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해커급 지성이자 가장 급진적인 성정치학자
몸을 매개로 한 성-정치-역사 ‘전환’의 전복적 글쓰기
“우리는 언제나 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인간들의 언어를 습득한 괴물처럼, 내가 여러분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바로 이 교차로에서다.” _폴 B. 프레시아도
“프레시아도는 21세기의 혁명가다.” _주디스 버틀러
“이분법을 거부하는 핵심 반체제자가 몸, 성별, 국가, 종, 언어 등 경계를 횡단하는 것에 대해 써내려간 매력적이고, 대담하고, 가슴 뭉클한 책.” _아미아 스리니바산
“그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위압적이지 않은 마법 같은 능력을 지녔다. 오히려 우리를 불러모아 그에게서 터져나오는 불꽃같은 에너지, 절박한 지식욕, 역동적인 노마디즘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_매기 넬슨
오늘날 폴 B. 프레시아도는 푸코와 버틀러 이후 성정치학 및 젠더 연구에서 폭발력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활동가로, “독보적인 천재성”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상가” “21세기 해커급 지성” 등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다. 자신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해 2015년 베아트리스에서 폴로 개명하고, 현대 약리학과 포르노산업, 금융기술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젠더 담론이 교차-횡단하는 실험장으로서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성-정치-역사 ‘전환’의 새로운 담론을 창안해낸 여러 저서를 집필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장애-퀴어-동물권 운동의 여러 현장에 함께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2023년 다큐 <올랜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을 베를린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선보이고 상을 여럿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베니스비엔날레, 도쿠멘타(카셀/아테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팔레드도쿄 등 국제적인 현대미술전 큐레이터로도 활동했다. 이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활동해온 저자는 자신을 ‘트랜스-이주자-망명자-반체제자’로 명명한다.
이 책 『천왕성에 집 한 채: 횡단의 연대기』는 섹슈얼리티, 정치, 국경, 정체성, 언어 등 여러 경계를 ‘횡단’해온 저자가 자신의 삶과 사유의 궤적을 선언적으로 공표하고 있는 급진적인 사회과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리베라시옹』에 5년간 발표한 이 짧고 강렬한 칼럼들은 오늘날 트럼프의 재집권, 성소수자 및 이주민-난민 탄압, 종교-문화적 정치-경제적 전쟁 등 국제적 이슈가 여전한 지금도, 미래를 향한 전망을 트는 유효한 여러 의제를 던진다. 한때 연인 관계였던 프랑스 소설가 비르지니 데팡트의 서문과 저자의 독창적인 사유의 근간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해주는 서문 이외에, 다양한 주제로 현대 글로벌 정치사회에 대한 67개의 혁명적인 비평적 진단을 만날 수 있다.
‘미래의 철학자’로 불리는 프레시아도의 존재론적 실험 캠프-천왕성Uranus
“나는 성별-젠더체계의 반체제자다. 나는 이분법적인 정치적 인식론적 체제 안에 갇힌 우주의 다양체, 여러분 앞에서 나는 외친다. 나는 기술과학적 자본주의의 경계 안에 갇힌 우라니스트다.”
부제에서 보듯, 이 책의 핵심은 저자의 ‘횡단’ 경험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에스파냐 출신의 폴 B. 프레시아도는 이 글을 기고할 당시 출생시 지정 성별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 과정을 거치며 40여 곳의 도시를 여행한다. 트랜스페미니스트-이주자-성정치학자-철학자-큐레이터로서 그는 몸의 변화와 함께 이름, 성별, 국경, 언어, 문화, 정치, 정체성 등 여러 경계를 가로지른다. “젠더 변화는 많은 경계의 흔적이 남은 일종의 여행”과도 같다고 말하지만, 비단 이 책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몸의 변화를 기록한 일기나 여행 회고록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성전환 과정을 둘러싼 자전적 기록을 넘어, 당대의 정치-경제-역사-미술계의 사건들이 교차하며 저자에게 불러일으킨 사회학적 정치적 인식론적 전환의 연대기까지를 아우른다. 가부장적 식민주의 체제와 국가권력의 통치기술이 만들어낸 ‘정상성’ 규범을 해체하고 다양한 존재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미래의 존재론을 여는 급진적 비평과 철학적 저항이 담긴 선언적 문서들이 곧 이 책을 이룬다. 베아트리스 프레시아도에서 ‘폴’이란 새 (남성)이름에 B(베아트리스)의 옛 (여성)이름을 넣어 개명하기까지, 테스토스테론 복용으로 변화한 몸과 신분증(여권)의 불일치로 매번 심문에 걸리고 간신히 국경을 넘기까지, 가족-법-의료-행정 시스템에서 울려나오는 이성애중심의 패권주의적 생명관리정치의 폭력적 기제는 그로 하여금 오늘날 정치적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소수자에게로, 도래할 새로운 존재-언어의 집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한다. 그간 서구 민주주의의 구체제에서 병리화-범죄화한 퀴어-이민자-난민은 이처럼 모두 ‘이주-전환’의 경험, 횡단의 경험을 공유한다. “횡단이 가능할 때마다, 생명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새로운 형태들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독창적인 경계에 대한 탐색은 그를 새로운 시공간성으로 데려간다.
