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수천 년 진화를 거듭한 인간지능의 핵심을 알면
인공지능과의 관계가 다르게 보인다!
인간 지성의 본질, 한계, 확장 가능성,
그 새로운 이해를 위한 역사적 접근
서울대 AI연구원 인공지능 디지털인문학센터를 이끌며
인문학의 새로운 물길을 내고 있는 이은수 교수가 선보이는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지적 통찰!
기계가 인간 대신 생각해주는 시대,
인간지능의 쓸모는 어디에 있는가?
발견자에서 설계자로, 지성사를 통해 인간을 재정의하다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산업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인문학의 위기가 오르내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창작의 영역까지 생성형 인공지능에 고스란히 자리를 내주면서, 우리는 빠르게 달려가는 기술에 앞서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일자리는 물론, 생각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의 목소리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23년 챗GPT가 상용화되면서 일상에 촘촘히 스며든 인공지능.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묻는 건 이미 때늦은 것일까? 『인간지능의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까지 지성사적 접근을 통해 지적 활동의 근본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인공지능과 협력할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서울대 AI 연구원 인공지능 디지털인문학센터장인 이은수는 역사상 “인간의 고유성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재창조하는 역동적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전한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 시대를 완전히 졸업하지 못하고 각 시대의 잔재들을 흡수하여 진화하는 키메라와 같다. 윌슨이 인간을 묘사하기를 인간은 여전히 구석기시대적 감정을 가지고, 중세의 제도를 이어받았으며, 신과 같이 뛰어난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존재라 했을 때, 그는 인간을 연속된 흐름에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15쪽)
인공지능이 일상을 기습적으로 침투한 이래로, 우리는 인간의 영역이라 생각해온 “이성적 판단, 패턴 인식, 학습, 창작”과 같은 능력이 AI에 대체되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다움’은 더 근본적인 차원에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깊은 맥락을 읽어내는 이해력, 이질적인 요소를 융합하는 창의력, 섬세한 윤리적 분별력,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며, 이를 인간지능의 역사가 증명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 중 어떤 것도 기술에 의해 대체되지 않으리라는 단언도 할 수 없고, 인공지능이 얼마만큼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지 명확하게 예측할 수도 없는 미지의 시대. 이 책은 역사와 현실에 뿌리내린 균형잡힌 시각으로 ‘인간지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방대한 데이터와 초고속 시스템 속
무한히 확장하는 지식의 경계
설계하고, 집합하고, 연결하고, 협력하는 인간지능에 주목하다
이 책에서 ‘인간지능’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지식을 창출하고 전승하는 총체적 능력을 뜻한다. 진리를 탐구하고 가치를 성찰하는 ‘지성(intellect)’, 기억·추론·판단·상상 같은 구체적 정신 기능인 ‘지적 능력(intellectual capability)’, 그 결과물로 축적된 인식의 체계인 ‘지식(knowledge)’이 모두 인간지능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지능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지식, 지성의 변화는 물론 그것을 행하는 인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성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저자는 오랫동안 우리가 지성을 주로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생각해왔지만, AI가 바꿔놓은 지식 환경에서 지성은 지식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서 ‘집합’적으로 사고하며, 다양한 분야를 융합하는 ‘연결’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인공지능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는 ‘설계자’로서의 지성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 사례다. 여기서 인간은 단백질 구조라는 ‘답’을 찾는 일보다 그 답을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는 AI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이 밖에도 베네볼런트AI사가 방대한 의학 문헌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 약품을 발굴한 사례, 최근 AI 연구에서 인간이 AI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설정하는 인간 피드백을 통한 강화 학습(RLHF) 등, 인간은 인공지능이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집합적 사고를 통해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인공지능시대의 인간 지성은 더이상 한 개인 안의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과정적이며, 분산적이고, 창발적인, 역동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성에서 창출된 지식은 어떠한가?