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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상세페이지

작품 소개

<시인의 집> “그 모든 것을 확인하려고,
나는 또다시 멀고먼 세상 끝까지 달려갔다 왔나보다.
알 수 없는 부름에, 목마름에 이끌려.”

마음을 누일 방 한 칸을 찾아가는 머나먼 여정


삶은 어쩌면 평생에 걸쳐 안주할 단 하나의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힘겨운 대낮의 일상을 마치고 어둑해지는 길들을 지나서, 마침내 돌아가 곤한 몸을 누일 장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집이 없는 자에게는 휴식이 없다. 주변을 온통 경계하느라 잠조차 편하게 잘 수가 없다.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라 할지라도, 그날 밤의 거처를 생각하며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할 곳. 든든한 식사와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곳. 그리고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는 곳.

그렇다. 예컨대, 이런 손의 떨림을 둘 곳이 있어야 했다. 아직도 떨림이 남아 있는 이 손끝으로 돌아앉아 적어야 할 것이 내게도 있었다. 가끔은 식당의 냅킨에, 운전하다 손에 잡힌 휴지 쪽에 휘갈기듯 쓴 그것들을 둘 곳이 있어야 했다. 개집만한 집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드러눕지 못해도 괜찮으므로. (……) 내 글을 쓸 곳이 필요했다.(본문 중에서)

‘개집만한 집’이어도 좋다고 시인은 말한다. 평생 독일문학을 연구하며 수많은 책들을 번역하고 틈틈이 한국어와 독일어로 시를 써온,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전영애 교수의 말이다. 물론 그 집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편한 장소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곳은 집이 아니다. 나라가 아니며 세상이 아니다.

내 갈비뼈 위로 다시 수레바퀴들이 구르는 것 같았다. 불안했던 저 1980년대 내내 나는 자주, 수레바퀴가 내 가슴 위를 천천히 굴러가고 있는 듯한 통증을 거의 신체적으로 느꼈다. 정말 신체적으로. 떨친 지 오래된 그 고통이 다시 생생해진다. 그러나 어느덧 수레가 되어, 나는 또 무슨 짐승의 위를 굴러가고 있는지.(본문 중에서)

“한 생애의 발자국들 위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

저자는 혼자서는 감당해내기 힘든 큰 물음에 직면할 때마다 먼 길을 나섰다. 그렇게 시인들을 찾아다녔다. 게오르크 트라클, 파울 첼란, 잉에보르크 바하만,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쿤체,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인리히 하이네, 베르톨트 브레히트, 볼프 비어만, 고트프리트 벤, 프리드리히 횔덜린, 프리드리히 쉴러, 요한 볼프강 괴테까지. 더 많은 이름들이 있겠지만, 이 책에는 총 열세 명의 발자취와 거처를 담았다.
그들은 모두 지진계처럼 세계의 아픔을 온몸으로 감지한 사람들이다. 불행했던 삶도 많다. 세계대전의 전화戰火 속에서 자살한 트라클, 적의 언어로 시를 쓰다 센 강에 몸을 던진 첼란, 쇠약해진 몸을 가누지 못해 집안에서 일어난 불길을 미처 피하지 못한 바하만. 온 세상이 전쟁터였고, 어디서나 사람의 목에 칼끝이 드리워져 있던 시절이었다.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세계가 어두웠다. 전쟁은 지났고 “평화”가 왔다지만 바하만의 눈에는 세상이, 매일매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의 연속이었다.(본문 중에서)

그리고 카프카. 그의 눈에 비친 인간은 ‘법 앞에서’ 벌레로 ‘변신’해버렸다.

무어라 부를까. 시인은 아니다. 소설을 썼지만 작가나 소설가라는 명칭을 앞에 붙이기도 어쩐지 마뜩잖다. 굳이 보통명사가 와야 된다면 ‘문학’이어야 할 것 같다. 문학이어도 그 결정結晶, 시 같다. 시이다.(본문 중에서)

절박한 삶 앞에서 온몸으로 고통을 겪는 이라면 그이를 어찌 시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카프카를 통해 문학을, 시를 배웠다.

