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정보
- 2021.03.02. 출간
- 파일 정보
- EPUB
- 3.9MB
- 약 7.4만 자
- ISBN
- 9791166410482
- EC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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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 첫눈의 순간> 19세기 초 조선의 서북쪽에 사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딸 최지온.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지온의 삶도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망나니 오라비와 몸이 아프신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지온은 날품팔이로 겨우 생활을 이어간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겨울날, 높은 산에서 설표의 몸에 박힌 쇳조각을 꺼내 주면서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 초설, 초설로 합시다. 그쪽 이름.”
단순한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몸을 바꿀 수 있는 영물 설표.
여인으로 변한 설표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살면서 지온은 점점 설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렇게 영물과 인간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어가고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관계에 연정이 싹튼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시작된 설표와 지온의 아슬아슬한 연애. 세상은 과연 그들의 사랑을 지켜줄 수 있을까.
***
“…이러면 안 돼.”
“네 마음은 나한테 없어?”
“….”
“내 마음은 너한테 있는데.”
“…그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
초설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란하고 특별한 애정이라는 것은 퍽 어려운 관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애정의 한 종류라면, 초설은 확언할 수 있었다.
“어떤 애정이든 나는 다 줬는데.”
자신을 무작정 따라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거늘, 지온은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펄떡펄떡 뛰었다. 여자끼리의 애정이라 함은, 그저 상스러운 잡설 따위에서나 다루는 대식밖에는 몰랐다. 남자에게 한 번도 가슴이 두근거려본 적 없는 지온일지라도 세상이 만들어 둔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 건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하는 거야.”
“왜?”
“…다른 사람들도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 아닌데.”
그 말 한마디에 지온의 마음이 반쯤 녹았다. 어쩌면 말보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듯이 대꾸하는 초연한 태도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 초설이 방긋거리면 하얗고 새초롬한 꽃이 피어나는 듯싶었다. 어느 한구석 남에게 자랑할 거리 없이 처절한 자신의 삶에 아름다운 눈꽃이 가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거는, 상관없는 것 같아.”
초설은 지게 작대기로 지온의 앞길에 쌓인 젖은 이끼나 낙엽 따위를 확인하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 마음이 나한테 왔는지만 중요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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