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서문
박동균(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한 시골 마을에 조용히 살던 어떤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은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마을 언덕 위에 올라가 가로등 하나를 손수 밝혔습니다. 전기가 없던 그 무렵, 그 가로등은 어둠 속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는 유일한 등불이었습니다.
어느 날, 도시에서 이사 온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연세에 매일 이 언덕까지 올라오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어르신이 이 일을 해도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고맙다는 말도 못 들으실 텐데, 왜 매일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는 겁니까?”
노인은 잠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불을 밝히면, 길을 걷는 사람이 다치지 않지.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게 내가 할 일이야. 등불은 내가 밝혔지만, 그 불빛은 남을 위한 것이거든.”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며, 매일 그 언덕에 올라 불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도 이 노인의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안전’과 관련된 강의와 연구, 봉사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대학을 휴직하고, 3년간 대구시 자치경찰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국장(지방정무직 3급 공무원)으로 공직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되는 자치경찰제도를 교수로서가 아닌 실제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직자로서 대한민국 자치경찰제의 토대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저서는 필자가 경찰과 범죄, 테러, 위기관리와 안전, 그리고 공무원의 윤리와 리더십, 소통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치열하고도 중요한 영역을 둘러싼 주제들을 중심으로 출간한 것입니다. 이 글들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비판을 넘어서, 현장에 몸담은 이들이 마주한 현실과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한 생생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안전과 관련된 글을 쓰고, 강의를 할 때, 그리고 공직자로서 정책을 집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현장을 중시하되, 이상을 잃지 않는 시각’입니다. 경찰이나 소방, 위기, 재난 대응 기관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 선 존재입니다. 또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책임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책임은 태산같이 무겁고, 때로는 외면받기도 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책은 필자가 쓴 칼럼과 기사, 방송 인터뷰 등을 모은 기록이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를 향한 작지만 간절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급변하는 치안 환경 속에서 갈수록 첨단화되고 교묘해지는 범죄 양상, 반복되는 재난과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위험한 상황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공공의 영역에 몸담은 이들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런 태도를 ‘견위수명(見危授命)’이라고 했습니다.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입니다. 멀리 미국 9.11 테러 현장에서, 가까이는 평택 화재 현장에서, 우리는 실제로 그러한 정신을 실천한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단순히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공직자의 자세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살아 있는 교과서였습니다.
필자의 글은 주로 ‘사건’이나 ‘위기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그 안에 담고자 한 건 늘 ‘사람’이었습니다. 범죄의 현장에서, 재난의 경계에서,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 속 공직의 자리에서, 누군가는 지켜야 했고, 또 견뎌야 했습니다.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필자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들을 엮은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글은 그때그때의 사회적 이슈와 현장을 중심으로 썼지만, 돌이켜보면 모두 공통된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왜,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필자는 학자로서, 공직자로서, 때로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위기의 순간마다 공공의 ‘책임’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단순한 비판이나 논쟁이 아닙니다. ‘실패’를 지켜보면서 ‘버팀’을 고민한 행정학자의 기록이며,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서 더 안전한 사회를 향해 외친 작은 목소리입니다.
필자가 이 글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생각은 단순합니다. ‘공공의 가치’는 단순히 말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실천하는 사람들의 역량과 태도가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공직을 맡은 사람은 꾸준하게 역량(내공)을 키워야 합니다. 물론 시민도 함께 해야 합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한 평면적인 분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책임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들이 비단 경찰이나 소방 등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공감, 그리고 신뢰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더 나은 공동체, 더 건강한 사회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이 책을 통해 경찰과 공직자의 역할과 사명, 각종 범죄와 대응,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에 대해 한층 깊은 이해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과제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경찰관 등 모든 공직자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들의 헌신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진정한 힘임을 강조하며, 진심과 열정을 담아 이 책을 펴냅니다.
2025. 12.
저자 박동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