돌아보면, 카프카 읽기로 나의 문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카프카의 작품을 옮기는 일로 내 독문학 공부가 시작되었고, 그러면서 문학이라는 큰 세계가 압도적으로 열려왔다. (……) 인생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설계도 할 수 없던 그 적막한 시절, 좁은 방에 엎드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카프카를 옮겼다.(본문 중에서)

특별한 인연도 있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체는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해준 은사이자 동료다. 그 인연으로 쿤체가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고, 저자가 쿤체의 집 근처, 도나우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작은 한옥 ‘시정詩亭’을 짓기도 했다.

오래 허공에 떠 있었다. 내릴 곳이 없었다. 어디에 내려야 할지 몰랐다. 여러 해 된 그 절박한 물음을 들고, 나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한 시인의 집 문 앞에 섰다.(본문 중에서)

이 책은 이러한 인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문 앞에 섬으로써. 반체제작가로 지목되어 탄압받았던 구동독 출신의 시인 라이너 쿤체는, 꼿꼿하고 올곧은 저항시인이면서도 섬세함과 따뜻함이 밴 시를 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저항시인이지만 브레히트와 볼프 비어만은 거침없고 정치적인 발언가들이다.

극작가 브레히트라면 몰라도 시인 브레히트를 내가 지나쳐갈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껏 한 줄도 브레히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다. (……) 목청 높인 예술의 윤리와 당사자의 삶의 그것 사이의 잦은 어긋남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에 정리가 필요했고, 스스로의 그침 없는 자기비판과 반성에도 정리가 필요했다.(본문 중에서)

릴케 역시 저자의 마음에 남아 있는 시인이다. 전영애는 릴케를 찾아 망망한 아드리아 해의 두이노 성으로, 육신이 묻힌 라론 계곡으로, 그리고 그가 『말테의 수기』를 썼던 파리로 향했다. 그곳에 남은 첼란과 하이네의 흔적들도 함께 좇으며.

어느 겨울날 시인 파울 첼란의 자취를 찾아 파리의 길들을 더듬어 걸을 때였다. 첼란이 오가던 길에 선명히 찍힌 그의 발자국 아래 거의 언제나 또하나의 희미한 발자국이 겹쳐 찍혀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첼란의 자취를 기록하고 나서도 마음이 자주 파리의 거리들을 되짚어 걸었던 것은.(본문 중에서)

늘 ‘시의 부근’이었다. 저자에게는 ‘삶의 부근’이기도 했다. 하이네의 노래로 유명해진 로렐라이 언덕, 벤의 정신세계를 선연히 보여주는 듯한 이층 도시 마부르크, 광인이 된 횔덜린이 좁은 방 안에서 후반생을 보냈던 네카 강변, 그곳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마을인, 쉴러가 나고 자란 마바하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괴테가 있다.

문과대 도서관 책꽂이의 G자(즉 주로 Goethe) 뒤, 내 창가 자리에 다시 앉는 것만으로도 열려오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온갖 의무에 매여 살다보니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나 자신만의 소중한 시간이 그곳에서 쌓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전영애는 일평생 괴테 연구에 매진해온 세계적인 괴테 권위자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시상하는 ‘괴테금메달Goldene Goethe-Medalle’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상의 어느 한 구간, 또 공중에 뜬 한 구간, 그러나 나는 내 마음속에 깃든 시 한 편을 되풀이해서 읽는다. 이것이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본문 중에서)

그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것은 언제나 시 한 편이다. 그가 찾아 나섰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움이 깊어 한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글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첼란이 그랬고, 카프카가 그랬듯. 그렇게 모인 시들이 독일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헤매고 있었다. 두 개의 언어 사이에. 시인이라면, 평생을 쏟아 이제 모국어를 다루는 정치함에 있어서 어떤 경지에 올라야 마땅할 나이에, 자주 문법마저 틀리는 서툰 외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합리화할 길은 없었다. 어디론가 내리고 싶었지만, 내릴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어디에 발이 닿는다면, 아마도 나는 그곳에 뿌리내려야 할 것 같았다.(본문 중에서)

서울로 돌아오니 시인의 편지가 와 있다. 내가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물음에 대한 답이 명시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이곳에 뿌리내리세요.”(본문 중에서)

라이너 쿤체는 저자에게 독일에서 뿌리내리라고 말했지만, 전영애는 한국에 작은 거처를 마련했다.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

