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알아보는 법. ≪논어(論語)≫ <學而篇>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라 하였고, <顏淵篇>에는 “인(仁)이란 남을 사랑하는 것이요, 앎이란 사람을 알아주는 것”(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이라 하였다.
‘남을 알아준다’(知人)는 것.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만물은 학문적으로는 우선 생물과 무생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물은 다시 동물과 식물로 나뉜다.
사람은 굳이 이 분류에 의해 나눈다면 동물에 소속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보아도 특이하고,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영활(靈活)하며 사유(思惟) 세계를 가지고 있는 특이한 존재로써, 다른 동물과 동일시하여 단순 분류를 한다는 것은 어딘가 불완전한 듯하다.
이에 다른 분류 방법이 있었으면 하고 곰곰 생각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같은 물(物)이되 ‘식물, 동물, 인물’하는 식으로 말이다.
옛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늘로 품부(稟賦) 받은 본연의 성(性)과 재(才), 그리고 정(情)과 자연의 이치를 따를 수밖에 없는 이(理), 그리고 추구할 대상을 만들어 끝없이 정진하는 도(道), 그런가 하면 후천적으로 사회 속에 들어가 생명을 영위하면서 나타내게 되는 온갖 오욕(五慾)과 칠정(七情), 나아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사람 숫자만큼이나 많은 다양한 표정(表情)과 가치관(價値觀), 그런가 하면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른 삶의 결과 등등.
이러한 인물(人物)에 대한 연구나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 바로 이 ≪인물지(人物志)≫가 아닌가 한다.
여기서 ‘人物’이란 ‘개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부류’라는 뜻이다.
나아가 저자 유소(劉邵)의 관점은 “정치를 통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인물(人才)을 어떻게 감별하여 등용할 것인가?”에 마지막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인재 감별법(人才鑑別法)’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듯하다.
겉으로 사람을 판별하고 감별하는 방법, 속에 든 생각이나 감정, 욕구가 표정에 나타나는 징상(徵狀), 능력과 재능에 따른 적합한 업무나 임무, 사회 조직 속에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와 그에 따른 공동선(共同善)과 공동이익의 효과. 이러한 것을 체계화하고 유형화(類型化)해 보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감별함이란 아마 어려울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물이라는 부류 속에 하위분류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오묘함과 지나치도록 복잡한 다양성 때문에 그리 쉽게 체계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 년 사람이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이나 본래 가지고 있던 지혜, 그리고 자연 섭리 속에, ‘사람’도 당연히 어떤 유형을 형성하게 된다.
이를테면 성인(聖人)의 가르침이 과연 맞는다든지, 나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든지, 주위 환경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연관이 있다든지, 어떤 경우의 사안을 두고 각기 어떻게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든지 하는 식이다.
삼국(三國) 위(魏)나라 때 유소(劉邵)라는 사람은 이를 근거로 저술을 남겼다.
그는 형이상학적인 초보적 분류를 통해 인물 감식법, 유형별 표징, 재능에 따른 장단점, 그 결과의 효용성 등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을 감별하고 품평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라 스스로 토로하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공연히 가까이하기 거북한 사람, 보기만 해도 이유 없이 즐거움을 주는 사람, 논리는 정당하나 처리 방법이 서툴러 감정부터 상하게 하는 사람, 나를 이겼지만 내가 깨끗이 승복하도록 여유를 주는 사람,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더구나 세상에 악(惡)한 사람은 없다.
각기 다를 뿐이다.
그런데 ‘다른 것’을 틀린 행동, 즉 ‘악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호오(好惡)의 감정을 잣대로 선악을 판별하려 드는 경우도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였다.
과연 사람을 변별하는 것이란 지난(至難)한 일이다.
일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나, 한 조직의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할 때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순간의 판단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뒤에는 엄청난 화근이 되기도 하고, 일생 운명을 바꾸는 고마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다 맺은 인연이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유소는 이 책의 끝에 “명리(名利)의 험한 길에서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 앞서는 것이며, 남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니 이를 어찌 터득할거나!”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리라.
정판교(鄭板橋, 鄭燮)는 ‘난득호도(難得糊塗)’라 하였다.
‘멍청해지기가 세상에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이 책에도 ‘지후(持後)’를 높은 경지로 보았다.
즉 ‘뒤에 처져 겸손함을 지켜내는 일’이야 말로 상대를 이기고자,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일보다 더 어렵지만 그것이 곧 최선의 무기이며, 최상의 ‘도(道)’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곧 수양서이기도 하다.
한편 이 책은 본인이 이미 상세한 역주를 거쳐 출간되어 문세(問世)한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내 작업이 중단되었는데, 마침 제자 박노일(朴魯一) 군이 나의 계속되는 작업은 물론, 기간(旣刊)의 모든 책을 다시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출간하기로 하였다.
나에게 이는 바로 공자가 말한 “加我數年”의 염원(念願)을 들어주는 천의(天意)였다.
이에 출판사 이름도 ≪論語≫ 첫구절에서 취하여 삼호재(三乎齋)라 하고, 다시 교정과 수정, 보완, 완성도의 제고 등의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컴퓨터 작업 중 무엇인가를 잘못 눌러 원고가 모두 날아갔고, 전문가에게 포렌식 복구를 의뢰하였으나, 복구 불가 판정을 받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마침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자신있다고 어금니를 꽉물로 짜증 없이 다시 시작하는 데에 숙련된 성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또한 행복한 나의 일이어서 “不知老之將至”의 경지가 아닌가 하고 여길 때가 더 많았다.
“性相近, 習相遠”(≪論語≫ 陽貨)이라 하였으니, 모든 것을 긍정으로 대하면, 그 긍정의 보답은 화합과 선연(善緣), 언제나 배움의 자세로 나아가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계왕증금(乩往證今)! 옛사람들이 추구해온 가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금 증명되고 있다.
한 번 차근차근 곱씹어볼 부분이 상당히 많다.
2025(乙巳)년 3월 5일 경칩(驚蟄)에 林東錫이 부곽재(負郭齋)에서 다시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