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석자(鄧析子)≫, ≪윤문자(尹文子)≫, ≪공손룡자(公孫龍子)≫, ≪신자(愼子)≫ 등 4권은 각기 선진제자학(先秦諸子學)으로써 뚜렷한 학술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해오는 저술의 분량(分量)이 지극히 적고, 전수 과정이 희미하여 제대로 읽혀오지 않은 점이 있어 늘 아쉽게 느끼고 있었다.
춘추(春秋) 말기부터 전국(戰國) 시대까지 학술은 만화제방(萬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선진제자학 시대로 불린다.
이를 정리한 유흠(劉歆)의 ≪칠략(七略)≫을 거쳐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우선 당시까지의 학술을 <집략(輯略)>, <육예략(六藝略)>, <제자략(諸子略)>, <시부략(詩賦略)>, <병서략(兵書略)>, <술수략(術數略)>, <방기략(方技略)> 등 일곱 가지로 나누었고, 그중 <제자략>은 다시 구류십가(九流十家)로 나누어져 있다.
즉 ①유가(儒家), ②도가(道家), ③음양가(陰陽家), ④법가(法家), ⑤명가(名家), ⑥묵가(墨家) ⑦종횡가(縱橫家), ⑧잡가(雜家), ⑨농가(農家), ⑩소설가(小說家)이다.
그 가운데 명가(名家)의 대표자들로 올라 있는 이들이 바로 등석(鄧析: B.C.545~B.C.501), 윤문(尹文: B.C.362?~B.C.293?), 공손룡(公孫龍: B.C.325~B.C.250)이며, 법가(法家)에 올라 있는 이가 신도(愼到: B.C.395?~B.C.315?)이다.
이들은 각기 엄연한 일가를 이루어 찬연히 제 몫을 지켜왔던 뛰어난 사상가(思想家)요 대단한 변론가(辯論家)들이었다.
그럼에도 전하는 저작의 양이 적고 기록의 산견(散見)하며, 다른 제자들의 압도적인 세력으로 인해 제대로 읽혀오지 않은 점이 있다.
특히 등석은 선진제자학(先秦諸子學) 발흥의 초기 인물로 <죽형(竹刑)>의 고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소위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이지만 논리로는 모두 옳을 수 있다”(兩可之說)를 내세웠던 언변가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후(無厚)>편과 <전사(轉辭)>편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윤문(尹文. 尹文子)은 황로학(黃老學)의 기초를 열어 등석, 공손룡, 혜시(惠施)와 함께 전국명가사인(戰國名家四人)으로 불리던 정명가(正名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저술은 <대도상(大道上)>과 <대도하(大道下)> 두 편만 전할 뿐이다.
공손룡(公孫龍. 公孫龍子)의 경우 너무나 널리 알려진 인물로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 ‘견백이동론’(堅白異同論) 등의 학설은 지금도 논리학(邏輯, Logic)의 대표 명제로 人口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저술은 지금 <적부(跡府)>, <백마론(白馬論)>, <지물론(指物論)>, <통변론(通變論)>, <견백론(堅白論)>, <명실론(名實論)> 등 6편이 전하고 있다.
끝으로 신도(愼到. 愼子)의 경우 법가(法家) 사상의 선하(先河)를 이루어 신불해(申不害)나 한비(韓非)보다 앞선 인물이다.
그는 법가의 다섯 가지 분류, 즉 상실파(尙實派), 상법파(尙法派), 상술파(尙術派), 상세파(尙勢派), 대성파(大成派) 중에 바로 상세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초기 법가 사상의 기초를 다져 뒤에 한비자 같은 대성파를 키워내기도 하였다.
지금 전하는 것은 <위덕(威德)>, <인순(因循)>, <민잡(民雜)>, <지충(知忠)>, <덕립(德立)>, <군인(君人)>, <군신(君臣)> 등 7편의 아주 짧은 문장일 뿐이다.
이상 네 사람은 실제 제자학 분류상 셋은 명가(名家)요, 하나는 법가(法家)이지만 그 뒤 기록에 따라 잡가(雜家), 묵가(墨家), 도가(道家) 등으로도 넘나들기도 한다.
이에 여러 가지 문제는 있지만 분량의 한계로 인해 이번에 하나로 묶게 되었으며, 그 순서는 명가 셋을 시대순에 따라 순서를 삼고 이어서 ≪愼子≫를 더한 것이다.
아울러 각 기록을 대조하고 역주하였으며 참고 자료를 실어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였음을 밝힌다.
한편 이 책은 일찍이 출간하여 널리 이용되어 왔으나, 여러 사정으로 교정을 거친 <修正版>을 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본인의 일체 기간(旣刊) 도서를 모두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다시 내겠노라 제의가 있어, 흔연(欣然)히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박대표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2025년 을사(乙巳)년 淸明에
줄포(茁浦) 林東錫이 부곽재(負郭齋)에서 고쳐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