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이에게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하이델베르크로 여행하고자 하는 이에게 무엇을 보고 와야 하는지 그리고 도시 하이델베르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
◆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고성
우리는 하이델베르크를 얘기할 때 고성을 빼고는 애기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고성의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이란 말인가?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을 살펴보면 수세기에 걸쳐 선제후들에 의하여 증축되어 가는 역사뿐만 아니라, 전쟁과 방치로 파괴되어 가는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30년 전쟁과 팔쯔 상속전쟁 그리고 선제후궁으로서의 기능상실이 폐허화의 주된 이유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기능공백과 폐허상태가 고성의 미학적·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위엄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폐허가 됨으로써 오히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되었고, 미학적 가치가 증가했다. 다른 어느 곳도 자연미가 시대 역사성과 그토록 자연스럽게 결부되어 나타나는 장소는 없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위대했던 성이 폐허가 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역사 자체가 다시 자연이 되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열광적 시인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가 “하이델베르크 자체가 화려한 낭만주의이다”라고 고백할 만큼 낭만주의의 일반 개념이 되었다.
◆ 지식인의 전당 하이델베르크 대학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교황의 허가를 받아 1386년 하이델베르크에 대학을 세웠다. 신성로마 독일제국 내에서 세 번째였으며 오늘날 독일 땅에서는 맨 처음으로 세워진 대학이다. 루프레히트 1세가 하이델베르크에 대학을 세운 것은 팔쯔가 정신적으로는 독일과 유럽의 중심지가 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초대 총장의 직인에는 팔쯔의 사자가 일어나 책을 펼쳐 보이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책에는 ‘셈페르 아페르투스(semper apertus)’라고 적혀있다. ‘항상 열려 있는’이라는 뜻이다.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항상 책이 펼쳐져 있다’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는 국제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이 갖는 의미는 크다. 선제후궁이 만하임으로 옮겨가버림으로써 정치적으로 쓸모없는 지역이 되었을 때, 독일 땅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이 도시가 지방 도시로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 문화사가 리하르트 벤쯔(Richard Benz)가 지적하였듯이 하이델베르크는 땅이 없이도 여전히 ‘정신적 궁(Geistes-Residenz)’으로 기능하였던 것이다.
◆ 하이델베르크를 사랑한 작가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1835~1910)은 1878년 5월 초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하이델베르크에서 몇 주간 머물렀다. 이 도시와 그 주변 도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그의 여행기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의 생활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일설에는 그의 소설 '허클베리핀의 모험'(1884)의 제목을 바로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이델베레’를 영어로 옮기면 ‘허클베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