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첫사랑이라서 못 잊는 게 아니야, 현아야.”
고1 축제에서 건반을 친 구현아에게 반해 짝사랑 중인 이미진.
차마 말도 붙이지 못하고 속내를 앓던 미진에게 꿈같은 현실이 다가왔다. 그토록 바라던 구현아와 3학년 때 같은 반이 된 것이었다.
모두에게 다정하고 상냥한 현아와 소원대로 단짝이 되었고, 학창 시절 내내 붙어 다니며 즐거운 추억을 쌓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동성애를 혐오 수준으로 치부하는 현아의 발언에 미진은 상처받는다. 이후 현아와 미진은 서로 연락을 끊은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운명처럼 대학교에서 다시 마주친 두 사람.
“되게 오랜만이다, 미진아.”
“어, 야……! 안녕.”
현아는 과거의 불편한 사건은 접어두고 다시 친해지기를 원한다. 반대로 아직 과거의 감정이 남아 있던 미진은 현아에게서 멀어지려 하는데….
“미진아.”
“어?”
“넌 매번 갑자기 선 긋더라. 가끔 보면 나만 노력하는 관계 같아.”
자꾸만 멀어지려는 미진과 그런 그녀를 붙잡으려는 현아의 진짜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
“연애는 어차피 대학 가서도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시기에 친구랑 많이 못 놀면 아쉽잖아. 학교도 일찍 끝나고, 수험생 할인 쿠폰도 뿌리고, 연말인데. 안 그래?”
“그거 한마디로 나한테 자주 놀아달라 이거지.”
“눈치가 늘었네, 이미진.”
저를 호감이 서린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구현아가 씨익 웃었다. 노곤해진 근육을 풀어주는 햇살 같은 미소였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진짜 잔인하다. 이성애자면 인간적으로 나한테 이러지 마라, 정말.
괜히 코끝이 근지러웠다. 이미진은 손으로 코를 쓱 문질렀다. 하하, 다소 없어 보이는 웃음을 터뜨리며 호탕하게 구현아의 등을 쳤다. 구현아는 새초롬한 눈으로 얻어맞은 등을 문질렀다.
“야아, 아무튼 잘했다. 지금 많이 놀아야지. 대학 가면 많이 못 만날 텐데!”
“왜?”
“응? 뭐가?”
“자주 만나면 되지.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 상투적인 말이 왜 아직도 살아있겠어? 그건 진짜인 거야.”
조금 착잡해졌다. 이미진은 인생을 한 차례 겪은 꼰대처럼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현아야. 나 아는 언니가 그러던데, 대학 가면 있던 친구랑 다 멀어진대. 진짜로.”
“그래서. 너 대학 가면 나랑 안 볼 거야?”
구현아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딱히 짜증은 담기지 않았지만, 웃음기 없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조금 의미심장하고 서늘하게 들렸다. 구현아가 미동도 없이 이미진을 직시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너는 사람을 너무 물끄러미 쳐다봐. 이미진은 무의식중에 시선을 피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너 나랑 평생 다녀야 해.”
“집착 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