덮쳐오는 어둠 앞에서 작은 등불처럼 서 있는 집. 그런 집의 주인이라는 황감한 행복을 내가 이즈음 누리고 있다. 온 세상을 헐떡이며 달려온 길 끝에서. 세상살이의 아픔이야 그 어디에선들 사라질 리 없이 글에 배지만.(본문 주에서)

세상 어디엔들 아픔이 없으랴. “어디에나 역사와 고통이 있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위엄이 있으며 또한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은 만난다.”(본문 중에서) 그러니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시인들도 전 생애에 걸쳐 그러한 만남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어두운 숲길을 한발 먼저 조심스레 밟아간 사람들. 희미하게나마 삶의 길목마다 아름다운 표식을 남긴 사람들. 어느 날 우리는 책 한 권을 들고 훌쩍 떠나볼 수도 있겠다. 시 속으로, 그리고 삶 속으로. 저 멀리 시인의 작은 집이 보인다. 이제 그 문을 두드려볼 때가 온 듯하다.

아주 여러 해를 두고 쓰였고, 묶여서도 다시 여러 해를 들고 있던 원고이다. 무슨 탐방기나 르포 쓰듯이 일삼아 시인의 집들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큰 물음의 무게가 혼자서는 감당해내기 어려워질 때마다 문득문득 달려갔던 먼길들을 기록한 낱글이었다. 그럼에도, 물음은 도저했어도, 서성였던 곳은 언제나 시의 부근이었다. 내게는 삶의 부근이기도 했다. 어쩌면 거기쯤에서 서성이고 있는 이들이 나의 보이지 않는 동행이었을지도 모른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프로필

전영애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1년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 박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 학사
  • 경력 한국문학 번역원 이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객원연구원
    독일 뮌헨 대학교 강사
    우산육영회 이사
  • 수상 2011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 괴테금메달

2014.12.0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전영애
서울대를 졸업하고,1996년부터 동 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의 수석연구원, 뮌헨 대학교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바이마르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파울 첼란의 시』 『괴테와 발라데』 『서·동 시집 연구』(공저) 『독일의 현대문학—분단과 통일의 성찰』 등 많은 저서를 펴냈고, 시에 관한 네 권의 연구서를 독일에서 펴내기도 했다. 『카프카, 나의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를 위한 무지개』 등의 시집을 국내와 독일에서 펴냈으며, 『괴테 시 전집』 『서·동 시집』 『데미안』 『변신·시골의사』 『나누어진 하늘』 『보리수의 밤』 등 6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프롤로그 발트 해 연안의 부동산—에스토니아 문인의 집

만남의 돌 문턱—트라클의 잘츠부르크/인스브루크
유리병 편지의 부름—첼란의 부코비나
시인의 마지막 발자국—첼란의 파리 1
삶의 집, 죽음의 집—첼란의 파리 2
물, 불, 시의, 언어의 끝—바하만의 로마
떠도는 사람들의 거리—카프카의 프라하 1
겹겹의 문, 겹겹의 뜰—카프카의 프라하 2
해 뜨는 언덕 끝 집—쿤체의 도나우 강가
시인, 시인의 집—쿤체의 초대
잠시 서울에 켜진 독일 서정시인의 등불—라이너 쿤체 방한 기록
두이노 성과 비가—릴케의 아드리아 해
바람 속, 장미 곁의 묘비명—릴케의 라론 계곡
말테의 도시—릴케의 파리
파리의 미아—하이네의 파리
노래 속에 지은 집—하이네의 로렐라이 언덕
세상을 바꾸어보려 한 문인—브레히트의 베를린
분단 독일의 가수시인—비어만의 베를린
극렬했던 모더니즘—벤의 마부르크
맨머리로 뇌우 속에 섰던 시인—횔덜린의 네카 강변
우정에 놓은 기념비, 환희의 송가 ‘기쁨에게’—쉴러의 마바하
큰 시인의 집, 괴테 하우스—괴테의 바이마르
큰 시인을 빚어낸 곳—괴테의 프랑크푸르트
길 위의 집, 카사 디 괴테—괴테의 로마
길 끝의 집, 노시인의 마지막 사랑—괴테의 마리엔바트

에필로그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마침내 찾은 나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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