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작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거머쥔 놀라운 신인,
김종옥 첫 소설집 드디어 출간되다!
문학동네에서 2010년 제정한 젊은작가상은 김중혁의 「1F/B1」을 시작으로, 김애란 「물속 골리앗」, 손보미 「폭우」 등 매해 수상작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낳아왔다. 이는 대상 작품을 등단 십 년 이내 작가의 작품으로 제한하여, 아직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았으나 특별한 개성을 간직한 한국문학의 미래와 함께하고자 기획한 상의 취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2013년 젊은작가상이 발표될 당시의 풍경은 유독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그해 대상작인 「거리의 마술사」가, 이제 막 소설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신예 소설가 김종옥의 등단작이었기 때문이다. “첫 도입부터 깜짝 놀랐다가, 이 작품이 그의 등단작인 것을 알고 또 한번 깜짝 놀랐다”(김인숙)라는 평이, 등단작으로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을 결정하며 지은 심사위원들의 대표적인 표정일 것이다. 또한 등단작 한 편만으로 작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기꺼운 마음으로 이 신인 소설가를 맞이하게 하는 힘을 「거리의 마술사」는 지니고 있었다.
김종옥은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거리의 마술사」가 당선되어 등단했을 당시, 보기 드물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평을 들은 바 있다. 그 목소리란,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학교 왕따 문제를 마술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 결코 무뎌질 수 없는 윤리적 통점을 세심하게 짚어낸 데서 비롯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성찰과 만났을 때 빚어진 이 목소리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져가는 지금, 듣는 이의 귀를 당겨오기에 충분히 진지하고 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 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이 작품 안의 에너지와 문제의식이 시간에 쉽게 마모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심사평에는 유독 김종옥이 그려낼 다음 작품세계가 도저히 예측되지 않는다는 기대 섞인 내용이 많았는데, 그 관심 속에서 예상되는 것들을 가볍게 뒤흔드는 열두 편의 작품을 묶어 세상에 내보낸다.
우리가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그것은 ‘기억’을 통해서일 것이다
김종옥식 기억술의 시작
김종옥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삶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주장하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삶의 어떤 순간들을 향해 차분히 귀를 내어주는 것, 그것에서부터 김종옥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니 「거리의 마술사」의 미덕이, 단순히 문제적인 사회현상을 소설 안으로 끌어당겨온 것에서 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평소 왕따를 당해온 한 학생이 학교 창문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남겨진 자의 시선에 소설의 빛나는 힘이 담겨 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던 끝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잠시나마 공중에 뜨는’, 일종의 ‘마술’을 시도했다는 것. 이렇게 사건을 재구성하기까지 남겨진 자는 세심하게 지난날을 되짚어가며 언젠가 그가 해줬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는데, 그 섬세한 기억술이 이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준 또하나의 마법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김종옥식 기억술은 이후 발표되는 작품에서 방향을 비틀며 더욱 깊어진다. 가령, 형의 결혼식날, 미용실이며 결혼식장, 김포공항까지 형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아침부터 여기저기 끌려다닐 때, 이 하루 동안의 여정은 과거 옛 애인들과 나누었던 대화, 장면들과 포개어진다.(「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또는 신호 대기에 걸려 차를 멈췄을 때 ‘나’가 길 건너편으로 본 것은 ‘좁고 긴 골목’이지만, 그 골목이 불러오는 것은 지금은 헤어진 여자와 함께 거닐었던 봄날의 길이다.(「신호 대기」) 그리고 소설 속 화자는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그때는 그저 흘려보냈던 여자의 눈빛에, 표정에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러니 김종옥 소설 속 인물들에게 공통의 보폭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질주도, 계속 한자리에 머무르는 멈춤도 아닌, 천천히 걸어나가는 산책의 리듬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현재가 아니라 스쳐지나갔던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되비춘다. 김종옥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며 기억을 통해 우리가 한번 더 살아갈 때만이, 놓쳐버렸던 진실에 얼핏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우리가 헤어진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일 거라고.”
‘하지 않은 일’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과천행 버스!
충만한 삶,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회상이 우리를 ‘그곳에 없는 장소’로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삶을 아주 조금 되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되찾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것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음을 혹은 있을 수도 있었음을 증언해주기 때문이다. 이 시시하고 맥빠진 것처럼 보이는 연애담들이 현명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유혹의 손짓에 넘어가기를 권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들 각자의 과천행 버스를 타는 일이며, 우리들 각자가 신의 셈법에 동참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저마다의 삶을 보충할 수 있게끔 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_권희철(문학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의 ‘나’는 문득 버스정류장에 모여 있는 여학생들을 보며 그들과 비슷한 시절을 거쳤을 옛 애인들을 떠올린다. 그 옛 애인들이란 과천에 산 적이 있거나 언젠가 과천에서 그와 만난 적이 있다. 촘촘하고 구체적인 연결고리 없이, 다만 쏟아지는 기억을 어찌할 수 없다는 듯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회상하는 이 남자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 심지어는 지나오지 않았던 시간’까지 되돌아가며 무심히 놓쳐버린 장면과 재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란, 단순히 우리가 했던 것들을 또렷이 떠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것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처럼, 우리가 말하지 않고 듣지 않고 그래서 놓쳐버렸던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하나하나 더듬어나가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김종옥 소설이, 진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 따라붙기 마련인 감정의 분출이나 적극적인 액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과거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데 주저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회상 속에서만이 놓쳐버렸던 것이 조금이나마 다시 찾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을 고루 갖춘 이 젊은 소설가가 이끄는 과천행 버스에 올라타는 일일 것이다. 저마다의 과천행 버스에 올라탐과 동시에 우리는 지나왔던 삶을 한번 더 반복하게 된다.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