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뜨거운 선과 악의 추격전
정의와 질서가 붕괴된 시대를 가르는 음울한 총성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원작 소설
서부의 셰익스피어, 코맥 매카시의 대표작
국경 3부작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의 장편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코언 형제가 제작해 개봉 당시 이미 획기적인 팬덤을 형성했으며 어느덧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꼭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아이코닉한 단발머리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앤턴 시거’가 상점 주인 앞에서 그의 목숨을 두고 동전 던지기를 하는 장면은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토미 리 존스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한 이 영화는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아카데미 4관왕, 골든글로브 2관왕에 오르며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운명의 잔혹함, 도덕적 정의의 붕괴와 노화의 무력감이라는 여전히 유효한 주제를 넘치는 속도감과 절제된 문장으로 정교하게 구현한 매카시의 대표작이다. “괴물 같은 책” “매카시의 모든 작품 중 오락적 재미로는 단연 최고”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문인 ‘No Country for Old Men’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 항행Sailing to Byzantium」의 첫 연에서 따온 것이다. 시의 맥락 속에서 이 문장은 정확히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라는 의미라기보다, 지금의 이 타락한 세상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의미에 가깝다. 시에서 노인의 이미지는 결코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어딘가 도달해야 할 곳(어쩌면 죽음, 혹은 예술의 이상향)에 그저 한발 앞서가고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는 작품의 에필로그 격인 13장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여기서 작중 화자인 늙은 보안관 벨은 죽은 아버지가 등불을 들고 자신의 앞을 묵묵히 지나가며 길을 안내해주는 듯한 꿈을 꾼다. 대표작 『로드』에서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통해 삶과 사랑을 역설한 매카시는 어쩌면 끝없는 사막의 풍경 속에 보이지 않는 길로 우리를 이끄는 작은 등불을 숨겨둔 것은 아닐까? 이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속도감 있게 일직선으로 달리는 이야기 속에 무궁무진한 해석의 가능성을 품은 작품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때로는 기대를 배반하는 장르의 상쾌한 변주가 모두 담긴 매카시의 이 서부 누아르는 영화와는 또다른 즐거움의 세계를 활짝 열어줄 것이다.
총알 같은 속도로 질주하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매카시식 서부 스릴러
마약 밀매업자가 판치고 그 옛날의 질서는 무너져 작은 마을들은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1980년대의 텍사스-멕시코 국경지대. 베트남 참전 용사이자 용접공 출신인 루엘린 모스는 건조지대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 여러 구의 시체와 픽업트럭, 헤로인과 현금 2백만 달러를 발견한다. 그는 돈을 가지고 달아나 무사히 집에 숨기지만, 유혈이 낭자한 현장에 가까스로 살아 있던 한 사람의 ‘물을 달라’는 목소리가 끝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는 목숨이 위태로워 보였던 그 사람에게 물을 주기 위해 그곳에 돌아가게 되고, 돈과 마약을 찾던 무리의 눈에 띄어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의 연쇄에 휘말리고 만다. 무리에 더불어 모스를 쫓는 또다른 추격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 킬러 앤턴 시거다. 그는 공기압 총으로 이마에 구멍을 뚫어 사람을 죽이며, 수갑을 찬 채로도 가뿐히 부관을 살해하고 도망치고, 동전 던지기로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한다. 한편 늙은 보안관 벨은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맹렬히 뒤쫓는다. 모스의 목숨을 지키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애쓰지만 사건을 둘러싼 악의 거대함과 불가해함 앞에서 점차 무력감과 허무함을 느낀다.
삶이라는 유혈사태
그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서부의 셰익스피어’ 매카시가 그려내는 메마른 서부 평원의 풍경 속 온갖 총기와 말을 탄 보안관의 생활은 눈앞에 그려질 듯 생생하다. 피비린내 나는 추격전은 단순한 이미지들이 교묘하게 격화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마치 살해조차 하나의 공정처럼 느껴지는 건조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중 인물들이 전면에 감정을 드러내는 법은 거의 없으며,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마다 등장하는 보안관 벨의 독백이나 인물 간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심리를 간신히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루엘린 모스는 “작은 가방 안에 사십 파운드짜리 종이로 압축된 채 들어 있는” 삶 전체를, 평생을 살아도 가져볼 수 없을 돈이라는 가능성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그는 도망자의 운명을 짊어졌고, 역시 운명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앤턴 시거는 심지어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자신만의 논거에 의해 해야 할 일들을 숙제처럼 해내고 어딘가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벨은 간결하게 선언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라고. 어쩌면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 그들을 지켜보는 자마저도 이 맹렬한 추격의 진짜 의미를, 스스로가 무엇을 선택한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폭력과 혼란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 어쩌면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의 거대한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것. 매카시는 이토록 음울한 총성 같은 이야기로써 우리에게 또 한번 삶과 운명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