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는 장날, 다시 열리는 보부상 길……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
그 재미와 감동 고스란히 다시 찾아온 김주영 장편소설 [객주]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이자 한국 역사사회소설의 한 획을 그으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편대하소설 [객주]가 문학동네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독자들을 찾는다. 이번 [객주]의 개정판 출간은 마지막 10권의 연재와 더불어 순차적으로 시작되어, 연재 종료와 동시에 총 1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번에 1차분으로 출간된 [객주] 1, 2, 3권은 제1부 외장(外場). 그리고 이후 한 달 간격으로 제2부 경상(京商) 세 권과 제3부 상도(商盜) 세 권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총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던 [객주]는 1984년 아홉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김주영 작가는 거기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지 않았고, 스스로 완간이라 말하지도 않았다. 주인공 천봉삼을 원래의 구상대로 죽음으로 이끌지 못하고 산 채로 이야기가 끝났던 것도, 후에 더 마무리 짓고자 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서였다. 그러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4년 전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진짜 객주를 끝맺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소금을 실어나르는 길인 이 십이령 고개가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30여 년 만에 드디어 [객주] 10권이 씌어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한국문학사에 남을 만한 뜻깊은 연재에 맞춰 기존의 [객주]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옷을 바꿔 입었다.
1878년부터 1885년까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후기의 시대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 소설 [객주]는 정의감, 의협심이 강한 보부상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한 보부상들의 유랑을 따라가며, 경상도 일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지배자인 백성의 입장에서 근대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객주는 금융업, 유통업, 창고보관업 및 물류업을 하던 장소이자 그런 행위를 하는 상인을 말한다.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에서는 도가, 접소, 도방이라고도 불렀고, 객주의 성격에 따라 물산객주, 해물객주, 젓갈객주 등으로 불렀다. 상도덕에 대한 규율이 강해서, 매점매석과 강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여인네를 범하는 일이 엄중히 다스려졌다.
보부상은 보자기 보(褓)자와 짊어진다는 부(負)자가 합쳐진 것으로, 신체가 건장하고, 지름길을 많이 알며, 기억력이 좋고 셈이 밝은 사람들이 종사했다. 정보 수집에도 능해 어떤 물건이 달리고 넘쳐나는지 파악해 물건을 공급했기 때문에 물가를 조절하는 일종의 중앙은행 같은 역할도 맡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흥선대원군은 보부청을 만들어 보부상 조직을 장악하려고 했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보부상들이 정부 편에서 토벌에 가담했다. 1898년 독립협회를 와해시킨 황국협회는 보부상들이 중심이 된 단체였다. 김주영의 [객주]는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조선 후기 혼란한 개화기 상황에서 보부상의 생활풍속과 이들의 경제활동, 정치적 이해관계를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5년간의 사료 수집, 3년에 걸친 장터 순례, 2백여 명의 취재로 완성된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객주]의 개정판은 오랫동안 기다린 시간만큼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며, 처음 만나는 젊은 독자들에게는 재미와 의미가 모두 충족되는 잘 짜인 역사사회소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객주] 1 줄거리
-숙초행로(宿草行露)-
천봉삼, 최돌이(최가), 조성준, 깍정이 두 명까지 총 다섯 명은 새재를 넘는다. 조성준은 최가와 일행이 되어 중노미와 사통하여 떠난 계집을 찾아나선다. 고사리에서 계집을 찾은 조성준은 계집의 발을 작두로 내려치고, 중노미 송만치의 부샅을 자른다. 조성준은 깍정이들과 하직할 작정으로 엽전 백 냥을 내놓으나 깍정이들과 시비가 붙는다. 봉삼이 끼어들지만 깍정이의 공격에 세 사람 모두 쓰러진다. 가까스로 눈을 뜨니 전대고 괴나리봇짐이고 깍정이 두 놈의 행적이 묘연하다. 조성준과 최가는 봉삼을 들쳐 업고 문경길로 접어들어 주막에서 몸을 추스린다.
조성준은 상주로 떠난다. 최가는 주모(매월)가 잠든 부엌방에 기어들어가 술상을 봐오게 한 후, 수작을 부려 일을 치른다. 그때 매월이를 찾아온 장한이 있었으니, 바로 송만치였다. 송만치는 최가를 죽기 무릅쓰고 뒤따르니 최가는 그를 벗어나 고모산성 동쪽 기슭까지 당도하였다. 최가는 조성준의 행방을 좇아 황석배의 집을 찾는다. 최가는 황석배의 객줏집 봉놋방에서 꼬박 이틀을 지새우지만 조성준은 나타나지 않는다. 최가는 황석배의 집 밖에서 서성이던 방물장수에게서 방물고리를 훔쳐 줄행랑을 친다. 사흘만에 최가는 주막으로 돌아온다. 매월은 돌아온 최가에게 접근해 동침한다. 다음날 매월이 방물고리와 함께 사라진 걸 알게 된 최가는, 수교와 사령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얘기하지만 되려 화근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다.
방물고리를 훔친 매월은 마음에 두고 있던 봉삼과 방터골까지 간다. 봉삼은 희자(선돌)가 펼치는 판을 지켜보게 되고 그들은 일행이 되어 예천에 간다. 그 객점 봉놋방에는 석가란 자가 봉삼을 알아본다. 석가는 봉삼과 선돌이 잠들자 매월을 불러낸다. 매월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봉삼과 선돌은 석가를 매타작한다. 주막을 하직한 세 사람은 한 주막의 도부꾼에게 최가의 안부를 듣는다. 봉삼은 최가에게 가 보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지만 일단 안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나타난 석가는 선처를 구하고 그들과 동행한다.