그리하여 그가 발견해낸 존재의 집은 여기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 ‘천왕성Uranus’이다. 이는 저자의 꿈이 쏘아올린 상징적 공간이자, 그리스인들에게 “세상의 견고한 지붕이고 천공의 끝”이자 “신들의 집”으로 간주된 신화적 장소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현재의 억압적 체계를 벗어나기 위한 철학적 실천적 실험실과 같다. 또한 인종-젠더-계급의 지상의 질서 체제 바깥으로 밀려난 자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천공을 다스리는 신(우라노스)이자 그의 잘린 생식기에서―신체와 생식의 비연관성을 암시하는―사랑의 신(아프로디테)을 태어나게 한 장본인을 암시하기도 하다. 이는 이성애적 성적 결합이 아닌 약리포르노그래피적 기술과 자본주의 산업의 결합으로 새로운 성적 조합과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의 또다른 우화적 전유이기도 하다. 즉 몸의 재생산-전환 방식인 자가조립형 “DIY를 예고하는 일종의 레트로 공상과학소설”로서 신화를 전유한 것이다. 프레시아도는 서문에서 1864년 ‘제3의 성’을 지칭하고자 ‘우라니스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독일의 법률가 울리히스를 길게 논하는데, 동성애를 옹호하며 도래할 미래의 투쟁을 노정한 그의 우라니즘으로부터 ‘천왕성’의 시간성-장소성에 대한 공명을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즉 남성과 여성, 동성애와 이성애, 시민과 이방인의 이분법 너머에 존재해는 탈경계적 장소이자,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시간성과 존재 양식을 상상해볼 수 있는 윤리적 정치적 사유 실험 캠프로서 천왕성의 집을 명명한다. 그곳은 도피처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혁명적 비전의 장소다. 또한 이 지구 역시 “우주의 다양체” 속 자의적 임의적 규율에 속박된 하나의 행성으로 바라볼 것을 상정하는 대항적 장소다.
젠더 해방, 언어-질서의 전복, 규범을 해체하는 퀴어적 글쓰기
프레시아도의 글쓰기는 주제의 다양성만큼이나 교차-횡단의 전복적이고 실험적인 구성적 문체를 보여준다. 「페드로 레메벨, 너의 영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시신모더니티」 「짐을 싸라」 「남반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몸들」 등의 단말마처럼 터져나오는 파편적인 글에서부터 에세이, 편지, 일기, 철학적 논고가 혼합된 장르적 유동성은, 이분법적 사고 및 규율화된 담론 형식을 전복하려는 시도다. 기존의 문장 구조, 언어 질서, 장르적 경계를 파괴하고 넘나드는 글들은 그만의 신조어(시신정치nécropolitique, 약리포르노그래피, 테크노가부장제, 대항성countersexuel, 보철기구, 스너프 주권)나 선언적 문체로 변혁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육체적 변신이 언어적 변화로 옮아가고, 학술적 언어와 정동의 언어가 뒤얽히며 불안정한 지진을 일으킴으로써, 몸-언어와 세상 간의 이질성 속에서 규범 언어의 폭력성이 울려나온다. 이러한 퀴어적 글쓰기에는 혼돈, 분노, 애도 등 다양한 정동이 포착된다. 그의 말마따나 전환은 단지 몸의 변형만이 아닌 시간, 진실, 권력 관계의 변화를 뜻한다. 신체-언어를 매개로 기존 현행 체제와 규범에 균열을 가하는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그의 글은, 존재의 조건을 구성하는 제도적 언어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로부터 탈주선을 그린다. 늘 이행중인 트랜스 정체성을 이주민, 망명자, 난민의 신분과 연속선상에서 사유하며 영토를 넓히며 볼륨을 높인다.
그의 글들은 푸코, 버틀러, 데리다, 스피박, 위티그, 해러웨이, 핼버스탬, 데이비스, 리치, 로드, 울프 등을 경유하며 당대 정치 현실과 밀착된 이슈들을 트랜스적 시각에서 다룬다. 17세 트랜스젠더 소년의 죽음, 퀴어-아동의 인권 및 장애인의 투쟁과 사랑, 멕시코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의 혁명 투쟁에서 배운 것, 그리스 경제 위기 및 유럽의 난민 이슈, 큐레이터로서 여러 도시에서 느낀 문화정책 문제, 도널드 트럼프와 마린 르펜으로 대표되는 극우정치인들에 대한 날 선 비판,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카탈루냐 분리독립 문제와 가족의 역사, 글로벌 이주운동과 네오내셔널리즘 정치, 성노동권과 낙태법 문제, 제약산업과 기술-자본에 묶인 재생산 문제에 대한 전망, 마르크스와 행복에 관한 성찰 등 다채로운 주제가 강렬한 필치로 논의된다. 이 책은 “21세기 혁명가”로 불리는 ‘괴물’ 같은 철학자 프레시아도의 사상 전반을 살필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자, 퀴어 시간성-글쓰기가 지닌 전복성으로 오늘날 정상성과 동일시되는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게 하는 새로운 젠더 정치학을 위한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