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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상세페이지

희랍어 시간

한강 장편소설

  • 관심 114
출간 정보
  • 2011.11.10 전자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 EPUB
  • 약 7.5만 자
  • 24.7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54627610
ECN
-
희랍어 시간

작품 정보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낸 것일까. 전소해버린 줄 알았던 언어의 검부러기 밑에서 올라오는 참된 음절들을. 작가는 언어가 몸을 갖추기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흔적, 이미지, 감촉, 정념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신생의 언어와 사멸해가는 언어가 서로 만나 몸을 비벼대는 찰나, 우리는 아득한 기원의 세계로 돌아가 그곳에 동결해둔 인간의 아픔과 희열을 발견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참된 욕망과 조우하기 위해서는 0도 근처에서 차갑게 끓어오르는 글쓰기의 언저리까지 기어이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우리는 죽음과 탄생이 새로운 몸을 얻어 환생하는, 세속의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답게, 온전하게 몰락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소설이 우리에게 있었던가._이소연(문학평론가)

다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한 여자의 이야기

그것이 다시 왔어.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여자는 말語을 잃는다. 그것이 처음 왔던 것은 열일곱 살 겨울. 말을 잃고 살던 그녀의 입술을 다시 달싹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다. 시간은 다시 흘렀다. 이혼을 하고,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기고, 다시 그렇게 말을 잃어버린 후,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선택한 것은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 그곳에서 만난 희랍어 강사와 여자는 서로의 앞에 침묵을 놓고 더듬더듬 대화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남자의 이야기
시간이 더 흐르면……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꿈에서뿐이겠지요.
가족들을 모두 독일에 두고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볼 수 없다던 마흔이 가까워오지만 아마 일이 년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여자의 단단한 침묵과 마주하자 두려움을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선 본 적 없는 지독한 침묵. 그리고 점점 소멸해가는 남자의 미약한 빛. 이 어스름이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 걸까.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어쩌면 한 장의 사진을 오래토록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장의 사진 | 필립 퍼키스는, 『사진강의 노트』 제일 첫 장에서 ‘바라보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 것,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낄 것. “의미는 없다. 오로지 사물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W.C. 윌리엄스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말한다.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삶 전체를 통틀어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은 이 머무름과 반대 선상에 있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 사물 그 자체…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미하든 아직은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_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비슷한 의미에서, 윌리 로니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보통 나는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린다. 실재가 더 생생한 진실 속에 드러나도록. 그것은 시점의 쾌락이다,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_윌리 로니스, 『그날들』

이렇게 오롯이 사물 그 자체(혹은 존재하는 그 자체)가 담겨진 한 장의 사진을 오래토록,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보면, 거기에선 천천히 어떤 기미들이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 『희랍어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 기미를 발견하고 흔적을 더듬는 일이다. 그리고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기미와 흔적들은 어두운 암실, 정착액 속의 사진이 점점 선명하게 상을 만들어내듯 어느 순간 고대문자처럼 오래고 단단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진 현재진행형의 시간까지를 포함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요?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을 찍는다면 그건 바로 이 순간 일어난 일입니다. 십 년 후에 당신이 그 사진을 볼 때, 순식간에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옵니다. (……) 사진은 동결된 순간이며 기억입니다. 하지만 사진은 늘 현재의 순간을 담고 있지요. 바로 사진의 마법이지요. _필립 퍼키스,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그 어떤 사진이라도, 만약 그것을 위하여 적절한 맥락이 창조된다면 그러한 ‘현재’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좋으면 좋을수록 창조될 수 있는 그 맥락은 보다 완전한 것이 된다.
그러한 맥락은 시간 속에서 그 사진을 대신하게 되는데―그것은 불가능한 것인 그것 자체의 원래 시간이 아닌―서술되는 시간 속에서이다. 서술된 시간은 그것이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띠게 되면 역사적 시간이 된다. 짜맞추어진 서술되는 시간은 그것이 자극하고자 하는 기억의 과정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_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암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제대로 된 사진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빛과 어둠이다. 암실에 자연광이 새어들어가게 되면 사진은 하얗게 바래어지고, 암등의 빛이 과하게 되면 사진은 까맣게 타버린다. 그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사진이 완전히 마른 후에야, 인화가 제대로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빛과 어둠과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그것이 사진이라면, 『희랍어 시간』은 해서,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이며, 그것은 오로지 빛과 어둠으로만, 명암으로만 완성되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다. “오직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명암 속에서 그 진실을 밝히는.”(G. I. 구지프)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되고 단단한 문자인 희랍어처럼, 빛과 어둠으로만 완성되는 흑백사진처럼, 소설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으며 그 결이 곱고 단단하다. 목수이며 사진작가인 서영기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목수는 몸의 반응이 중요하다. 나무를 만지고 몸이 반응하며 정신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사진은 세계에 대한 내 사고의 반응이다. 대상은 달라도 반응이 반복되고 집중되면서 동일한 지점에서 둘은 경계가 없어진다.”(월간 사진, 2011.11)
한강의 경우, 그리고 이 소설 『희랍어 시간』의 경우 그것은 언어일 것이다.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감정과 고르고 또 고른 절제된 단어들. 언어로, 문장 그 자체로 세계를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 한 장의 사진과, 이 한 편의 소설과 그대로 닮아 있는.
이 소설과 함께,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하던 것들, 그 기미와 흔적들, 영원과도 같은 어떤 찰나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어떤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작가