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시대 지식의 특징은 인간이 문제 해결의 틀과 목표를 설정하면 그 안에서 AI가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확률적 추론으로 지식을 생성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물을 낳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성된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게 어렵게 한다. 지식이 특정 주체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분산되어 있기에 지식의 출처와 계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고, 그에 따라 신뢰성을 평가하는 데 난점이 발생한다. 또한 융합적 특성으로 인해 각 분야의 지식이 가진 고유한 맥락과 엄밀함을 잃을 위험도 있다. 지식 평가의 주요한 기준이었던 저자성, 독창성, 창의성에 대한 기존의 개념 또한 모호해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난제들은 오히려 우리가 오랫동안 ‘지식’이라고 생각해온 것의 경계를 넓힐 기회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공지능시대의 지식 생태계에 대응해 과거의 인식론적 도구를 넘어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일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새로운 ‘인식론적 도구 키트’의 개발과 활용을 역설한다. 그러한 인식론적 도구에는 여러 지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AI가 생성한 지식의 타당성을 학습 데이터, 알고리즘 및 결과물의 일관성, 실용성 등 다층적인 면에서 검증하고, 지식이 생성된 과정과 경로를 추적해 신뢰도를 평가하며, 그 과정의 창의성과 윤리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결괏값에 활용된 분산되고 파편화된 지식의 각 맥락을 파악해 그 의미와 한계를 명확히 하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뒷받침되어 있는지 등을 평가할 세부적인 지표와 종합적인 기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지능은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발견하다, 수집하다, 읽고 쓰다, 소통하다
네 가지 행위로 보는 인간 지성의 경이로운 여정
이 책은 인간의 지식 획득과 공유의 근간이 되는 네 가지 행위를 ‘발견하다’ ‘수집하다’ ‘읽고 쓰다’ ‘소통하다’로 보고, 각 부에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가로지르는 인간지능의 여정을 추적한다. 각 지적 행위가 이어져온 역사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봄으로써, 인공지능과 구분되는 지식 추구 행위의 핵심 동력을 새로운 시각에서 톺아본다. 4부까지 각 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 「발견하다」에서는 인간의 ‘발견’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본질적이며 희열을 품은 경험인지, 그리고 인공지능시대에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진정한 발견은 호기심과 직관, 그리고 새로운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짜릿한 전율을 수반한다. 반면 AI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며, 인간조차 예측하지 못한 패턴과 통찰을 제시하지만, 그 앞에서 의미를 묻고, 발견에 책임을 지고, 윤리적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적 순간, 로버트 훅의 현미경에서 오늘날 알파폴드의 단백질 구조 발견까지, 기술적 도구인 망원경, 현미경, 그리고 AI 등이 보여주는 세계를 해석하고, 때로는 통념과 맞서며, 발견을 인간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일, 그 긴장과 선택의 무게는 언제나 인간의 몫이라는 점을 1부에서 강조한다.
2부 「수집하다」에서는 인류의 지식 수집 역사를 생존을 위한 치열한 여정으로 그리면서, 디지털혁명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풀어낸다. 초기 인류에게 지식은 농사, 천문 관측, 의학처럼 공동체의 생사를 좌우하는 실용적 힘이었고,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소실 같은 사건들은 오히려 지식을 더 안전하게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욕망을 키웠다. 르네상스의 고전 복원, 근대의 백과사전 편찬은 모두 세상을 이해하고 질서를 구축하려는 인간의 집념이 남긴 흔적이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 이후 지식은 지면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벗어나 무한히 복제·확산되었고, AI는 인간이 평생 모아도 미치지 못할 양의 데이터를 한순간에 분석하며 지식 수집의 양상 자체를 바꾸었다. 그 결과 인류는 처음으로 ‘지식의 부족’이 아닌 ‘지식의 과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무엇이 의미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분더카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개인화된 큐레이션까지, 결국 2부를 통해 저자는 AI시대의 핵심은 더 많은 정보를 모으는 능력이 아니라,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가치를 가려내고 지식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수집하고 활용할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함을 역설한다.
