 교차되어 지금도 정말 그러한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그러나 이는 여말(麗末)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중국(당시 元) 사신으로 다녀오던 길 안시성을 지나면서 읊은 <정관음(貞觀吟)>과 이곡(李穀)의 ≪가정집(稼亭集)≫에 실려 있는 허구의 전설이라 전하고 있을 뿐이다.
좌우간 인류는 전쟁의 역사이며, 전쟁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일생을 마칠 수는 없는가 보다.
역자만 해도 해방 뒤 태어나 곧바로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슬픈 운명을 겪었고, 어린 나이에 지나간 중일전쟁이니 노일전쟁, 그리고 대동아전쟁이니, 2차대전이니 하는 어른들이 겪었던 전쟁이라는 것을 들었으며, 그것이 먼 역사 이전의 사건인 줄로 여겼다.
그러나 철들어 재학시절에는 눈앞에 월남전이니 중동전쟁이니 아프리카 내전이니 발칸전이니, 온통 전쟁 발발 뉴스에 영일(寧日)이 없이 살아온 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다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투나, 우크라아네와 러시아의 전투는 영화 장면보다 더한 실시간으로 TV에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지구촌에는 전쟁과 전투가 신변(身邊) 일상처럼 삶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고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중국 역사만 보아도 전쟁을 통하여 왕조(王朝)가 바뀌었고, 같은 왕조라 해도 민란과 내란, 반란과 살육의 연속이었으며, 전쟁아 없는 안정과 평화의 시간이란 그리 길지 못했던 것 같다.
이에 당태종(唐太宗)도 역시 수(隋)나라 잔여 세력을 제거하고, 다시 군웅할거하던 지방 토호를 평정하고 천하를 거머쥔 다음에는, 당연히 전쟁과 전투, 그리고 평정한 지역의 통치에 대한 깊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이에 신하 이정(李靖)과 더불어 병법에 관한 일체의 궁금증을 묻고 대답하여 이 책을 남긴 것이다.
당태종은 걸출한 신하들의 힘을 도움으로 중국 역대이래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제국이라 평가하는 한당(漢唐) 중의 당(唐)의 기초를 다졌고, 특히 태종 재위시절이 천하제일의 발전기라 여기는 정관지치(貞觀之治)였음을 감안한다면, 그 자신이 걸출하고 뛰어난 황제였음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의 통치 철학과 정치사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통해 알 수 있으며, 그의 군사 철학과 용병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 ≪이위공문대≫를 통해 확연히 알 수 있으니, 바로 이 두 책은 당태종에게 있어서 문무(文武)의 두 축을 구성해주는 양 날개라 할 수 있다.
두 책의 형식도 태종이 묻고 신하 이정이 고대의 전적에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끝에는 태종이 이를 정확히 알아듣고 동의하고 감탄하여 정치 실천의 요목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흔히 뛰어난 지도자를 두고 ‘문무겸비(文武兼備)’를 거론하기에, 이 두 책이야말로 오늘날 지도자라면 좌우에 끼고 읽고 살펴보고 거울로 삼으며 참고서로 여겨도 될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의 역대 뛰어난 제왕이나 통치자, 이를테면 전설상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물론 하은주(夏殷周) 삼대의 개국 군주, 나아가 춘추오패(春秋五霸)와 전구칠웅(戰國七雄)의 숱한 군주들, 그리고 나아가 이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며, 한고조 유방(劉邦)과 무제(武帝), 그리고 삼국을 거쳐 진나라, 위진 남북조, 통일 과업을 이룬 당고조, 여기서의 당태종과 그 뒤의 이름난 강력한 왕권과 대외적으로 업적을 떨친 지도자는 한결같이 국내에서는 책임 있는 보좌를 두었고, 그 통치 철학은 문(文)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무(武)를 갖춘 정형(定型)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세종(世宗)임금도 한낱 문약(文弱)에 흐른 임금은 아니었다.
육진(六鎭)과 사군(四郡)을 개척하고 국토 회복과 국방에 온 힘을 기울여 그만한 치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한 군주의 표준인 당태종과 당시 병법의 대가인 이정이 대화체로 정리하여 전해오는 이 책은 송대 역시 <무경칠서(武經七書)>에 열입되어,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무경칠서> 중에 가장 늦게 완성된 것으로, 나머지 여섯 책, 즉 ≪손자≫, ≪오자≫, ≪육도≫, ≪사마법≫, ≪삼략≫, ≪울료자≫의 중요한 내용과 구절을 재해석하고 있어, 그들 책들의 주석본(注釋本)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 여섯 책의 풀리지 않던 문제를 환연(渙然)히 알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으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절도 오묘한 이치를 부여하고 있다.
내용도 구체적이며 역사적 전쟁사를 병법의 입장에서 분석한 점은 일반 사학의 범주를 뛰어넘어 또 다른 각도의 역사 연구라 할 수 있다.
≪좌전(左傳)≫(宣公 13年)에 ‘武’자에 대하여, “止戈爲武”(전쟁을 그치게 하는 것이 무력)라 하였다.
자형(字形) 풀이인 동시에 형훈(形訓)이며, 의훈(義訓)까지 포함하여 아주 절묘하게 풀이한 것이다.
이처럼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병법은 알아야 하며,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전투를 치러 승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서의 병법은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나아가 세상이 온통 전쟁터라고 본다면, 일상생활에서도 병법은 보기에 따라 자신을 보위하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인간 본연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화평을 위해서는 덕(德)을 갖추고, 그 덕으로 대립과 쟁의를 막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배우기 위해 이 병법서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에도 “싸우지 아니하고 남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며, 백 번 싸워 백 번 승리를 거두는 것은 중간이며, 깊은 방어용 도랑을 파고 높은 보루를 세워 스스로 수비해내는 것은 최하의 방법”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 험악한 전쟁터의 현실 삶에서 “싸우지 아니하고 남을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바로 이 병법서를 통해 얻는다면, 이 책은 처세술(處世術)로도 그럴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리라.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나의 역주 작업이 이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기간(旣刊) 모든 책을 다시 정리하여 <수정판>으로 묶어, 임동석 교수의 <漢典完譯叢書>로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내고자 하였다.
이에 ≪論語≫ 첫 구절에서 취하여 삼호재(三乎齋) 출판사를 제명(題名)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수정 보완과 누실(漏失)된 자료를 덧붙임과 아울러 통일성을 기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하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해나가고 있다.
노년에 참으로 행복한 일상으로 여기며 이어가고 있다.
2025(乙巳)년 5월 立夏(5일)에 茁浦 林東錫이 負郭齋에서 다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