한강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70년 11월 27일
학력
연세대학교 국문학 학사
경력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
데뷔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붉은 닻'
수상
2024년 노벨문학상
2023년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2019년 제29회 아르세비스포 후안 데 산 클레멘테 문학상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2017년 말라파르테문학상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2015년 제15회 황순원문학상
2010년 제13회 동리문학상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0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부문
1999년 제25회 한국소설 문학상
1995년 한국일보 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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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4.5

구매자 별점
180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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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책도 소장하고 있지만 리더기에도 넣고 싶어서 구매하여 다시 읽고 별점 남겨봅니다. 참 대단한 필력... 몇 번을 다시 봤던 책인데도 읽을 때마다 새삼 작가님 문장력에 감탄하며 읽게 되네요. 예전에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필사까지 하며 열심히 읽었던 책이었어요. 쉬운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처음 보시는 분들도 한 문장 한문장 조금씩 음미하면서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작가님 수상 소식에 책 읽는 분들 많아져서 너무 좋고, 작가님 예전 책들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어서 더 기쁩니다.

    im1***
    2024.11.26
  • 작가가 단어를 신중히 선택하고 문장을 조합한 아름다운 언어들의 향연이라 생각됨. 결국 인간의 상처는 다른 인간을 통해 치유할 수 있음을 보여줌.

    ssj***
    2024.11.23
  • 하루에 한 장씩 곱씹으며 읽어야 할 것 같달까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형식을 취한 연작시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것이 '예술'인가보다, 나같은 장삼이사가 읽겠다고 덤빌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 어려웠다.

    ayg***
    2024.11.23
  •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만나는 이야기는 어떤 빛이 될까요?

    mag***
    2024.11.21
  •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입니다.
    zer***
    2024.10.30
  • 주인공들 개인 서사 면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보다 좋았어요

    wlf***
    2024.10.19
  • 한강 작가의 문장을, 문체를 좋아합니다. 문체면에서 봤을 때 아쉬운 작품. 이 소설 쓸 때 한강 작가 어깨가 너무 안 좋아서 구술하고 받아쓰기 알바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영향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럼에도 노벨 문학상 작가님이다 재정독 예정.

    fas***
    2024.10.15
  • 어쩐지 낮보다 새벽이, 겨울보다 늦여름즈음이 잘 어울리는 글입니다. 누군가의 소설이라기보다는 고요한 에세이 같고, 산문보다는 잘 다듬어진 운문 같습니다. 작가님이 손짓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장면 장면을 그려보았더니 금세 다 읽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dkd***
    2024.10.13
  • '작별하지 않는다'로 제주4.3을 '소년이 온다'로 5.18광주항쟁을 다룬 한 강 작가는 역사를 살아 있게 하는 진짜 작가입니다. 두 작품을 읽으며 한강 작가는 어떻게 트라우마를 견뎌냈을까를 걱정할 정도였었죠. 상처를 겪은 사람들, 서로 치유하는 사람들. 어둡고 슬프지만 밝음도 희망도 열림도 있는 소설. 노벨문학상을 받으신 작가님 축하드려요.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강렬한 시적 산문'

    tcg***
    2024.10.11
  • 한강 작가의 2011년 작품. 이번 작품도 역시 이해하기 쉽지않다. 그러나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서 그게 도대체 뭐였을까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작품을 읽었어도 사람들마다 느끼고 생각하고 공명하게 되는 부분은 다 다를듯.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다. 여자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잃었고, 남자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여자는 하고싶은 말과 해야하는 말들이 너무 많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입 밖으로 내놓아지는 말들로는 감정을 오롯이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차라리 입을 닫아버린다. 말의 한계와 허무함, 왜곡될 가능성들이 그녀로하여금 스스로 ‘언어’를 지워버려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했을지도. 혹은 범람하는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모국어 대신에 희귀한 희랍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모국어에서 느끼는 불쾌함이 낯선 이국의 언어에서는 조금이나마 희석되는 느낌이 있어서 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희랍어는 단어 하나로도 많을 것을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지 않는가. 그는 어린 나이에 기족들과 함께 독일로 이민가서 ’이방인‘이라는 정채성의 혼란에 방황한다.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실을 맺지못하고 헤여져서 홀로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된다. 눈이 보이지않는다는 사실을 숨긴 채 수업을 계속하던 남자는 안경을 깨뜨리는 사고 때문에 여자에게 도움을 받게되고, 말을 하지않으려는 그녀의 마음을 자신의 심경과 동일시하면서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보듬는다. 이런 공명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인생의 고난에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마지막에 입술을 축이며 힘껏 소리를 만들어내보려는 여자의 몸짓이 해피엔딩을 의미하는 듯 해서 좋았다. _________ 독한 취기 같은 피로가 그녀의 의식을 둔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꿈인 것처럼, 아주 먼 곳에서부터 토막토막 끊긴 채 울려온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방금 내가 쓴 글씨지만, 십 센티미터 이상 눈에서 떨어지면 보이지 않아요. 암기한 대로 소리내어 읽을 때 공포를 느껴요.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든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 내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공간의 침묵에 공포를 느껴요. 한번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희랍어 시간 | 한강 저 #희랍어시간 #한강작가 #문학동네 #희랍어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geo***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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