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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작품 소개

<오래된 빛> 하나의 죽음, 그뒤에 남은 사람들의 삶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가 전수찬이 칠 년 만에 선보이는
죽음의 비극성과 죄의식에 대한 보고.


칠 년 전쯤, 우리는 생에 대해 발랄하고 쿨한 감각으로 중무장된 어떤 신인작가 한 명을 얻는다. 그는 작가의 이력에 맞지 않게 대학 때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꽤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소설을 쓰겠다며 직장을 그만두었고, 소설 집필과 동시에 60년대 록음악을 틀어주는 술집을 운영한다. 그런 와중에 장편소설 한 편이 완성되었고, 그 소설로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수상작『어느덧 일주일』)을 거머쥐게 된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소설가’라 불릴 수 있게 해준 그 작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경쾌한 입담”(신경숙)과 “힘을 들이되 힘이 들어 보이지 않게 하는 미덕”(성석제), “개개인의 실존적 고뇌가 무겁지 않게 끼어드는 통찰력”(신수정) 등속의 평판들로 인해 신인작가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 기대와 염려 속에서 문단에 데뷔한다. 하지만 다음 작품, 그의 세계가 농밀히 내장된 그다음 작품은 볼 수 없었다. 그는 문단 안팎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첫 장편을 기억하는 동료 소설가와 평론가 들은 그의 사라짐을 궁금해했고, 어디선가 어느 곳에서든지 다음 소설, 그 다음다음 소설을 쓰고 있을 그를 상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시간은, 그런 기대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기억을 빠르게 상쇄시켰고, 작가의 이름은 점점 독자와 문단과 우리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렇게 칠 년이 흘렀다. 홀연히 사라졌던 작가 전수찬, 그가 돌연 아무 일 없다는 듯 장편소설『오래된 빛』을 들고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여기, 오랫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작가 전수찬의 신작장편『오래된 빛』을 내놓는다. 그의 두번째 장편『오래된 빛』은 아들을 잃은 어느 가족의 불운한 삶과, 그 가족을 불행에 빠뜨린 또다른 가족을 통해 행과 불행이 삶에 얽혀드는 역설을 말한다. 또한 그 모순된 두 가족사(家族史)에 드리우는 죽음의 비극성과 남겨진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죄의식의 파편화된 모습을 전수찬의 단단하고 간결한 문체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하나의 죽음이 물들이는 남겨진 자들의 비극

어느 평범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두 아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소박한 꿈을 꾸며 가까운 미래의 노후대비를 위해 지금/여기에 노력하는 삶. 그러한 중산층의 풍경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소소한 모습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갔던 막내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실종신고를 내고 밤을 새며 찾아도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소중했던 아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 그 평범한 집을 발칵 뒤집어놓은 것이다.

막내아들을 잃은 뒤 남은 식구들의 삶이란 상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터. 집 안엔 “미친 영혼들이 돌아다니고” 실성한 사람처럼 “통곡하다 구토하고 쓰러지며 망령의 야유가 울음”처럼 온 집 안을 감싼다. 살아도 살아 있는 걸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 있는 나날의 지속. 어머니는 집을 뛰쳐나가 “농약을 넣고 다니며” 신께 죽게 해달라 기도하고 아버지는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식구들에게 남겨진 건 고통과 슬픔과 원망, 그리고 복수뿐이다.

“네 새끼가 우리 애를 학년 초부터 괴롭혔어. 알아? 그날 네 애가 불러서 우리 애가 그 밤에 산에 갔지. 네 새끼가 우리 앨 죽였지!”

또다른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고 간혹 집회가 있는 날이면 해병대 군복을 입고 서울역 광장에 나간다. 어머니는 살림살이와 정원 가꾸기와 꽃을 좋아하는 평범한 주부. 하나뿐인 아들은 몸이 뚱뚱해 학교에서 ‘돼지’라 불린다. ‘돼지’인 아들은 학교에서 유일하게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 그 ‘돼지’는 자기가 왜 그 아이를 좋아하면서도 괴롭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돼지’는 괴롭히는 친구를 산으로 불러내 실족사 하게 만든 살인자가 된다.