봉삼은 매월과 동침한다. 봉삼은 선돌에게 최가와 조성준을 찾으러 다녀온다고 말한다. 그사이 석가는 매월이를 욕보이려다 양물을 잘린다. 선돌과 매월은 남문 어름에 이르고 떡전 각설이패에서 최가를 발견해 황급히 빠져나간다. 선돌이는 전도가에 들러 차인을 만나고 나온다. 선돌은 매월이 최가에게 시달리는 것을 발견하고 최가는 선돌의 발치에 엎드려 사과한다. 매월은 봉삼을 찾으러 병문으로 나가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방터거리까지 간다. 선돌은 전도가의 차인꾼을 만나 물대를 지불한다. 선돌이는 그곳에 나타난 장한 셋에 봉변을 당하고 자신이 거래한 물화가 장물임을 알게 된다. 전계장 조순득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어 선돌과 차인은 곳간에 갇힌다.
봉삼은 최돌이의 종적을 수소문하다 매월이와 중화를 먹었던 주막에 들러 최가를 물으니, 늙은 주모가 화를 낸다. 그저께 최가가 주모와 내침하고, 평생 해로하기로 약조하고 도망친 것이다. 봉삼은 최가를 대신해 사죄한다. 주막을 나선 봉삼은 떡전 좌판 앞에서 매월을 발견한다. 봉삼은 매월을 떼내려는 속셈으로 주막으로 돌아가 최가의 행방이 안동이 아닌 상주라고 거짓말한 뒤 도망간다.
이튿날 이송천나루에서 봉삼은 최가와 재회한다. 최가는 봉삼에게 선돌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 조순득의 전도가를 찾은 봉삼은 계집아이와 함께 대문을 나서는 여인을 뒤따른다. 봉삼은 이튿날 전도가 초입의 팥죽집에 들어가 그 여인이 남편을 잃고 집으로 돌아온 조순득의 딸이며, 곧 서울 화주 첩실로 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봉삼은 여인을 업어 오자는 계략을 최가에게 털어놓는다. 최가는 탐탁지 않지만 함께하게 된다.
최가는 계집아이를 전도가 인근에 날라다놓고 조가놈을 찾아가 여인과 동패를 바꾸자고 할 작정이었다. 봉삼과 최가는 미리 짜놓은 계획대로 여인과 계집아이를 덮친다. 봉삼은 여인을 짊어지고 팥죽집 할미의 집으로 들어선다. 여인은 봉삼에게 첩실로 들어앉는 것보다 홀애비 아내 되는 것이 낫다고 고백한다. 여인은 자신의 몸을 거두지 않으면 자진하겠다고 한다. 봉삼은 여인을 안아버린다.
여인과 이틀 뒤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방을 나선 봉삼은 전도가 앞에서 기다리지만 최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봉삼이 직접 조순득과 대면하고 전대와 포목짐, 동패를 내놓으라 한다. 조순득은 뜻에 따른다. 풀려난 선돌은 몸을 가눌 형편이 아니다. 전도가를 나서 봉삼과 선돌은 동문거리에 다다르지만 주막에도 최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틀을 꼬박 선돌의 구완에 정신없던 봉삼은 조순득의 여식과 약조한 날이 밝자 이송천나루로 향한다. 신석주의 일행이 나타난다. 행차의 가마 안에 여인이 있는 게 분명하나 만날 도리가 없다. 봉삼은 행객들을 따라 배에 오르고 가마 안에 들릴 큰 소리로 행로를 묻는다. 봉삼은 배에서 비틀거리며 걷다 가마 부근에서 넘어지는 체하며 한 손을 잽싸게 가마로 디민다. 여인의 손바닥이 헝겊 조각에 똘똘 만 무엇을 쥐여준다. 신석주는 나루를 떠나고 봉삼은 주막으로 돌아온다.
선돌에게 봉삼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오일 후에 먼달나루로 소금배가 오는데, 그들이 찾는 게 포목이나 담배라는 것이다. 소금배는 썩 앞당겨 이튿날 밤중에 와닿는다. 봉삼과 선돌은 먼달나루로 나가 늙은 뱃놈에게 흥정을 붙이다 서로 시비가 붙는다. 구경꾼이 몰려들고 그 중에 있던 석가가 선돌이를 대신해 도사공을 손본다. 그들은 도사공을 술국집으로 불러내 달랜 후 다시 흥정한다. 소금섬을 건네받아 동문거리 주막으로 건너온 그들은 발행할 채비를 차린다.
세 사람은 산골의 향시들을 거쳐가기로 작정한다. 각산 어름에 묵고 있을 최가를 만날 요량이었다. 가랫골주막에서 쉬던 중 선돌은 봉삼에게 잿길로 올라가는 행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괴이하게도 내려오는 행객은 보이지 않는다며 오늘은 여기 묵고 다음날 발행하자고 말한다. 이튿날 새벽, 세 사람은 가릿재를 오른다. 고갯목에서 적변당한 십수 명의 행객을 발견한다. 세 사람은 대강 수습을 끝내고 관가에 사람을 보낸다. 진보 장판에 닿아 최가를 찾으나 보았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봉삼의 예상과는 달리 최가는 안동 마전내 부근에서 월이라는 계집아이와 초례를 치렀다. 최가와 월이 역시 진보 땅으로 넘어가 각산 역말 부근 주막을 샅샅이 뒤지며 수소문하나 봉삼 일행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이튿날로 그들은 남각산 황장재 아래 주막에서 봉삼 일행을 기다린다. 이레가 지나 봉삼의 일행과 상봉한 최가는 성례를 치러 달라고 소원한다. 최가와 월이는 주막에 차려진 신방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봉삼은 월이에게 산호비녀를 준다. 산호비녀는 월이의 상전이자 봉삼과 정분을 나눈 조순덕의 여식이 증표로 준 귀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