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 일찍이 <經下邳圯橋懷張子房>(하비 이교를 지나며 장자방을 회고하다)라는 시에 이렇게 읊었다.
“장량(자방)이 아직 큰 호령 내리지 못할 때,
원수 갚을 길 찾느라 집안 재산을 다 털었네.
창해군을 통해 장사를 얻어,
박랑사에서 진시황 무리를 내리쳤도다.
비록 고국 한나라 원수를 갚지 못하였으나,
천지가 그 일로 모두 진동하였지.
이곳 하비로 내려가 잠시 숨어 살았으니,
어찌 지혜나 용기가 없어서 그랬으리오?
내 지금 이곳 이교(圯橋)에 이르러,
옛 영웅의 풍모를 흠모하도다.
오직 푸른 물 흘러가는 것만 보일 뿐,
그 옛날 황석공은 사라지고 없구나.
이 사람 이미 떠나고 나서,
서주(徐州)와 사주(泗州)가 쓸슬히 텅 비었음을 탄식하도다!”
子房未虎嘯, 破産不爲家. 滄海得壯士, 椎秦博浪沙.
報韩雖不成, 天地皆振動. 潛匿游下邳, 豈曰非智勇?
我來圯橋上, 懷古欽英風. 唯見碧流水, 曾無黄石公.
歎息此人去, 蕭條徐泗空!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가는 중국 관광지가 호남(湖南) ‘장가계’(張家界)가 아닐까 한다. 이곳이 바로 ‘장씨 집안의 세계’라는 뜻으로, 그 장씨가 바로 장량(張良)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장량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제국을 세웠으며, 아울러 둘째 황제 유영(劉盈. 惠帝)를 상산사호(商山四皓)를 불러 보위하여 한초의 나라 기틀을 잡은 인물이다.
이처럼 정치가요, 정략가인 한흥삼걸(漢興三傑)의 하나인 그는 말년에 신선술(神仙術)에 탐닉하여(良從入關, 性多疾, 卽道引不食穀, 閉門不出歲餘), 끝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바로 장가계의 풍광과 산세가 선계(仙界)와 같아, 이곳으로 숨어들어 그는 신선이 되어 등선(登仙)하였고, 그 후손들이 이어가면서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史記≫에 그는 황석공을 만나 책을 받은 13년 뒤, 제북(濟北)에 이르렀을 때 곡성산(穀城山) 아래에서 黃石(누런 바위)를 발견하였고, 죽은 뒤 그 바위 아래 묻혔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설일 뿐이다.
그러나 ≪仙釋志≫와 ≪陵墓志≫에 “그가 그곳에서 적송자(赤松子)와 교유하고 싶어 하였고 그곳 靑巖山에 묻혔다”라 하였으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나는 젊을 때 ≪사기(史記)≫ 유후(留侯) 장량(張良)에 대해 읽으며 이상한 노인에게 받은 병법서가 무엇이기에 그 책을 읽고 천하의 뛰어난 인물이 되었을까 궁금히 여긴 적이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책이 바로 이 ≪삼략(三略)≫이라 알려져 내려오고 있으니,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분량도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내용도 병법서보다는 오히려 치국안민의 유가적(儒家的) 인의도덕(仁義道德)이 주제였다.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고 문장도 다른 병법서에 비해 순통하였다.
이 책은 읽는 곳마다 용인술(用人術)과 처세술(處世術)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응용할 수 있으며, 천고(千古)를 두고 명언이요, 많은 생각을 자아내는 내용과 고사가 와닿는다.
“군대가 주둔 자리를 정하고 우물을 아직 다 파지 않았을 때, 장수는 목마르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며, 군대 막사가 아직 다 마련되지 않았을 때라면 장수는 피곤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며, 군대 아궁이에 아직 밥을 다 짓지 않았을 때라면 장수로서 배고프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장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의사(義士)로 하여금 재물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라. 의로운 사람이 어질지 못한 일로 인해서 죽음으로 가도록 몰아서는 안 되며, 지혜로운 자에게 혼암한 군주를 위해 모책을 짜는 일에 쓰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향내 나는 미끼 아래에 틀림없이 물고기가 걸려들게 마련이며, 중한 상(賞) 아래에는 틀림없이 죽음을 무릅쓴 사나이가 있게 마련이다.”
“지혜를 부리게 하며, 용기를 가지게 하며, 탐욕을 부리게 하며, 어리석음을 부리게 하라. 지혜라는 것은 그 공을 세우기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용기란 그 뜻을 실행해보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탐욕이란 그 이익을 쫓아 내달리게 하는 것이며, 어리석음이란 그 죽음을 돌아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지극한 본성을 바탕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 이것이 군대에서의 미묘한 권형(權衡)이다.”
