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것이 자신의 51번째 생일에 스스로에게 선물한 작품*
*커트 보니것 드로잉 100여 점 수록*
자살, 절도, 살인, 광기, 우울로 가득한 세상……
인간성 붕괴의 시대를 꿰뚫는 가장 보니것다운 파괴적 농담!
잔혹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아이러니와 유머로 대답하는 작가 커트 보니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작가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도는 빌리 필그림의 이야기를 통해 드레스덴 폭격의 참상을 폭로한 『제5도살장』으로 잘 알려진 보니것은 1973년 문제적 대표작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를 발표하며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보니것이 자신의 51번째 생일에 스스로에게 선물한 작품이기도 한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56주간 머물렀으며,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자유분방하고 거칠며 위대하다. 비길 데 없을 만큼 보니것적이다”라는 찬사를 남겼다. 1999년에는 소설 원작의 동명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황금만능주의와 권력욕, 원초적인 쾌락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미쳐가는 자동차 딜러 드웨인 후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드웨인이 우연히 아트 페스티벌에서 무명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전체 줄거리를 이루며, 그 과정에서 전개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보니것은 전후 미국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전쟁, 인종차별, 환경파괴, 정신병, 자살, 부동산, 살인과 사기를 서슴지 않는 몰인간성, 문화자본의 퇴락 등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지금 우리 시대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돈을 향한 들끓는 욕망과 우스운 삶을 살지 않고 싶다는 생각
둘 사이에서 고통받는 현대인의 절망과 희망을 그리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의 주인공 드웨인 후버는 자동차 딜러이자 성공한 사업가다. 그러나 아내는 몇 해 전 배수관 세척액을 마시고 자살했고 아들은 악명 높은 동성애자가 되어 집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대화 상대는 래브라도리트리버 한 마리뿐. 불행과 외로움에 뒤덮인 드웨인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깊은 회의를 품는다. 그리고 무명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의 소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읽은 드웨인은 소설의 설정이 이 세상을 설명하는 열쇠라고 믿게 된다. 즉, 우주의 창조자는 이 세상을 실험체로 보고 있으며, 자신의 피조물을 프로그래밍된 기계들이 가득한 세상에 보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는 중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이유가 그들이 모두 기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드웨인은 위안을 얻는다.
드웨인 후버는 계속 읽어나갔다. “당신은 사랑하는 기계, 증오하는 기계, 탐욕스러운 기계, 이타적인 기계, 용감한 기계, 겁쟁이 기계, 정직한 기계, 거짓된 기계, 웃긴 기계, 엄숙한 기계에 둘러싸여 있다.” 그는 읽었다. “그것들의 유일한 목적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당신을 자극해서 우주의 창조자가 당신의 반응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뚝 서 있는 괘종시계처럼 느낄 수도 없고 이치를 따질 수도 없다.” (342p)
한편, 킬고어 트라우트는 자신의 소설이 드웨인의 광증을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미들랜드시티에서 열리는 아트 페스티벌에 연사로 초청받는다. 무명 작가인 자신을 초대한 것이 맞는지 의심하지만, 예술가로서 사명을 띠고 페스티벌에 참석하기로 결심한다. 인류의 중심을 잡아줄 한 줄기 빛, 유일한 성스러움인 예술에 인생을 바친 이들이 “땡전 한 푼” 받지 못하는 이 속된 세상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미들랜드시티로 가는 길은 그에게 순례길과도 같았다. 도중에 갱단을 만나 구타당하고, 우연히 트럭을 얻어타지만 교통 체증으로 중간에 내려 먼 길을 걸어가야 했다. 이 모든 고난에도 트라우트는 세상을 구원해줄 건 오로지 예술뿐이라는 사명감으로 미들랜드시티까지 걸어간다.
커트 보니것의 페르소나 ‘킬고어 트라우트’ 세계관을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형식으로 풀어내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제5도살장』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보니것 세계관’을 구축한 작품이기도 하다. 보니것의 페르소나인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며, 전작에 등장한 엘리엇 로즈워터는 트라우트를 아트 페스티벌이라는 무대에 세우는 장본인 역할을 한다. 또한, 보니것 작품세계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푸른 수염』에 등장하는 화가 라보 카라베키안이 또하나의 등장인물로서 입지를 다진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보니것의 다른 작품들과 상호텍스트성을 가지는 작품으로 기능하며 보니것 작품세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드웨인 후버의 비서 겸 정부로 등장하는 프랜신 페프코는 『고양이 요람』(1963)에서도 비서로 등장한 바 있으며, 사후에 출간된 『카메라를 보세요』(2009)에 수록된 단편 「푸바」에도 등장한다. 방글라데시 출신 의사로 등장하는 카시드라르 미아스마는 보니것의 데뷔작 『자동 피아노』(1952)에서 통역자로 등장한 인물의 이름이었고, 트라우트를 공격하는 도베르만 카자크는 『타이탄의 세이렌』(1959)과 『갈라파고스』(1985)에서도 다른 종류와 역할의 개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있을 텐데, 이런 의미에서 『챔피언의 아침식사』는 보니것을 아는 만큼 더 잘 보이는 작품이자 ‘커트 보니것 유니버스’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옮긴이의 말」에서)
또한, 보니것은 『챔피언들의 아침식사』에 직접 등장하는 메타픽션의 형식을 취했다. “이 책의 초기 원고에서 나는 드웨인 후버의 하녀인 로티 데이비스의 흑인 남편 벤저민 데이비스가 카자크를 돌보게 했다” 같은 문장을 통해서, 소설의 결말부에서는 트라우트에게 직접 “해방시켜주겠다”고 말하면서, 작가로서 자신이 소설의 모든 요소를 직접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저의 쉰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트라우트 씨.” 내가 말했다. “저는 다가올 아주 다양한 종류의 세월을 위해 저 자신을 씻어내며 갱신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정신적 상황에서 톨스토이 백작은 자신의 농노를 해방시켜줬지요.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노예를 해방시켜줬습니다. 저는 제가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제게 그토록 충성스럽게 봉사한 모든 등장인물을 자유로이 풀어주려 합니다.” (395p)
소설 바깥에 있는 보니것이 소설 속 인물에게 말을 거는 이러한 메타픽션 기법에 더불어 작품에 삽입된 보니것의 그림도 독특한 ‘거리두기’ 효과를 낸다. 텍스트의 복잡다단하고 기이한 분위기와 상반되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림들이 독자들의 몰입에 개입하며, 미국 사회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 내용도 허구일 뿐이라는 아이러니한 메시지를 전한다. SF의 거장이자 블랙코미디의 대가 커트 보니것의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작품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오늘날까지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