하나의 죽음은 그 가족의 터전을 옮기게 만들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게 만든다. 모든 건 다 옛일이다, 다 잊어야 한다, 그 죽음이 뭐 대수라고 다시 “이사가면 되고 새 학교로 가서 새 학교” 다니면 되는 거라고 가장인 아버지는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아버지도 “마당에 지는 꽃처럼 수그러드는” 어머니도 앞으로 도래할 그들의 미래가 그리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다. 점점 검게 다가오는 그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은 뭔가 하나가 비어 있는 그 가족의 삶을 예견한다. 원인을 알아도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해서는 안 되는 그 비어 있는 삶. 그들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저 “성경책을 보거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집 속에, 울타리 없는 또다른 감옥에 갇혀 지낼 뿐이다.

“그 일을 일컬어 시간을 매듭짓는 일이라 불렀다. 봄볕 아래에서 그자를 만났을 때, 그자는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자는 그 시간- 창호가 죽은 뒤 새로이 탄생한 그 시간에서 벗어나 먼 곳에 살고 있었다. 그자를 그 시간 속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그리고 매듭짓고 싶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을 죽게 만든 아이의 아버지를 쫓아 이사한다. 그를 추적하고 감시한다. 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하며 “착한 사람은 스스로 더 많은 고통을 짊어지”는 거라며, 우리가 짊어졌던 그 고통의 시간을 그들에게 충분히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집을 감시하던 중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며 혼란에 빠진다. “아들을 두들겨패는 그자를 몇 번 본 뒤에 어쨌든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그건 자기가 생각했던 고통의 시간이 자신의 가족의 일만이 아니었더라는,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공평함에서 오는 위무 같은 것이었다.

망가진 삶, 차라리 불행이 네 삶의 자부심이라고 소리쳐라!

“내가 무슨 괴물이라도 돼요?”

시간은 그 두 가족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식구를 잃은 한쪽 가족은 죽을 것 같았던 그 고통의 시간을 서서히 벗어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의 농도 또한 연해진다. 잊힌다. 아니 잊어야만 한다. 처음으로 남아 있는 식구들은 바다 여행을 계획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과연 “우리가 바다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가해자의 집, 또다른 한쪽 가족의 삶은 서서히 멍들어간다. ‘돼지’였던 아이는 늘 ‘술취한’ 대학생이 되었고, 그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젊은 나나들이 무너져간다. 가해와 피해가 역전된, ‘피해자의 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아버지는 비리에 노출되기 일보 직전이고 어머니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으며 아들은 집단폭행을 당한 뒤 산속을 헤맨다. 그 가족의 구성원들은 각각 서서히 멍들어가고 천천히 무너진다. 그 식구들은 왜, 그렇게 불행해야만 하는 것인가, “삶의 궁극적인 속성은 비극임”을 깨닫는 일이 삶의 가르침 이었던가? 하지만 그러한 가족을 감시하는 다른 한 편의 아버지는 무너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염세적이고 비극적이라 해도 그 시간의 매듭을 짓지 않고서는 평온했던 시간을 다시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버티지 말고 그 불행을 받아들여라. “삶의 궁극이 비극”이라는 것을 인정해라, 말한다.
- 본문 중에서

『오래된 빛』을 아우르는 두 가족사(家族史)는 어찌 보면 보는 이에 따라 냉정하고 잔인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고, 삶을 이루는 불행과 비극의 모습은 다른 무엇으로도 치장할 수 없다는 걸 두 가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불행이 찾아온’ 운명의 소용돌이 이후엔 짐승이 먹이를 찾아다니듯 행복을 좇기만 했던 지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스레 이 소설이 묻는 단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작가 전수찬이 칠 년 만에 돌아와 우리에게 물어보는 건 바로 행복에 관한 삶의 아이러니다


저자 프로필

전수찬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8년
  • 학력 연세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 데뷔 2004년 문학동네 작가상 소설 '어느덧 일주일'

2014.11.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전수찬
1968년 대구에서 태어나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어느덧 일주일』로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목차

오래된 빛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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