“현자에게 녹을 줄 때 재물을 아까워하지 말고, 공 있는 자에게 상을 내릴 때는 그때를 놓치지 말라.”
“세금과 부역이 과중하고 잦으면 백성으로서 형벌에 걸려드는 자가 끝없이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서로 포악하여 못된 짓을 저지르게 된다. 이를 일러 망할 나라라 한다.”
“뛰어난 군주는 음악을 중시하나니, 소위 음악이란 금석사죽(金石絲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 자신의 집을 즐겁게 여기며, 그 가족을 즐겁게 여기며, 그 생업을 즐겁게 여기며, 자신이 사는 그 도읍을 즐겁게 여기며,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정치와 법령을 즐겁게 여기며, 그들이 지키는 도덕을 즐겁게 여김을 말한다. 이렇게 되고 나면 임금이 음악을 지어 이를 절조에 맞추어 그 화합을 놓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 안전하면 그만이라고 악을 보고도 나서지 않는 것은, 사람과 사물을 살상하는 짓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도(道)에 두어야 하나니, 무릇 사람이 도에 근거를 두어야 함은 물고기가 물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아 물을 얻으면 살 것이요 물을 잃으면 죽을 것이다.”
“무릇 높이 나는 사냥감 새가 사라지면 좋은 활은 창고로 들어가는 법이며, 적국이 멸망하고 나면 모책을 만들던 신하는 사라져야 한다. 이리하여 그 대신 공을 세운 자에게 봉지를 주어, 신하로서 최고의 직위에 앉혀주며 가장 좋은 땅을 봉지로 주고 진귀한 물건을 주어 보상한다. 무릇 사람이란 일단 한번 모은 다음에는 쉽게 해산시킬 수 없고, 위엄과 권세란 일단 한번 주고 나면 쉽게 이를 되찾을 수 없다. 군사를 소환하고 그 군대를 해산시킬 때가 바로 존망의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므로 이를 약화시키되 지위를 주는 것으로써 하고, 이를 빼앗되 제후국으로 봉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패자(霸者)의 책략인 것이다. 이 때문에 그 행동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신하로서는 이를 통해 이미 세운 공을 온전히 하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니 서로가 좋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내용들은 바로 병가(兵家)의 깊은 책략이면서 사람을 움직이는 원리이다. 그런가 하면 교활한 고사도 있으니, 옛날 어떤 장수는 원정길에 어떤 이가 좋은 술을 가져다 위로하자, 이를 강물 상류에 쏟아부어 사졸들과 하류에서 함께 그 물을 마시며 술을 마신 것으로 대신하였다. 사졸들은 이를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나섰다는 것이다.
무릇 이러한 용인술은 지금 똑같이 실행할 수는 없지만, 그 원리는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내가 장수라면 한 동이 술을 상류에 부어버릴 수 있는 꾀가 있어야 하며, 내가 사졸이라면 그 술맛을 흉내 낸 강물을 인정하고 따라 줄 필요가 있다. 속으로 불만과 비아냥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 시대 함께 살며 부딪치고 있는 옆 사람이, 바로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아군이요 우군이기 때문이다.
<무경칠서(武經七書)>의 하나인 이 ≪삼략≫은 그런 의미에서 한번 읽어볼 만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널리 읽혀 현토무경(懸吐武經) ≪六韜·三略·孫武子直解≫가 원문 현토의 합본으로 1928년에 이미 출간된 적이 있고, 그밖에 <秘書三種>이라 하여, ≪素書≫(黃石公), ≪心書≫(諸葛亮), ≪陰符經≫(黃帝)도 원문 현토본이 나와 있어, 전대(前代)는 물론 현대 사람들도 익히 들어보고 읽어온 책이다.
따라서 이 험한 세상, 전쟁터와 같다고 여기는 지금 이 시대, 이 세태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답이 그래도 어디엔가 들어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도 좋다.
한편 이 책은 본인이 역주하여 출간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필생 작업으로 하던 본인의 ‘東洋古典百選’도 간단(間斷)을 거듭하다가, 결국 이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선뜻 <漢典完譯詳註> 총서에 넣어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재출간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무경칠서>에 넣어 함께 다시 빛을 보게 되었으니, 천신지기(天神地祇)의 도움이 아닌가 한다. “不知老之將至”하며 꾸역꾸역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2025년(乙巳) 立夏에 茁浦 林東錫이 丹陽 黃庭山 圓通庵 아래 酉蝸廬에서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