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뛰어난 설교자도 사람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가장 감동을 할 때는 진정한 사랑을 보았을 때만 가능합니다. 고리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교회 내에서 당한 파벌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음란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은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이 많았고, 다양한 은사가 나타났지만, 자신의 은사가 더 낫다고 설 분쟁을 하기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회를 보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많은 성경 자료와 세계적인 목사님들의 설교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인하여 성도들도 목회자 이상으로 실력을 기를 기회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문제는 머리는 커졌는데, 몸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은 유창하게 하는데, 행동은 전혀 엉뚱하게 하는 식입니다. 성경을 자기 마음에 맞게 편집을 하는 능력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몹시 나쁜 습관 중 하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이중인격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교회에서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서 세상 사람들은 교인들의 이중인격에 치를 떨기도 합니다. 실제로, 필자가 직장에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유를 하니까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너무 싫어서 당분간은 교회에 가기 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학 성서중 가장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하여 사랑에 대하여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은 어린아이들도 암송하고, 노래를 통하여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 이 시대의 비극이자 아이러니입니다. 바울이 말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도 아니요, 형제간의 사랑도 아니고 가족 간의 사랑도 아닌 독생자까지도 죄인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오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으로부터 향하던 관심을 타인 지향적으로 돌려서 예수님과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받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바울은 모든 은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은사의 높고 낮음은 없이 모두가 유익하다고 하였으며, 사랑으로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일은 많이 했지만,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고, 의무감이나 열정만 가지고 일을 많이 한 경우에는 나중에 가서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예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가치이며 의미가 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리스도인의 대헌장과 같이 중요한 것으로, 날마다 암송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은사입니다. 다른 은사가 없더라도 사랑만 있으면 얼마든지 예수님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했습니다. 할머니는 평범했지만,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었고 자신을 위하여 산 적이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본인은 희생하는 모습으로 사는 삶이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경 이외에 할머니만큼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삶은 말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냅니다.
할머니의 이야기와 성경의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묵상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단순하고 필연적인 진리를 외면하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은 뒤에 자녀들이 유산 분배 문제 때문에 다투는 경우도 종종 벌어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영광입니다. 이 세상의 힘든 육신의 삶을 벗어 던지고 영원한 그리스도를 갑옷 삼아 주님과 천국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삶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놓으신 것은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많이 인도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들어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기도도 변화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쾌락을 위하여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의 고린도 교회와 같이 세상은 타락했습니다. 지식은 커졌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평범했지만, 사랑의 열매를 맺은 한 할머니에 대한 신앙 간증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은 큰 사역을 원한다. 교회 내에서도 사역의 차이를 두면서 큰일과 작은 일을 구분합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사역과 은사는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세속주의”가 판을 치는 교회 내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할머니 삶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맛있는 것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주었고, 시간이나 노력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헌신했습니다.
할머니의 인생과 성경의 가르침을 비교하면서 성경 속의 가르침을 할머니는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보여주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