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大雅 烝民)에 “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彛, 好是懿德!”(하늘이 많은 백성을 낳으셨으며, 사물이 있으면 그에 따른 법칙이 있도다. 백성이 잡고 있는 떳떳한 도리란,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는 것!)에서 나는 일찍이 “有物有則(유물유칙)”이라는 네 글자에 깊이 매료된 적이 있다.
조화옹(造化翁)은 “천하 만물을 내면서 각기 그 자신의 법칙을 타고 나도록 하였다”라는 뜻이리라.
하늘이 숨겨놓은 그 오묘한 각자의 법칙! 사람은 그 법칙을 발견하고 이용하며 활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해온 것이 결국 지구상에 인류가 나서 이룩해온 문명 발전사였을 것이다.
≪尙書(書經)≫에는 이를 ‘天工(천공)’이라 하였고, ≪周易≫에는 나아가 ‘이를 만들어 쓰라’고 ‘開物成務(개물성무)’라 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격언, “사람이 일을 하나? 연장이 일을 하지!”라는 말은 그 뒤 내 일생 모든 삶의 작업에 아주 큰 기준이 되었다.
연장(도구)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듯이, 사람은 미리 일을 준비하고, 그에 맞는 연장(학력, 실력)을 미리 베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한 단계 위까지 입에 중얼거리며 힘들어하지 않는 않게 되었다.
공자가 말한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공인이 그 맡은 일을 잘 하려며, 반드시 먼저 그 연장부터 잘 베려놓는 법)도 역시 이러한 원리일 것이며, 우선 생업(生業)과 항업(恒業)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지추(顏之推)의 “隨身薄技”(몸에 붙어 있는 하찮은 기술)를 가진 다음에야, ‘鴻鵠之志’를 꿈 꿀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을 여행할 때면 궁궐, 건축물, 공예품은 물론이고 각종 일상생활 고대 물건에 대해 신기한 느낌을 갖곤 하였다.
그토록 정교하고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만 되는 제작 과정과, 기술의 축적이 있어야만 가능한 야금, 합금이며, 제작 공구가 갖추어져야 해낼 수 있을 결과물에 대해 동양의 과학이나 기술, 산업시설 등에 대해 내심 열등감을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발명품은 서양의 고대에 비해 훨씬 앞서 있고, 나아가 더욱 인간적이었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였다.
더구나 옥공예나 도자기 공예의 경우, “사람의 손재주로 이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과 어떤 도구로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하는 경이로움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천공개물≫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물론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심증으로 느끼는 과학’은 사실 ‘눈으로 확인하는 과학’이나 ‘계기(計器)로 수치화하는 과학’ 못지않게 긴 세월 동안 동양의 제작을 담당해 왔고, 그것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동양이 물질보다 정신세계를 앞세워 공맹(孔孟)이나 제자백가의 철학, 그리고 화려한 문인 등은 높이 여기면서, 정작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장인(匠人)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세 번째 지위에 넣어 천시하였음에도, ‘사람은 살아왔고 물건은 만들어졌으며 일상생활 필수의 도구들은 발달하였다’는 사실은 지금 남아있는 고물(古物)들을 통해 그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제작 과정의 정밀한 내용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실로 붓을 자신의 전유물로 여긴 문인으로서는 선뜻 나서지 못하였고, 또한 그들이 할 일도 아니어서 제대로 문자화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어진 과학사(科學史)는 적은 양이나마 기록으로 전수되기도 하였다.
이에 이를 총정리하여 여러 방면에 걸쳐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천공개물≫이다.
명대 말의 과거 낙방자가 어떤 한 사람이 남들 다 가는 사로(仕路)를 포기하고 자신의 평소 취향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과 제작 기술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아마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분야이다.
이에 이러한 기록의 내용과 그 속에 담고 있는 과학, 화학, 공학, 제조기술, 물리학, 생물학, 식물학, 광물학, 농학 등에 대해 일자(一字) 지식도 없는 역자로서 이를 번역(역주)하겠다고 대들었던 것이 도리어 후회도 되고 힘도 들었다.
나아가서 화학 기호도 식물학 학명도, 나아가 전문 용어조차 생소하게 느끼는 문외한인 자가 작업에 덤빈 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이규경(李圭景), 서유구(徐有榘) 등이 이를 탐독하였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는 말에 현혹된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업에 나서보니 전혀 뜻밖이었다.
진행해 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내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고, 단지 한자로 기록되었다는 것 외에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으로는 전혀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에 몇 번이고 포기할까 접어두었다가 그래도 무식한 번역기(飜譯機)가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문자 뒤집기’만 하듯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솔직히 알지도 못하면서 문자적 번역에 그치고 말았음을 자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를 깊이 아는 전문학자가 보면 알겠지 하는 책임전가(責任轉嫁)와 그래도 혹 디딤돌은 되겠지 하는 효용성에 대한 가치를 내세우고 마치기는 하였다.
독자 제현이나 이를 이용하는 전문학자에 많은 양해를 구하며 혹 잘못된 설명이나 오류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이해와 함께 편달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일찍이 본인이 출간하여 문세(問世)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나의 역주 총서(叢書) 작업이 중단되어, “吾老矣, 休而已!”라고 할 때, 마침 삼호재(三乎齋) 박노일(朴魯一) 대표가 나의 기존 총서 모두를 다시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재출간하여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제의를 해 와서, 거듭 힘써 정리하고 수정 보완하여 좀 더 많은 이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天之未喪斯文也”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2025(乙巳)년 음력 새해 첫날(양력 1월 29일)
茁浦 林東錫이 醉碧軒에서 다시 고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