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일본에서는, 작중에 ‘나’라는 인물이 등장하기만 하면 그 ‘나’는 작품을 쓴 작가와 동일한 소설가이고, 그 소설의 이야기는 전부 실제 사건인 것처럼 오해받는 풍조가 일반화되었다. 그것이 바로 일본 문학의 특수성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일본의 사소설私小說이다.
‘현실 그대로의 완전한 재현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픽션fiction을 전제로 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을 때 허구를 전제로 하고 읽는다. 소설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암묵적인 전제이자 약속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고 해도 독자들은 그것이 자서전이지 않으면 픽션으로 생각하고 읽는다. 소설을 읽을 때 작가를 소설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소설읽기 방법인데, 일본 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끊임없이 작가를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일치시켜서 읽는다. 이것은 일본 사소설만의 독특한 읽기 방법이다. 즉, 사소설은 ‘소설은 픽션’이라는 개념을 전도시켜버렸고, 사소설 독자는 ‘소설은 픽션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새로운 소설의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는 픽션의 등장은 사소설 작가들로 하여금 현실과 허구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사소설 작가는 현실을 글로 옮기면 그대로 소설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착각이다. 쥬네트에 의하면 언어가 완전히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이 아니며 그 언어와 동일한 언어뿐이다. 완전한 모방은 소설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이고, 모방이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불완전한 모방이 될 수밖에 없다. 완전한 모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망상이고 소설에 있어서 완전한 모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에 의해 ‘현실 그대로의 완전한 재현은 가능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었기에 일본의 사소설이라는 장르는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일본의 자연주의에서 일본의 사소설로
일본 근대문학의 성립기는 러일전쟁(1904~1905)의 다음해부터 다이쇼(1912~1926) 초기까지인데, 그 선구적인 활동을 한 것이 자연주의였다. 일본 자연주의(Japanese Naturalism)는 청년시대에 낭만적인 시를 쓴 적이 있는 30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다. 이 자연주의 운동은 봉건적인 전통에 대한 반항을 기초로 기존의 소설전통을 부정하고 ‘무기교’ ‘무이상’이라는 객관묘사의 주장과 엄격한 자기고백이라는 두 개의 요소가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천황제국가권력이 점점 강대해진 시기였다. 따라서 일본 자연주의는 구시대의 풍습에 대한 비판이 사회와의 대결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역으로 초기에 보인 반항의 정열이 단시간에 없어지고 작가의 신변에만 시야를 좁힌 관조(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의 리얼리즘이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리얼리즘은 사실의 편중방법론과 상응하여 자연주의 문학운동으로 이어지고 드디어 사소설의 길을 열었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사회성이 강한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破戒](1906)가 일본 자연주의의 막을 열었다. 그러나 1년 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蒲團](1907)이 일본 자연주의의 방향을 결정하고 사소설의 장르를 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불]을 비롯한 일본의 자연주의는 사실의 충실한 재현과 ‘노골적인 묘사’를 원칙으로 하였다. 그것은 개인의 진실한 가치관을 반영한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현실을 묘사하는 소설이었고, 후에 ‘있는 그대로의 자기표출’이라는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문학을 대상으로 사생활을 중시하는 자연주의의 조류는 일본의 독특한 고백문학을 탄생시켜 장르로서의 사소설이 성립한다.
사소설의 발생과 흥행, 그 이면에 숨겨진 욕망
저자는 일본 사소설의 대표작인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과 이와노 호메이의 [오부작]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사소설의 특징을 살펴보는 한편, 사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인의 정신적인 구조를 사회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현실 폭로의 비애를 감수하면서까지 작가들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고백하는 행위, 그것의 이면에는 배설구로서의 통로를 찾으려는 욕구와 자기치유적인 효과, 나르시시즘과 아마에(甘え, 어리광)가 깔려 있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공인된 ‘엿보기 취미’ 및 주인공에 자기를 동일화시키려는 욕구로 사소설을 즐겨 읽게 되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 책은 일본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인 사소설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안내함으로써, 한 나라의 문화가 가장 잘 녹아 있는 예술 형태가 문학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