3부 「읽고 쓰다」에서는 읽기와 쓰기가 인류 문명의 근간을 이루어왔음을 되짚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 능력에 깊숙이 침투한 지금 ‘읽고 쓴다’는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점토판의 쐐기문자에서 알파벳, 필사본, 인쇄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기록 기술을 발전시키며 지식을 전수 및 확장해왔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AI가 놀라운 정확도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새로운 글을 써내며 인간 고유의 창조적 영역을 침범하는 듯 보이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기계가 언어를 다룰수록 오히려 인간의 읽고 쓰기가 지닌 감각적·정서적·사유적 깊이가 더욱 선명해진다고 말한다. AI 언어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인간이 문학 속에서 맛보는 아이러니, 시간의 결, 실존적 질문은 모방할 수 없다.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이동, 두루마리와 코덱스 사이의 인지혁명, 읽기·쓰기의 디지털화라는 흐름의 핵심에는 여전히 맥락 속에서 의미를 파악해 자신의 삶과 연결려는 욕구가 살아 숨쉬고 있다. 결국 3부에서 저자는 인류가 글쓰기 기술이 변화하는 시점마다 두려움과 적응을 반복해왔듯, AI시대 역시 읽고 쓰기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일 뿐임을 알려주며, 인간은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적 가치를 지켜내는 존재라는 역사적 통찰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4부 「소통하다」는 인류가 본질적으로 ‘의미를 공유하고 서로 연결되기’를 갈망해온 존재임을 짚으며, 고대 아고라에서의 토론부터 중세 수도사들의 필사와 서신, 근대 지식인들의 ‘편지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방식이 시대마다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글은 오늘날 AI가 소통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전환점에 주목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개인 맞춤형 대화를 제공함으로써 인간 소통의 약점을 보완하는 듯하지만, 인간 소통의 본질인 공감, 삶의 체험에서 비롯된 이해, 모호함을 감내하는 상상력, 진실한 관계를 향한 의지가 무엇인지 더 깊게 묻게 한다. 동시에 AI와의 소통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대화’라 할 수 있는지,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정보가 객관적 진리인지 혹은 또다른 편향인지, 디지털 플랫폼이 실제로 평등한 발언권을 보장하는지 등 복잡한 질문이 제기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AI시대의 새로운 소통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뤄야 하는지 탐색한다. 결론적으로, AI의 편리함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 고유의 비판적 사고·정서적 교감·윤리적 판단을 더욱 연마해 미래의 지식 생태계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새로운 소통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며 사회적 동요를 야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현상이다. (…) 이 과정은 대체로 세 가지 뚜렷한 국면으로 전개되는데, 첫째는 신기술에 대한 초기의 부정과 거부, 둘째는 기존 방식과의 적응과 혼합을 시도하는 과도기, 그리고 셋째는 기술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당연시되는 내재화 단계다. (167-168쪽)
인간은 미지의 세계 앞에서 더욱 인간다워졌다
인공지능의 한계와 인간지능의 한계를 넘어
인간과 기술의 균형잡힌 관계를 모색하다
이 책은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인간의 고유성이란 고정되고 배타적인 속성이 아니라 ‘기술과 공진화하는 역동적인 과정 그 자체’라는 답을 내리며 마무리된다. 저자는 기계에 맞설 인간 최후의 보루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잠시 멈춰서서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인간이 잘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역할을 파악해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을 인격화된 ‘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위해 현명하게 이용해야 할 기술로 간주하는 시각이 놓여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부정, 적응, 내재화의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지능을 발전시켜왔다. AI가 가져온 변화의 파도가 높고 거칠수록,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인공지능에 생각의 주도권을 넘겨주기보다는 자신의 지혜, 관계, 창조의 능력을 더욱 선명하게 인지해 의식적으로 심화하고 확장해야 한다. 인간지능의 역사가 보여주었듯, 그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기술과 함께 거듭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인간지능의 역사』가 균형잡힌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필요한 논의의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인간지능의 과거-현재-미래에 관한 탐구를 시작해보자.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그에 따르면 인간과 기술은 단순히 한쪽이 다른쪽을 도구로 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하는 공생관계다. 스티글레르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수단을 넘어, 인간의 존재 방식이 기술을 통해 바깥으로 형태를 갖추는 외재화 과정 그 자체다. 즉 인간은 기술을 매개로 자신을 외부세계에 구현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가는 존재인 셈이다. (376쪽)