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만족스러운 소설을 봐서 장문후기를 남깁니다
이전후기들에서 로맨스가 거의 없다고 공통적으로 언급하고있길래 거의 전무할줄알았는데 읽고나니 제 기준엔 차고 넘치게 충분합니다.
1권에서부터도 이미 아 이놈이 남주구나싶게 두 남녀의 관계를 암시하는 그런 장면이 충분히 나오구요. 요새 로맨스99 판타지1로 구성된 대다수 로판들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이 로맨스가 거의 없는것처럼 느껴진다는것에 동의합니다만, 제 기준에선 이 소설만큼 로맨스판타지 장르에 충실한 소설은 참 오랜만인것같습니다.
잘생기고 모든것이 완벽한 남자가(혹은 남자들이) 여주에게 목을 매는 모습만 잔뜩 나오는 사랑얘기를 볼거면 그냥 로맨스장르를 보면 되는데 그럼에도 제가 굳이 로맨스판타지 장르를 찾게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로맨스뿐 아니라 주인공이 판타지세계관에서 겪는 모험도 즐기고싶기때문이거든요
전통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여주가 겪게 되는 탄탄한 서사와 그리고 그에 적절하게 얽혀드는 두 남녀의 로맨스는 제가 로판에서 기대하는 것들이었기에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오히려 완급조절 잘해서 흥미진진한 모험이 한참이다가도 적재적소 알맞은 시기에 잊지않고 두 남녀의 감정선을 천천히 발전시켜나간 초반부와는 달리 후반부는 하렘물의 성향을 띄어서 좀 아쉬울정도입니다.
이 아래로부터는 쓸데없는 개인적 의문과 사족인데요.
로판을 볼때마다 항상 느낀건 여주는 평범할지언정 남주의 비현실적인 외모설정은 단 한번도 깨진 적이 없다는 점인데요. 물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남자와의 연애얘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게 로맨스소설의 존재의의라는건 압니다. 하지만 남자의 껍데기보단 남주와 여주의 설레는 화학작용 그 자체를 더 좋아하는 입장으로선, 과도한 외모설정은 오히려 작품감상을 방해하더라구요. 내가 보고싶은건 완성도 높은 이야기지 작가의 남캐 외모 찬양이 아닌데..
그런 의미에서 여주는 평범한 외모로 설정할지언정 언제나 완벽하고 아름다운 남주외모는 못잃어 하는 기존 로판들과는 달리 간만에 남주외모에 담백한 태도를 보이는 이 작품이 어떤 의미에선 가장 신선하고 혁명적ㅋㅋ으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역시 남주만(사실 남주조차도 흉터는 어쨌든 남자답게 잘생긴 편이라는 언급이 나오긴 하지만) 판에 박힌 미남설정을 벗어나 신선하다뿐이지 여주 주변에는 미형남캐가 바글거리긴 합니다..
평범한 외모여주설정에 플러스로 여주의 알맹이까지 담백했으면 좋았을텐데 여주가 너무 얼굴을 대놓고 착실하고 끈질기게 밝히는게 아쉽구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로맨스가 거의 없다는 평이 무색하게 막판은 거의 하렘물입니다. 잘생기고 잘난 많은 남자들이 여주에게 끊임없이 호의를 표하고, 그중 몇은 연애감정은 아니어도 여주의 능력+인간적인 매력에 의해 계속 함께하게되니깐요. 어떤 의미에선 하렘물보다도 더 다양한 방식(남편, 아들,참모,기사, 알고지내는 적국의왕자, 아카데미산배등등)으로 일처다부제세계를 공고히 하는듯한...
물론 이조차도 색상표를 동원이라도 한듯 온갖 색상의 눈동자와 머리칼 설정+비현실적인 완벽한 외모설정을 찬양하고 묘사하는데 공들이는 다른 로판에 비하면 담백하긴합니다만, 그래도 완전무결 외모 남주공식을 깨뜨린 소설인 만큼 정말 외모지상주의에 초연한 여주를 보고싶었는데 좀 아쉽긴하네요 ㅋㅋㅋ
소설에서 여주가 너무 남캐외모찬양을 대놓고 하면 갑자기 문득 여주가 여주로 보이는게 아니라 이 작품을 써내려간 작가로 보이기 시작하고, 한참 소설을 읽던 도중에 작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작품몰입이 와장창 깨진것을 의미하고, 종국에는 어두운 방에서 이런걸 들여다보면서 즐거워하는 내 한심한 모습을 불현듯 자각하면서 현실타격이 오기때문에 좀 안해줬으면 좋겠는데 ㅋㅋㅋ 여기 여주는 남주외모찬양은 안할지언정, 너무 대놓고 위기상황에서조차도 얼굴 착실히 밝히는 얼빠라서 위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게 문제네요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문장력으로 가상의 중세시대판타지톤을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하게 유지합니다만 그 와중에도 소설의 분위기와 어룰리지 않는 현대어 표현이 간간히 튀어나오더군요. 요새 웬 대한민국 여자가 로판소설이 빙의된다거나 차원이동하는 소설(그 민망한 설정은 둘째치고 유치하고 미숙해보이는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여주의 혼잣말로 사건전개를 갈음하는 서술방식은 제발 때려치웠으면..일기장보는줄... )판을 치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 조차는 새발의 피로 평상시면 감지덕지하면서 봤겠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거슬리는 현대 유행어들이 워낙 적은 양이다보니 조금만 신경써도 충분히 이 불협화음같은 현대어들을 싹 정리할수 있었을테고 또 작가님의 풍부한 어휘를 생각한다면 못했던게 아니라 안했던 것일텐데 그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판타지소설에서 현대어가 튀어나오면 흥미진진하게 읽다가도 산통깨는것마냥 홀딱 몰입이 깨지는 이런 편집증은 저한테만 해당되나봅니다 ㅠ
뭐이래저래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제값 다하는 로판소설이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